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작 히틀러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린다
여론조작 히틀러의 그림자가 어슬렁거린다
  • 허호익(전 대전신대 교수)
  • 승인 2023.10.12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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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환 원로목사의 ‘장신대가 동성애는 옹호하고 세습은 반대한다’는 생각 자체가 틀렸다

지난 6월 10일 명성교회 새벽기도회 설교에서 김삼환 원로목사는 “하나님을 떠나면 모두 정상이 아니다. 동성애가 얼마나 나쁘다는 걸 알아야 한다.”하였다. 이어 “동성애를 지지하는 정권은 나라를 망치기 때문에 절대 지지해선 안 된다. 결혼해도 출산율 떨어지는데 남자와 남자가 같이 살면 만년을 살아도 자식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 후, “장신대가 한심하기 그지없다, 광나루[장신대]가 무지개 동산이 됐다, 무지개 총장, 장신대 출신은 받지 말아야 한다, 썩어 빠졌다”는 막말을 퍼부었다고 한다. 그의 말이 맞는다면 동성결혼을 허용하는 미국을 비롯한 선진 국가들을 모두 망한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동성결혼자들도 여러 방식으로 자식을 둔다는 것도 잘 모르는 것 같다.

장신대 측은 7월 10일 김삼환 원로목사를 항의 방문하고 ‘명성교회 새벽기도회(2023년 6월 10일) 설교 내용 관련 공개 항의 서한’을 전달하였다. 김 원로목사의 문제의 설교 내용을 인용하고 “이러한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귀를 의심했고, 그로 인해 장신 공동체는 참담함을 금할 수가 없다”며 “이것은 ‘설교’를 빙자한 허위사실 유포요, 122년 전통의 장로회신학대학교와 그 구성원(학생, 교수, 동문)에 대한 모욕이며, 심각한 명예 훼손이기 때문이다”고 지적하고 공개 사과를 요구했으나, 아직 사과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0월에 명성교회에서 열린 예장 통합 총회(108회)에서 장신대 총장은 “장신대는 무지개 신학교가 아니고, 나는 무지개 총장이 아니다”는 발언을 했다고 한다. 김삼환 원로목사에 대한 공개 사과를 요구한 바 있다는 언급은 없었다.

명성교회와 장신대의 갈등의 시작은 5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2017년 3월 명성교회가 김하나 목사 위임 청빈안을 공동의회에 상정하자 “명성교회가 여전히 세습을 고수해 한국교회가 혼돈에 빠진 상황에서 세습 반대 활동을 지속적으로 감당할 모임을 출범시켜야 한다는 데 공감”이 이뤄져 2018년 1월 12일 장로회신학대학교 교수 60명이 ‘명성교회 세습을 반대하는 장신대 교수모임’의 출범을 선언하였다. 예장통합 산하 7개 신학교, 신학대학원, 총학생회, 명성교회 세습반대를 위한 신학생연대 등 각 단위와 연대해서 교회를 바로 세우는 일에 협력하겠다고 밝혔다. 이 날 연합기도회에서는 “교회 세습 반대는 진보-보수의 문제 아니고 하나님의 공의, 진리의 문제다. 따라서 세습이 신학적으로 잘못된 일이라는 걸 보다 분명하게 밝히고,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는 활동 계획도 알렸다.

공교롭게도 같은 해 5월 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을 연대하자는 뜻으로 장신대 동아리 도시빈민선교회 소속 8명의 학생이 무지개 색깔의 티셔츠를 입고 채플이 끝난 후 기념사진을 찍은 것이 외부로 알려졌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 린 것이나 나쁜 것으로 여겨 차별하거나 혐오하지 말자는 의미에서 무지개의 다양한 색깔이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상징으로 사용되어 왔기 때문이다. 학교 당국은 해당 학생들을 징계할 만한 사안이 아니라고 여겨 징계에 미온적이었다.

그런데 반전이 있어 났다. 7월 5일 오후 통합 측 전국장로회연합회 장로수련회에 참석한 장로 약 4천 명 중 2,154명의 장로들이 ‘장신대 동성애 문제와 동성애 옹호신학의 이단성에 대한 청원명부’(이하 청원명부)에 서명했다. 서명에 참여한 장로들은 구체적으로 ▲ 장신대 임성빈 총장 징계, ▲ 소위 ‘무지개 사건’의 주체인 교내 동아리 ‘암하아레츠’의 해체 및 관련 학생들 징계, ▲ 본 사건 담당 교수들과 채플 담당 학교 관계자들 징계, ▲ 동성애에 대해 적극 지지한 교수들의 해직 처리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교수들 징계, ▲ 동성애에 대해 지금까지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있는 장신대 교수회의의 공식적 사과 등을 청원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장신대가 동성애는 옹호하고 세습은 반대한다’는 프레임이 생겨난 것이다.

