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능한 교회를 향하여 ( For A Church to Come)
불가능한 교회를 향하여 ( For A Church to Come)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4.01.01 11: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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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교회를 항하여(For A Church to come)

새해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내겐 새로운 목표나 바람은 없다. 내 목표는 교회다. 교회는 불가능하다. 나는 그 불가능을 향해 달려가는 길을 선택했다. 그 길에는 완성이나 성공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새로운 목표가 설정될 수가 없다. 물론 소제목처럼 작은 목표가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교회라는 목표를 향한 디딤돌로서 성취가 목적이 아니다. 따라서 내겐 새로운 목표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내가 목적으로 삼고 있는 교회는 교회인 사람들의 공동체다. 얼마 전부터 [교회를 떠나 교회가 되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고 있다. 교회가 목표인 내게는 당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그 관심은 사실 이십여 년 전부터 이어져 왔다. 처음 십오 년 정도는 교회를 떠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손쉽게 목적을 성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사람들에게 길을 안내하고 싶었고, 그 와중에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도 싶었다. 

지금도 여전히 교회를 떠나는 사람들의 행렬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교회를 떠나는 순간 사람들은 모래알처럼 세상이라는 급류에 휘말린다. 그것으로 끝이다. 그들의 교회를 향한 여정은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의심과 불신이라는 치명적인 낙인이 찍힌다. 그렇게 의심과 불신의 낙인이 찍힌 사람들은 심판관(하나님을 대신하는 사람)이 되어 판단을 할 뿐 자신이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 

물론 그 중에는 몇몇 사람들이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바라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 역시 교회가 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이런 내 말이 그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거나 불쾌하게 들릴 것이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교회가 되지 못하고 다만 피상적으로 자신들이 떠났던 교회의 잘못된 현상에 대한 반작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다. 피상적인 노력과 성취만으로도 그들은 이미 자신들에게 매료되어 기쁨을 느끼고 만족한다. 교회가 애초에 불가능한 것임을 안다면 그런 만족이 바리새파 사람들이 느꼈던 것과 동일한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 자체로 하나의 교회(성전)다. 그렇게 성전인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교회를 이룬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이 그리스도의 영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교회를 나간다는(혹은 예배나 미사를 드린다는) 사실로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잘못된 교회 이해이다. 그리스도의 영을 받아 모시면 우리는 성전(교회)이 된다. 성전이 된 사람은 더 이상 육신(욕망)을 따라 살지 않고 생명과 평화를 위해 살게 된다. 생명과 평화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게 된다. 하나님 나라는 죽은 후에 가는 나라가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며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하나님 나라의 삶이 시작되면 모든 시간이 동일해진다. 영적인 삶이란 영원한 시간 속에서 이미 살아가기 시작한 삶이다. 이제 나는 그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새해가 되어도 그것이 새삼스럽지 않다. 내게 주어진 시간은 하나님의 시간으로 모두가 동일하다. 나는 그 시간을 감사로 받아 최선을 다해 하나님 나라의 삶으로 채워가야 한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여 주실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생명이고 하나님의 의는 평화다.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삶을 먼저 구하는 삶을 살게 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며 새해를 거룩하게 맞는다. 첫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며 엄숙하게 새해를 맞는다.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새해의 소망을 만들어 기도를 드리기도 한다. 그러나 잘 생각해보라. 그것이 정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인가를.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들이 드리는 기도의 내용은 “이 모든 것”에 속하는 것이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모순이다.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나,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성령에 속한 것을 생각합니다.”

성령을 따라 산다면서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은 안다. 자신이 정말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하고 있는지를 헤아려보라. 그리고 그것이 아니라면 그리스도의 영을 갈망하라.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육신에 속한 것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생명(하나님 나라)과 평화(하나님의 의)를 생각하게 된다.

교회란 바로 이렇게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다음은 오늘 본 기사의 결론 부분이다.

“새기쁨교회는 교인들의 기대보다 빨리 안정을 되찾았다. 불과 몇 달 전 상태를 생각해 보면 기적과 같은 일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 공동체를 남기신 이유가 있을 것이다. 교인들은 정말 '교회다운 교회'를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믿는다. 목사를 비롯한 특정한 누군가에게 권력이 쏠리지 않는 평등한 교회, 느리더라도 모두가 만들어 가는 민주적인 교회, 성장보다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추구하는 교회, 그래서 교회를 떠나 교회가 되기로 한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희망이 되는 교회.” - [출처: 뉴스앤조이] [교회를 떠나 교회가 되다] ⑤ 새기쁨교회(하)

기사에서 ‘교회다운 교회’가 어떤 교회인지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나는 교회다운 교회는 없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교회다. 그리고 그 완완성도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열정과 성숙도에 따라 달라진다. 그럼에도 분명한 특징이자 공통점은 교회인(그리스도의 영을 지닌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 존재한다.

※목사를 비롯한 특정한 누군가에게 권력이 쏠리지 않는 평등한 교회, - 능력이 있는 사람은 능력이 없는 사람을 섬기고 기꺼이 희생하기 때문에 권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평등한 교회
※느리더라도 모두가 만들어 가는 민주적인 교회, - 다수결로 의견을 수렴한 후에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교회(만장일치가 이루어지는 교회)
※성장보다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추구하는 교회, - 작아짐으로써 상호복종하고, 서로 섬기며, 서로 사랑하는 교회(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추구하기보다는 인간의 관계를 통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이루어가는 교회)
※그래서 교회를 떠나 교회가 되기로 한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희망이 되는 교회.(이런 생각은 반드시 자기만족이라는 영적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 그래서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에 참여하는 교회

기사를 보고 언뜻 떠오른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나는 올해의 첫 글로 교회에 관한 글을 썼다. 내겐 당연한 일이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남기신 선물로써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이자 온 세상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방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뿐만 아니라 죽는 날까지 불가능한 교회를 향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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