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이선균에게 사과할 용기가 있을까?
언론은 이선균에게 사과할 용기가 있을까?
  • 김성재 에디터
  • 승인 2024.01.10 0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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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소환일 하루에만 기사 1천여 건 포털에 '도배'

'최은순 구속' 200건·'김건희 명품' 70건과 비교

망신주기·선정적·추측기사…주류언론도 동참

경찰, 내사 단계서 공개…언론은 그저 받아쓰기

언론 "뻔뻔한 경찰" 비판, 시민들은 "언론도 뻔뻔"
고 이선균 씨 장례식장의 영정 모습. KBS 뉴스 화면 갈무리
고 이선균 씨 장례식장의 영정 모습. KBS 뉴스 화면 갈무리

이제는 고인이 된, ‘오스카상 수상자’ 이선균 배우의 마약혐의 수사 관련 보도는 지난해 10월20일부터 시작됐다. 한 지역 신문이 전날 “톱스타 L씨, 마약혐의 내사 중”이란 제목의 기사를 보도했고 다음날부터 실명을 밝힌 기사들이 쏟아졌다. 포털 네이버에서 20일 하루 동안 ‘이선균’으로 검색된 ‘마약 혐의 내사’ 관련 기사는 대략 300건 정도였다. 이 기사들은 하나같이 정확한 취재원을 밝히지 않은 채 ‘경찰이 내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는 내용만으로 작성되었다.

클릭 경쟁을 벌이는 황색 매체들만 이렇게 많은 기사를 쏟아낸 것은 아니었다. 이른바 ‘주류 언론매체’ 18개(전국단위 종합지 10개, 4개 경제지, 3개 지상파 방송사, 1개 보도전문채널)를 빅카인즈에서 ‘이선균&마약’으로 검색해보니 10월20일에만 50여개 기사가 나왔다.  주류 언론들조차 경찰 내사 단계에서 흘러나온(혹은 경찰이 흘린) 정보에 대해 아무런 의심이나 문제의식 없이 받아쓴 것이다.

도를 넘은 보도는 갈수록 많아졌고 심해졌다. 첫 실명 보도가 나간 10월20일부터 일주일간 포털에서 쏟아낸 ‘이선균 마약혐의’ 기사는 3천여 건에 달했다. 이선균 씨가 처음 경찰 소환조사를 받은 28일에는 하루에만 무려 1100여건의 기사가 포털에 게재됐다. 그야말로 ‘기사 홍수’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 최은순 씨가 ‘통장잔고 위조 혐의’로 법정구속된 지난해 7월21일 네이버에 ‘최은순’ 관련 기사는 200건 정도였다. 김건희 씨의 ‘명품백 선물 의혹’ 보도가 포털에 등장한 첫날인 11월28일 네이버에서 ‘김건희 명품’으로 검색된 기사는 70건 정도에 그쳤다. 주류 언론을 포함한 대부분의 언론들은 한 영화배우의 ‘마약혐의’ 관련 기사를 대통령 장모 구속, 대통령 부인 김영란법 위반 의혹보다 훨씬 더 중요하게 취급한 것이다.

기사 내용도 문제였다. 내사 단계에서부터 언론에는 온갖 망신주기, 추측성, 선정적인 기사가 춤을 췄다. 무속인의 이선균 씨 사주풀이 기사, 영화·광고 촬영 중단과 그로 인한 이선균 씨의 경제적 부담을 예측하는 기사, 포토라인에 세워 서서 고개숙인 모습 등을 그대로 쓰고 사진 찍어 보도했다. 공영방송 KBS가 사적 대화 내용까지 털어내 보도하자 다른 여러 매체들이 받아쓰기도 했다.

이선균 씨의 마약 검사 결과는 모두 음성으로 나왔다. 첫 간이검사에서 음성이 나왔을 때 어느 언론매체도 경찰 수사 과정에 대한 의문이나 언론에 흘리기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동안 수없이 문제가 되어온 수사당국의 ‘피의사실 공개’보다 더한 ‘내사 단계의 혐의사실 공개’에 대해 언론은, 심지어 ‘주류 언론들’조차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저 신나게 받아쓰기만 한 것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SNS에 “언론들은 이선균 씨의 비극을 보도하면서도 아무도 이 규정(형사사건의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을 말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빅카인즈 '이선균 & 마약' 주요 언론사 기사검색 결과 화면 갈무리
빅카인즈 '이선균 & 마약' 주요 언론사 기사검색 결과 화면 갈무리

무죄추정의 원칙과 형사사건 공개금지 규정에 따라 수사당국이 피의자(혹은 혐의자)의 혐의 사실을 언론이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기자들 스스로도 잘 알 것이다. 한국신문협회, 한국기자협회 등 언론인들이 채택하고 준수할 것을 다짐한 ‘신문윤리실천요강’에는 이런 고귀한 내용이 담겨있다. “제3조 보도준칙: ⑨(피의사실 보도) 경찰이나 검찰 등 수사기관이 제공하는 피의사실은 진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제7조 범죄보도와 인권존중: 형사사건의 피의자 및 피고인은 무죄로 추정된다는 점에 유의해 그의 명예와 인격권을 존중해야 한다.”