결국 장신대는 이 프레임에 갇히게 되었고 장로들의 압박에 밀려 2018년 7월 26일에 소위 무지개 퍼포먼스 관련 학생 5명에 대하여 정학 1명, 근신 3명, 엄중경고 1명으로 징계하였다. 징계 받은 학생 4명은 학교를 상대로 ‘징계 효력 정지 가처분’과 ‘징계 무효 확인소송’을 제기했다. 2022년 11월 법원은 학교가 학생들의 양심의 자유와 학습권을 침해했다고 판결했다. 학생들은 학교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3개에서 모두 승소하게 됐다. 학교는 법원이 명령한 손해배상금(각각 200만~300만 원)을 학생들에게 지급했다. 4여 년의 법적 공방 끝에 학생들이 소송에는 이겼지만 징계한 학교 당국에서는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학생들이 입은 직간접적인 상처와 피해는 손해배상금으로는 만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명성교회는 제104회(2020년) 총회 수습안대로 2021년 1월 1일 0시부터 김하나 목사를 복귀시켰다. 2022년 1월 ‘명성교회정상화추진위원회’가 제기한 ‘대표자 지위 부존재 확인’ 1심 소송에서 “피고 김하나에게 명성교회 위임목사 및 당회장으로서의 지위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한다”고 판결하여 명성교회가 패소하였다. 그 여파로 세습 반대 여론이 들끓자 김삼환 원로목사는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었다. 2022년 8월 7일 명성교회 2부 예배에서 김 원로목사는 ‘총회장 중에 교회(명성교회)를 보호해주지 않는 총회장은 간첩보다 더 나쁘고, 이단보다 훨씬 더 나쁘고, 가룟 유다와 같은 마귀 앞잡이며, 총살감이요, 영원한 심판을 받을 자다’라고 하고, ‘이를 동조하는 총회장들도 나쁜 놈이다’라고 설교하였다. “세습 반대는 간첩, 이단, 가롯 유다 보다 나쁘다”라는 새로운 저주의 프레임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세습에 앞장서거나 옹호하는 목사들이 반동성애에 열을 올리는 일들이 벌어진 것이다.

▲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는 동성애자들을 체포해 가슴에 분홍색 역삼각형을 달아 구별하고 학살했다. ⓒhttps://thegavoice.com/outspoken/the-pink-triangle/

이러한 프레임은 히틀러가 자신의 폭정을 무마하기 위하여 “유대인과 동성애자는 독일 제국의 적”이라는 프레임을 만든 것을 연상시킨다. 아돌프 히틀러가 1919년 창당하여 이끌던 나치당은 1차 대전 폐전 후의 정치 경제적 파국을 유대인의 탓으로 돌렸다. 유대인을 주적으로 만들어 공포를 조장하고 불만과 적개심을 투사시키려는 의도로 기획된 반유대주의 선동이 대중의 지지를 얻으리라 예상했던 것이다. 종교적 이유 이외도 정치 사회적으로 유럽인들에게 만연된 반유대인 정서를 사회진화론과 결합시켜 유대인과 같은 열등 인종은 인류의 진화와 발전을 위해서는 박멸해야 할 대상이라는 사이비 과학적 프레임을 만들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히틀러의 책, '나의 투쟁'(1925)을 구입하였는데, 이 책은 독일로부터 유대인을 몰아내는 투쟁에 관한 것이 포함되었다.

히틀러가 나치당을 창당한 1919년 공교롭게도 마그누스 히르쉬펠트(Magnus Hirschfeld)라는 유대인 학자가 ‘베를린 성과학연구소’를 만들어 동성애자 권리를 단호하고 용기 있게 옹호하는 여러 연구와 활동을 강화하였다. 그는 1897년 세계 최초의 성소수자 인권단체인 ‘과학적 인도주의협의회’를 만들어 동성애자 처벌법(독일형법 175조) 폐지 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1920년 10월 그는 반대자들에 의해 심하게 구타당했고, 1921년에는 습격 받아 두개골이 깨진 상태에서 버려졌고, 1923년에는 강연 도중에 총을 맞기도 했다.

히틀러는 동성애 처벌을 반대한 히르쉬펠트가 유대인이라는 것에 착안하여 당시 독일의 반동성애 정서와 반유대인 정서를 결합시켜 “유대인과 동성애자는 독일제국의 적”이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만든 것이다. 1933년 5월 6일 베를린 체육대학 학생들과 나치 돌격대가 히르쉬펠트의 연구소를 파괴하고 트럭 두 대에 분의 모든 자료들을 탈취하여 갔다. 1만 2,000권 이상의 서적과 3만 5,000점 이상의 귀중한 사진들이 베를린 시청에서 공개적으로 소각되었다. 다음해인 1934년 6월에 히틀러는 동성애자 처벌 형법을 더욱 강화했다.

체포 구금된 유대인에게는 노란색의 ‘다윗의 별’을 달도록 하였고, 동성애자에게는 ‘분홍 역삼각형’(▽)의 뱃지를 달게 하였다. 그래서 나치 치하에서 유대인들이 희생된 것을 ‘홀로코스트’라고 하듯이, 동성애자들의 희생을 ‘핑크 홀로코스트’(Pink Holocaust)라고 한다. 1933년 히틀러가 집권한 후 적어도 10만 명 내외가 처형된 것으로 추정하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후 히틀러에 의한 동성애자 처형이 유대인 학살처럼 반인륜적이라는 것이 알려지면서 동성애자 인권 운동이 더욱 활발하여졌다. 독일 정부는 1980년대에 이르러서야 히틀러 치하의 동성애자 박해 행위를 인정했다. 나치 치하에 희생된 동성애자들을 기리기 위한 여러 활동을 ‘분홍 삼각형 프로젝트’(Pink Triangle Projet)라고 한다.

허호익 교수 / 전 대전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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