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분열을 초래할 위험”
“교회 분열을 초래할 위험”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3.12.15 09: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오늘 아침 내가 읽은 내용 가운데 머릿속에 남은 내용이다. 이 기사는 시노드에 관한 내용이었다.

교회 안에서 시노드라는 단어가 회자되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근본적으로 교회가 조직이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조직이 되는 순간 권력이라는 것이 함께 생긴다. 조직은 권력의 탄생을 의미한다. 교회는 서기 이백 년 경 이미 조직으로의 길을 걸었다. 그리고 밀란 칙령 이후 그리스도교 안에서 조직은 당연한 것이 되었다.

조직으로서의 교회는 복음을 담지할 수 없다. 복음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는 권력이 없는 나라이다.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경쟁 속으로 던져지는 인간은 권력이 없는 나라를 상상할 수 없다. 그리고 마침내 권력은 그리스도교를 장악했다. 모든 그리스도교는 조직이 되었다. 아니 조직이 됨으로써 그리스도교 역시 권세가 된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권세가 된 그리스도교를 권력이 없는 곳으로 만들 것인가가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조직으로서의 그리스도교는 근본적으로 그 일을 할 수 없다. 조직을 허물어야 하는데 그것이 곧바로 분열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그리스도교는 조직이 되었을까?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통제하기를 원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통제하기 원하는 인간에게 조직이란 물고기의 물과 같다. 그리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스스로 통제하기를 원하는 인간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조직이 된 것이다.

스스로 통제하기 원하는 인간이란 창조의 모습인가?

그렇지 않다. 스스로 통제하기 원하는 인간을 오래도록 ‘가인의 후예’로 칭해오면서도 가인의 후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어야 할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가인의 후예가 된 것이다.

이 사실이 중요하다.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고 에덴의 동쪽으로 떠난 가인은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는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의 이름을 에녹이라 지었다. 에녹이란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의미이다. 하나님을 떠난 가인이 아들을 낳아 에녹이라 이름을 지었고, 성을 지은 후에도 성의 이름을 에녹 성이라 칭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났지만 여전히 하나님을 바라본다. 그러나 가인의 후예는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지만 하나님의 통치를 받지 않는다.

우리는 가인의 이야기에 자신을 비춰보아야 한다.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을 가인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가인처럼 자신의 모든 것에 에녹이란 이름을 붙이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하나님의 사람인 에노스의 후예가 아니라 가인의 후예가 된 것이다.

교회의 분열을 막고자 하는 가상한 생각까지 인간이 스스로 통제하려는 가인의 후예의 속성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볼 수 있어야 한다. 생각을 해보라. 교회의 분열을 막겠다는 생각은 하나님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교회의 분열을 막겠다는 생각의 본질은 조직으로서의 그리스도교를 허물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생각해야 한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금단의 열매를 주셨다. 그것의 의미는 아담과 하와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소위 말하는 자유의지다. 아담과 하와는 그러나 금단의 열매를 따먹었다. 그들이 그렇게 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셨을까? 아마도 아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간을 당신의 형상으로 만드신 근본적인 이유였다. 하나님은 인간이 당신을 배신할 것이라는 사실을 아셨어도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셨기에 스스로를 버림받음의 대상으로 만드셨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니었다. 인간의 배신에도 하나님의 사랑은 계속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이 다시 배신한 인간을 변화시켜 인간 스스로의 선택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가 된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이고 하나님 나라의 역사이다.

그렇다면 교회는 분열을 힘으로 막으려는 생각을 포기해야 한다. 자중지란에 빠지고 중구난망을 넘어 아수라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사랑이 치러야 하는 대가이다.

하나님이 인간의 배신을 아시면서도 그것을 허락하신 이유는 인간을 사랑의 대상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에덴은 그렇게 무너졌다. 가인은 에덴에서의 삶을 그리워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에덴을 구축하고자 했기에 자신의 모든 것에 에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그것은 에덴이 될 수 없고,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없다.

이 사실이 중요하다. 교회의 분열을 막고자 힘과 권력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를 부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늘 교회를 보호하시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고 그리스도시라는 사실을 강조한다. 인간은 교회가 분열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지만 그것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려할 때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통치를 가로막거나 거부하게 된다.

사랑은 분열 앞에 무방비가 되게 한다. 그리스도교가 사랑의 종교라면 교회의 분열을 힘과 권력으로 막으려 해서는 안 된다. 사랑의 대전제는 자발적인 동의다. 스스로의 선택할 수 있는 자유야말로 자유의 가장 큰 대가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아수라장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교회의 분열을 힘과 권력으로 막으려 해서는 안 된다. 힘과 권력으로 하나 됨을 유지하는 교회는 진정한 하나 됨을 이룬 것이 아니다.

사랑은 어렵다. 그래서 복음도 하나님 나라도 어렵다. 교회의 분열을 막기 위해 인간이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를 위협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거부하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 교회는 가인의 후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를 따라오려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라오려는 사람에게 자기를 부인하라고 하신 근본적인 이유가 바로 예수의 제자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하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교회의 분열”은 예수의 제자들이 져야 할 십자가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그러나 사랑은 하나님처럼 반드시 하나 됨을 이루어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바라보아야 할 것은 “교회의 분열”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예수의 제자인 그리스도인에게 “교회 분열을 초래할 위험”은 감수해야 할 십자가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그 십자가를 질 때 교회를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