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을 지키다가 희생된 최초의 미국인은 목사
언론을 지키다가 희생된 최초의 미국인은 목사
  • 김기대
  • 승인 2023.10.28 0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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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자녀 열전) 링컨에게 영향을 미친 러브 조이 목사

"모든 면에서 자유를 위해 싸웠던 러브조이의 비극적인 죽음은 그의 슬픈 종말을 새로운 세상에서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했다.” 미국의 16 대통령 애이브라함 링컨이 그의 친구 제임스 레맨 목사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러브조이는 누구인가? 미국 일리노이 알톤의 알톤시티 공동묘지에는 날개를 달고 나팔을 부는 약 33미터 높이의 그의 기념비가  있다. 그는 미국 교과서에서 언론자유를 위해 싸우다 희생된 미국 최초의 순교자로 묘사된다. 그가 언론을 통해 외친자유 노예해방이었다.

 

러브조이(Elijah Parish Lovejoy) 1802 11 9 메인주 알비온에서 회중교회 목사인 다니엘 러브조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워터빌 대학을 거쳐 교사 생활을 하다가 미조리 주의 세인트 루이스로 이사가서 신문기자와 교사생활을 병행했다. 어느날 흑인 노예가 재판없이 사형(私刑)으로 교수형에 처해지는 모습을 목격하면서 노예해방을 인생의 목표로 삼았다. 그는 프린스턴 신학교에 진학해 공부를 마친뒤 장로교 목사의 신분으로 세인트 루이스로 돌아 왔다. 그는 세인트 루이스 옵저버(The Saint Louis Observer)라는 장로교 주간지에 글을 쓰면서 노예제도를 강력하게 비판하는 한편 점진적인 노예해방을 주장했다

지역사회의 반발도 만만치 않았다. 인근 도시인 알튼으로 옮겨서 알톤 옵서버를 발간했지만 협박은 계속되었다. 결국 시민들은 폭도로 변해 신문사를 파괴하고 그를 살해하고 말았다.

폭도들은 타협을 요구했지만 “타협이 의무를 중단해야 한다면 나는 타협할 습니다. 나는 사람보다 하나님을 훨씬 두려워합니다. 원한다면 나를 짓밟으시오"라는 말이 그의 유언이 되고 말았다. 35 생일을 이틀 앞둔 1837 11 7일의 일이었다. 역사는 그를남북전쟁(전쟁은 실제로 1861 발발했지만) 번째 희생자 기록하며 미국 수정헌법 1조에 명시된 언론의 자유를 수호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국 언론 박물관인 뉴지움(Newseum)에서 추모되는 언론자유를 위해 싸운 2,200여명의 기자 명단에 첫번째로 등재되어 있다.

사상가이자 시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죽음을 두고영웅은 일반 사람보다 용감한 것이 아니라 단지 5 용감할 뿐이다라고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

러브조이를 살해한 폭도들은 기소조차 되지 않았고 오히려 러브조이를 두둔한 사람들이 기소되었다. 폭도 명은 훗날 시장으로 선출되기까지 했다. 19세기 중엽 남부에서 일어났던 일이었다.

 

시민들이 보낸 러브조이 목사에게 보낸 항의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었다.

  1. 그는 우리들에게 노예페지주의를 언급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2. 그리고 서약의 힘과 그가 성직자로서 그것을 신성하게 지킬 것이라는 완전한 확신을 바탕으로 우리는 그를 받아들였다.
  3. 노예제도가 없는 국가의 시민으로서 우리는 그것으로부터 어떤 이익도 얻을 없고 오히려 우리 공동체에 매우 해로운 감정을 다른 주로부터 이끌어냄으로써 많은 상처와 피해를 입힐 있기 때문에 노예폐지를 선동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4. E. P. 러브조이 목사가 그의 신문 '옵저버' 통해 노예제 폐지론의 원칙을 다시 채택하고 옹호한 것은 알튼 시민 대다수의 성향과 의지에 반하는 것이며, 신문이 알튼에서 설립될 노예제 폐지론에 전념해서는 된다는 신성한 서약과 보증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라고 결의한다.
  5. 우리는 옵저버가 노예제 폐지론에 유리한 기사를 출판하는 과정을 승인하지 않으며, 폐지를 주장하는 러브조이 씨를 비난하기로 결의한다.
  6. 회의에서 5명의 시민으로 구성된 위원회를 임명하여 러브조이씨를 기다리며 그와 협의하고, 그가 앞으로 옵저버의 칼럼을 통해 노예제 폐지론의 교리를 전파할 의사가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그들의 회의 결과를 대중에게 보고하도록 결의한다.

오늘 한국 사회와 전혀 반대이지 않은가! 혐오와 차별을 반대하자는시민사회에 대해 오히려 교회가 저런 소리를 내고 있으니 하는 말이다.

 

러브조이 목사가 알트 지역에서 신문을 발간하기 시작할 지역사회 리더들과 어떻게 합의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어쨌든 결론은 러브조이 목사는옵서버 통하여 계속 노예폐지론을 주장했고, 지역사회는 분노했고 그것이 죽음을 불렀다.

많은 사람이 침묵할 일리노이 하원의원 링컨은 젊은 정치인으로서 "모든 사람이 법을 위반하는 것은 아버지의 피를 짓밟는 것이며, 자신과 자녀의 자유를 짓밟는 것임을 기억하게 하라, 모든 미국인 어머니들이 법에 대한 경외심을 쉬게 하자... 한마디로 법이 국가의 정치 종교가 되게 하자"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러브조이 목사를 존경하던 링컨도 안타깝게 노예해방을 반대하는 자에 의해 암살당하고 말았다.

 

* FOX에서 방영되는 인가 장수 애니매이션안 ‘심슨가족 나오는 목사의 이름이 러브조이다. 여기서 러브조이는 매너리즘에 빠진 그렇고 그런 목사로 묘사된다.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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