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프리모 레비와 만나셨으려나, 서경식님
이제 프리모 레비와 만나셨으려나, 서경식님
  • 김기대
  • 승인 2023.12.20 0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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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9월부터 1 동안 유럽 벨지움에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었다. 교육목사로 있던 교회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던 고등부 교사로 함께 일하던 어떤 분이 나에게 이별의 선물로 한권을 주었다. 낯설었다. 보통 교역자들에게 주는 선물이 신앙서적인 경우와 달리 분이 선물한 책은나의 서양미술 순례’(서경식 지음, 창작과 비평사)였기 때문이었다. 서경식이 한국 독서 시장에 처음 이름을 알린 책으로 1992 4월에 초판이 나왔고 나에게 책은 5월의 재판이었다. 따끈따끈한 책이었다는 말이다.

그때까지 서경식의 , 서승과 서준식을 서경식과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미술책이라니! 어떤 경로로 오게되었는지 대충 짐작은 되지만 서가에 꽃힌 중에 미술 관련책이라곤 1980년대 민중미술을 하던 이들의 동인현실과 발언에서 출판한 무크지 형태의 동인지현실과 발언 뿐이었다. 시간날 때마다현실과 발언 열어 보곤 미술평론도 이렇게 재미있을 있구나를 느낀 것이 미술에 대한 전부였다.

분은 나에게 하필 책을 선물했을까? 보수적인 교회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 성향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조심했지만 분에게는 성향이 드러났던 것일까? 교회가 서울대학교 후문쪽에 있어서 고등부 교사 중에 서울대 교직원들이 많았다. 고등부 교사로 근무하던 다른 분으로부터는 그분이 공저한한국역사’(역사비평사) 받은 적도 있으니까. 책은 당시 최고의 담론이었던사회구성체 논쟁 입장에서 풀어나간 역사서였다. 그렇다면 모두 나처럼 숨기고 다니던 교인이었을까?

 

벨기에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두껍지 않은나의 서양미술순례 한숨에 읽었다. 나에게 선물한 분의 의도는 내가 추정한 것과 일치하는 같았다. 명의 형을 재일동포 간첩 조작 사건에 빼앗긴 그의 슬픔이 미술 작품과 함께 소개되었다. 서승은 고문에 지쳐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펄펄 끓는 난로를 껴안아 얼굴을 비롯한 몸에 심한 화상을 입었다. 얼마나 고문이 고통스러웠으면 화상의 고통과 얼굴의 흉터가 견디기 쉽다는 생각을 했을까? 서준식은 오랫동안 장기수로 복역하다가 1988 출소했고 서승은 1990 출소했다.

서경식은 부모와 함께 형들의 재판과정을 위해 한국을 자주 출입하면서 디아스포라 문제에 천착했다. 그의 부모는 모두 형들의 재판을 힘겨워 하다가 세상을 일찍 떠났다. 집안이 멸문지화와 같은 일을 당한 것이었다. 멸문지화는 군사정권이 아닌 검사정권 시절에도 계속되고 있다.

서경식이 별세했다. 일본에 거주하던 그는 18 70 초반의 이른 나이에 온천욕 그가 구명운동을 했던 형들보다 먼저 세상을 떴다. 그가 좋아하던 이탈리아 작가 프리모 레비 보다는 살았다.

그의 부고 기사에는 자기 땅없이 떠도는 자들, 디아스포라 문제에 관심을 가진 작가로 소개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재일교포로서 역시 디아스포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모국은 동강이 났고 재일 동포들은 한곳에 서기를 강요 받았으니 디아스포라 중에서도 아주 고약한 경우다. 어느 곳에 서기를 거부한 형들에게 가해진 형벌은 너무도 가혹했다. 그래서 서경식은 곳을 강요하는 것은 국가주의라는 입장에서 비판해 왔다. 나아가서 모국이라는 개념도 그는 내켜하지 않는다.

과정에서 서경식은 프리모 레비를 만났다(직접 만난 적은 없다). 이탈리아에 살던 유대인 프리모 레비는 천신만고 끝에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남아고향 이탈리아 토리노에 돌아 왔다가 1987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본래 화학을 전공했으나 2 대전 후에는 작가로 변신해 많은 책을 남겼다. 아파트 4층이라는 높이를 고려할 단순 실족사라는 추정도 있으나 서경식은 그의 자살설에 무게를 둔다. 프리모 레비의 사후 그의 집을 방문해서 글을 남겼던(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서경식은 아우슈비츠의 야만이 전혀 사라지지 않았던 전후 세계에 절망했던 프리모 레비의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2 대전 프리모 레비는 고향에서 유대인으로분류 적이 없다. 그는 유대인이 아니라얼굴에 주근깨 많은 아이정도로 불렸었는데 국가사회주의 정당나치’(민족) 그를 유대인으로 호명하면서 함께 호명된 이들을 죽음으로 몰았다. 나치가 사라졌다고 생각했지만 유대인 혐오를 넘어서는 각종 야만이 판치는 세계를 프리모 레비는 견딜 없었던 것이다.

내가 선물로 받은서양미술순례 낡은 채로 아직도 서가 중심부에 자리잡고 있다. 고등부 교사 김아무개 선생 덕분에 서경식을 알았고 서경식을 통해 프리모 레비에게 다가갔다. 벨기에 1 거주하는 동안 유럽을 여행하면서 취향도 아니었던 미술관 순례가 여행 일정 중 하나가 되었고 내 서가에 쌓이는 미술관련책을 보면서 생기는 뿌듯함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너무 선해서 때문에 억울하게 살다가 사람이 모이는 초월의 공간이 있다면 그곳에서 서준식과 프리모레비는 함께 만났을 것이다. 디아스포라도 민족도 국가도 없는 그곳에서 모두 부디 행복하시라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인터스텔라'에 나오는 시공간을 넘나드는 책장 장면처럼 운 좋으면 그 공간에서 '나의 서양미술순례' 덕분에 나도 그 두 분을 만날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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