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봉고를 몰던 이선균의 ‘파주’
교회 봉고를 몰던 이선균의 ‘파주’
  • 김기대
  • 승인 2024.01.11 10: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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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에 등장하기 시작한 신학생들

이선균이 나온 영화 최고의 작품으로 치기에는 그렇지만 나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영화는파주’(감독 박찬옥, 2009). 이선균이 맡았던 극중 김중식은 시국사범으로 수배중인 대학생으로 어느날 선배가 목회하는 파주를 찾는다. 선배집에 얹혀 살기 미안한 김중식은 목사를 도와 교인들을 실어나르는 봉고차를 운전한다. 귀농을 준비하던 목사는 중식에게 이제 수배도 풀렸으니 네가 목회를 맡아 달라고 부탁하는 과정에서 중식이 신학생이란 사실이 소개된다. 중식은 목회에 자신이 없다며 거절한다. 80년대 진보적 신학교를 다닌 적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낯익은 모습이다. 작은 교회, 시국사범, 야학.

목회에 자신이 없다는 중식의 말에는 여러가지 일들이 연루되어 있겠지만 가장 것은 선배와의 부적절한 관계였다. 시국사범으로 이미 수감중인 선배 집에 숨어살던 중식은 선배의 아내이면서 동시에 운동권 선배이기도 자신의 첫사랑과 몸을 섞는다. 한창 사랑의 행위에 빠져 있을 어린 아이가 끓어 넘치는 뜨거운 물에 데어 화상을 입는 사건이 발생한다. 끓는 물과 끓는 사랑의 은유적 대비는 화상이라는 불행을 가져왔다. 장면은 부부가 사랑을 나누다가 아이를 잃고 마는안티크라이스트’(감독 라스 트리에, 2009) 연상케한다.

교회 부설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선균 뒤로 성경책이 쌓여 있다.
교회 부설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이선균 뒤로 성경책과 찬송가가 쌓여 있다.

 

사건으로 파주를 찾은 중식은 죄책감을 지닌 교회차를 몰며 교회 부설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 파주에서 은수 은모 자매를 만나 언니 은수와 살림을 차리지만끓음 악몽 때문에 아내 은수와 잠자리를 하지 않는다. 은수는 그것이 대학생 중식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여러 시간대를 오가면서 전개된다. 요약하면 은모의 실수로 일어난 가스폭발사고로 은수는 죽고 중식은 그럼에도 파주를 떠나지 않는다. 은모가 살던 동네도 재개발 열풍이 불고 주택들이 철거 위협에 처하자 중식은 철거대책위원회의 리더가 되어 주민들을 이끈다.

은모는 언니를 사랑하는 중식의 마음이 거짓이므로 언니를 지켜야 한다고 말하지만 결국은 언니를 지키기 위해 중식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숨겨야 했던 것이다. 과정에서 실수로 가스 배관에 칼을 대었지만 자신은 그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은모의 여러 가출이 있었기에 가출을 중심으로 영화는 여러 시간대를 오가면서 결국 모든 의심을 거림찍하게 해소하면서 끝난다.

신학생 중식은 자신의 죄책감 때문에 힘든 길을 선택한다. 십자가를 매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던 예수가 연상된다. 파주의()’ 언덕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중식은 자신에게 지워진 죄의 무게를 회피하지 않는다. 언니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은모의 의심, 중식이 보험 수혜자로 되어 있는 언니의 생명 보험 때문에 사고를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 도대체 얻어 먹으려고 파주에 머물까하는 의혹에도 답하지 않는다.

철거 대책반 일로 다시 경찰서에 갇힌 중식을 면회 은모는 이렇게 묻는다.

은모: 이런 일을 하세요. 일이 형부한테 무슨 보람이 되죠?

중식: 글쎄...처음엔 멋있어 보여서 같고 다음엔 내가 갚을 많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서였던 같은데, 지금은 모르겠어. 그냥 일이 생기는 같아. 끝이 .

보험수혜자가 본래는 중식이었으나 언니 사고 오히려 수혜자를 은모로 바꿨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지만 은모는 조차도 의아해 한다. 얼핏보면 맞는 의심일 수도 있다.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는가? 나중에 시국사범이 아니라 보험사기범으로 감옥에 갇힌 뒤에도 중식은 굳이 변명하려 하지 않는다. 나중에 화상을 입었던 선배가 찾아와 아이가 수술로 흉터를 모두 없앴다는 사진을 보여주어도 중식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아이의 완쾌와 그의 죄책감은 별개라는 생각에서다.

나는 벌을 받아야 죄인이라는 죄책감이야 말로 그가 평생 견뎌야 삶의 무게다. 그렇다면 제대로 목회자가 될만한 재목이 아니던가? 알량한 속죄 교리로 교인들에게는 죄의 무게를 전가하면서 자신은 마치 대속자처럼 행세하는 목사들에 비한다면 중식은 훌륭한 목회자 감이다. 하지만 그는 목회의 길을 걷지 않는다. 이게 한국 교회의 비극일지도 모른다.

기도하는 남자’(감독 강동헌,2020)파주만큼 한국 교회 것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 영화가 있었을까? 영화 속의 한국 교회는 각종 범죄의 수괴에 해당하는 악인들이 양심 세탁을 위해 찾는 곳이거나 위선으로 덕지덕지 때묻은 목사들이 있는 곳이다. 이런 판에 박힌 설정에 비하면 신학생들은 새롭게(?) 그려지고 있다. ‘독전’(감독 이해영, 2018)에서 신념에 가득찬 자기만의신학 설파하는 차승원은 캐나다에서 신학을 공부한 엘리트 마약 업자다. 넷플릭스 영화서울 대작전’(감독 문현성, 2022)에서 고경표는 신학생 때부터 클럽에서 놀던 현직 DJ. 추락한 한국교회의 모습을 코믹하게 담는 더이상 신선하지 않다. 이왕 한국 교회 현실을 영화에 담으려면파주기도하는 남자처럼 사실주의적으로 다루든지독전이나서울대작전처럼 전에 없는 모습으로 다루기를 바란다. 감독들의 창의성을 기대한다.

파주 모호함과 억울함이 언젠가는 걷힌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마약수사에 지쳤을 이선균의 괴로움은 충분히 공감하지만 견뎌냈으면 하는 아쉬움이 파주를 다시보면서 깊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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