‘선정보도 금지’나 ‘취재원 명시’는 이런 고귀한 ‘신문윤리실천요강’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너무나 기본적인 취재·보도 윤리다. 이선균 배우를 취재·보도한 3개월여 간 언론은 수사기관이 제공하는 피의(혐의) 사실의 진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경찰 ‘받아쓰기’ 이외에 무슨 노력을 했을까? 경찰로부터 마약 의혹을 받고 있지만 검사결과 ‘음성’으로 나온 이선균 배우는 언론의 수천 건의 기사로 인해 ‘유죄’로 추정된 것이다.

이선균 배우와 함께 마약 혐의로 경찰에 불려갔던 지드래곤은 결국 마약 누명을 벗었다. 그렇다면 경찰 수사에 중대한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가? 이런 문제를 언론은 한 번이라도 지적한 적이 있는가? 선정적 보도가 계속될 때 언론은 자정(自淨)의 목소리를 낸 적이 있는가?

혐의 사실을 언론에 누설하고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비판이 경찰에 쏟아지자 윤희근 경찰청장이 “수사가 잘못된 것은 없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겨레와 중앙일보, 동아일보가 ‘뻔뻔한 경찰’이라는 비판을 내놓았다.

한겨레는 “정당한 사유 없이 (비공개 소환요청을) 거부한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잘못한 게 없다는 것이다. 물증 없는 ‘망신주기’ 수사에 사과를 해도 모자랄 판에, 소환 장면 등이 공개되지 않도록 한 내부규칙(경찰청 훈령)을 어겨놓고 잘못이 아니라니, 그게 경찰 조직의 수장이 할 말인가”라고 경찰을 호되게 비판했다(12월30일자 “이선균 수사 비판에 잘못 없다는 뻔뻔한 경찰청장” 제목 사설).

같은 날 중앙일보도 사설에서 “비극 초래 무리한 수사에도 반성 없는 경찰”, 동아일보는 ‘횡설수설’ 코너에서 “심리학자들은 누적된 수치심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몇몇 주류 언론이 수사기관의 잘못된 수사를 비판한 것은 다행이지만, 너무 늦었다. 그리고 그 비판을 언론 자신에게는 하지 못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수사기관이 내사 단계의 혐의를 누설하는 것을 보고도, 또 언론이 그걸 신나게 받아쓰기하는 것을 보고도 문제제기나 비판하지 못한 언론 자신부터 반성하고 비판했어야 한다. 이선균 배우의 죽음이 알려지자 SNS에는 검찰과 함께 언론에 대한 책임론이 들끓었다. 경찰에 ‘뻔뻔하다’는 비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시민들은 아마도 ‘경찰과 언론 중 누가 더 뻔뻔한가’라고 묻고 있을 것이다.  
 

이 와중에 패륜 보도에서 1등을 달리는 조선일보는 “이선균 죽음이 검찰 탓이라는 야당” 제하 기사와 “비극을 정치화하는 사람들, 거울 속 제 얼굴부터 보길” 제목의 사설로 검찰 감싸기에 나서 헛웃음을 짓게 했다. 윤석열 검찰정부가 출범한 뒤 느닷없이 마약 수사를 강화한 것은 여러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한동훈 전 법무장관은 마약수사의 필요성과 의지를 강조한 뒤 지난해 이태원 참사의 현장에 질서유지 경찰이 아닌 마약단속 경찰이 다수 배치된 것도 비판을 받았다.

정권유지 차원에서 무리한 마약수사가 추진되고 있다는 합리적 의심이 제기되는데도 이번 마약수사가 이 정권의 핵심세력인 검찰과 관계없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이다. CNN 등 외신들이 이선균 배우 죽음을 이 정부의 마약수사와 관련 지어 보도한 이유를 생각해보고, 사설의 제목처럼 스스로 ‘거울 속 제 얼굴’부터 돌아봐야 할 신문이다. 

불신을 넘어 혐오의 대상이 된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스스로 성찰도 반성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못해도 좀처럼 사과하지 않는 게 우리 언론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 봉하 사저 앞에서 진을 치고 낮밤 동안 사생활을 훔쳐보던 언론, 검찰이 흘려준 혐의내용을 받아쓰고 부풀려 써 기어코 민주당과 정의당의 여러 정치인들을 여론재판에 내몰았던 그 언론들은 여전히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사람이 죽었다. 잘못된 언론 보도에 내몰려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죽음 앞에 과연 언론은 한 줄 반성문이라도 쓸 용의가 있는 것일까? 이선균 배우의 사생활을 털고 그의 이름 앞에 ‘마약 혐의’를 붙여 보도한 기자 중 과연 누가 사과문을 쓸 용기를 보여줄 것인가?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https://www.mindl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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