개신교·불교 넘나든 종교학자 길희성 명예교수, 영면에 들다
개신교·불교 넘나든 종교학자 길희성 명예교수, 영면에 들다
  • 지유석
  • 승인 2023.09.10 22: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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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종교 회통, 한국 개신교 교회 배타성 신랄히 비판 하기도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길희성 명예교수가 지난 8일(한국시간) 노환으로 소천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길희성 명예교수가 지난 8일(한국시간) 노환으로 소천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길희성 명예교수가 지난 8일(한국시간) 노환으로 소천했다. 향년 팔십세.

길 명예교수는 동·서양 철학과 종교학을 동시에 연구하며 불교와 그리스도교(개신교) 대화를 시도했으며 해외 학계에서도 인정하는 저술을 낸, 한국 학계에선 보기 드문 학문적 성취를 이뤘다. 

고 길 교수는 지난 2015년 10월 <아직도 교회 다니십니까?>란, 사뭇 도발적인 책을 냈다. 고 길 교수는 이 책에서 "하나님은 결코 기독교의 전유물일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고 길 교수는 책 발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 모처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자신의 언명에 대해 이렇게 부연해 설명했다. 

"하나님이 ‘기독교’의 전유물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의 역사가 기독교 신자들에게만 국한된다는 생각은 창조주 하나님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나님은 결코 ‘기독교 신자’가 아니다. 

문제는 '구원의 주' 하나님의 역사가 기독교 신자들에게만 주어진다는 배타적 신앙에 있다. 나는 우주만물의 전개와 인류의 역사 전체가 하나님의 보편적 섭리와 계시와 구원의 과정이라고 믿는다. 그 가운데서도 인류의 종교사 전체가 특별히 하나님의 계시의 역사이고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고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하는 구원의 통로라고 생각한다."

배타성 뿌리는 값싼 은혜, '대고' 의미 주목해야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길희성 명예교수가 지난 8일(한국시간) 노환으로 소천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서강대학교 종교학과 길희성 명예교수가 지난 8일(한국시간) 노환으로 소천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고 길 교수의 문제의식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고 길 교수는 한국 개신교 교회의 배타성이 '값싼 은혜'를 남발하는 속죄의 교리에 있다고 진단했다. 흔히 이를 대속신앙이라고 한다. 고 길 교수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대신 고통당한다'는 뜻의 '대고(代苦)신앙'을 제시했다. 고 길 교수의 말이다. 

"복음주의 신앙의 대전제는 인간의 죄는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길이 없다는 비관적 인간관이다. 따라서 인간의 구원은 수도나 수행 같은 인간의 노력으로는 안 되고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믿음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배타성이 따른다. 하지만 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의 보편성을 믿으며, 원죄 사상과 같은 인간에 대한 지나친 부정적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죄는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도 아니고 유전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에서 결코 세계와 인간에 본래적인 것이 아니다."

고 길 교수는 구약성서 '이사야'서 53장, 그리고 신약성서 '마태복음'에서 '대고 신앙'의 근거를 찾는다. 

"나는 대속 신앙을 가지고 감사와 기쁨으로 사는 경건한 복음주의자들의 신앙 자체에 대해서는 결코 부정적이지 않다. 복음주의자들 일반이 가지고 있는 성서문자주의 신앙과 기복신앙, 십자가의 자기희생을 무시하는 값싼 은총, 그리고 사회역사적 의식의 결여 등이 문제인 것이다. 사실 이런 것들은 복음주의 자체와 반드시 같이 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대고 개념으로 예수의 고난의 의미를 이해하자는 말이다. 그 성서적 근거는 구약 이사야서 53장에 나오는 고난 받는 하나님의 종, 그리고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최후 심판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 즉, 주리고 병든 자들, 옥에 갇힌 작은 자들에게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보라는 말씀이다."

고 길 교수는 이후 <신앙과 이성 사이에서>란 책에선 하나님 신앙을 철학적으로, 사상사적으로, 그리고 동서양의 형이상학적 전통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고 길 교수는 불교 근본주의에 대해서도 날선 문제의식을 던졌다. "기독교적 선악 이분법도 문제지만, 불교가 선악시비를 넘어서는 것을 지향하면서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는 식으로 돼 윤리의식이 약해지고, 초월만 중시한 채 불교적 윤리관을 확고히 하지 못해 사회 참여에 뒤쳐진 것 아니냐"는 게 고인의 문제의식이었다. 

고 길 교수는 2011년부터 사재를 털어 강화도에 '심도학사'를 꾸리고 고전공부에 매진해왔다. 앞서 1987년엔 한완상 교수 등과 함께 평신도 공동체 '새길교회'를 세웠다. 

유족들은 고인의 뜻에 따라 빈소는 마련하지 않기로 했다고 전했다. 고인은 생전에 그가 세운 심도학사 한 켠에서 영원한 안식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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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현 2023-09-12 12:02:29
돌아가신 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끝내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가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안믿으니까 나름대로 이론을 만들어서 믿으신 것 같은데... 문제는 이분이 믿는 것이 성경의 내용과는 상관이 없는 자신만의 이론이고 신앙이 아닙니다.

성경의 베타성이 값싼 은혜에 있다고 하셨지만 사실 성경의 베타성은 예수님이 직접 하신 말씀들에 있고 그 대표적인 것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입니다. 이 문장 하나만 봐도 기독교는 베타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신 교수님처럼 이 말을 믿지 않는 분들은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나름대로 "대고 신앙"을 만드셨지만.. 그냥 유사신앙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