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과의 인연
스님과의 인연
  • 지성수 목사
  • 승인 2024.02.17 05: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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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에 아무런 끈도 없이 시드니로 흘러 들어온 보안 스님을 처음 만났다. 기왕에도 목사 보다는 스님들과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주저 없이 내가 하는 대화 모임에 참여를 권했었다. 그런데 보안은 한 번 왔다간 다음에는 이런 이유, 저런 이유로 계속 참석을 하지 못했다. 어떤 때는 온다고 약속을 하고서는 오지 않기도 했다. 나는 나름대로 포교에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권유했고 젊은 스님이라서 기대도 걸고 있었는데 계속 기대에 어그러져서 마지막에는 전화를 해서 "왜 그러느냐?”고 따져 물었더니 보안은 "제가 사람 관계에 서툴러서 그렇습니다."라고 답을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아니? 스님이 대인관계에 서투르다니? 하기는 수도자에게 은둔형이 어울리기는 하겠다." 는 생각이 들었다.

낮을 가린다는 것을 스스로 담을 쌓는 일이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스스로 만든 경계라는 올가미에 갇혀 지낸다. 살기 위해서는 선을 그어야 할 때가 있지만 그 선을 경계로 받아들이거나 집착의 도구로 이용해서는 곤란하다. 이번에 시드니에 가보니 사람을 피해 다니던 스님이 부처님의 은덕으로 시드니 북쪽으로 60 km 떨어진 전기도 수도도 없는 곳에 36에이커의 땅을 장만하고 터를 잡고서. 20년 동안 더부살이를 하다가 난생 처음 혼자 살아 본다며 ‘너는 자연인이다’가 되어서 자연과 한창 적응 중이었다.

그래서 이번에 내가 하는 목요 신앙과 신학 사랑방에 초청해서 명상훈련 시간을 가졌다.보안 스님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고교 때 불교학생회 활동을 하다가 졸업 후 바로 절로 들어갔다고 했다. 개신교에서는 고교를 졸업하고 신학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그것은 직업을 택한 것이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예수에게 큰 신세를 졌다고 하는 신앙에서 출발한 것이다. 그런데 부처님에게 신세 진 것도 없는데 고교 졸업 후 바로 절로 직행했다는 것에 대하여 나는 혹시 다른 동기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품게 되었다.

왜냐하면 내 경우가 그러했기 때문이다. 즉 메시아 컴플렉스에 빠지는 길이다. 이 병은 순수한 십 대에 감염되기 쉬운 병으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 자신이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증세가 나타나는 병이다. 이런 증세를 가진 사람들이 스님, 수도자, 목사들이 되는 것이 일반적인 증상인 것이다.

내 경우에는 한 가지 요인이 더해져서 증세가 심했었다. 전혀 평화스럽지 못한 집안 환경이 오히려 나를 피안의 세계로 떠밀어 일직이 수도자가 되는 꿈을 꾸게 되었다. 현실에서의 좌절감이  오히려 비현실적인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한창 대중문화에 관심을 갖는 청소년기에도 친구들이 팝송을 들으며 가사를 옮겨 적고 했었지만 나는 한 번도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수도사가 되기로 해서 성인전에 관심이 많았던 나에게 사랑이니 이별이니 하는 팝송의 내용들이 관심을 끌 수가 없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일찍 허무주의에 빠져서 한 방에 인생을 끝내고 싶은 생각도 했었다. 그러니까 짧게는 ‘화끈하게 살다 죽는 것’이고 길게는 수도사가 되는 것인 셈이었으니 심리학적으로는 회피적 영성인 셈이다. 비록 회피적 영성으로 시작되었지만 프로의 세계에 들어와서는 투쟁의 영성으로 바뀌기는 했다.

이번에 호주에 가서 한 달 동안 식당 2층에서 지내면서 20여 명의 젊은 직원들이 하루 10시간씩 톱니바퀴 돌아가듯 열심히 일을 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역시 사람을 길들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돈이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종교의 역할을 무엇일까? 삶에서 필수적이지도 않은 종교를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가면서 찾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삶이 절박하거나 아쉬워서 종교를 찾는 일반적인 현상은 어디에나 있고 그럴 경우는 아무 신앙이나 의지하면 될 일이다.

그러나 인류보편의 가치를 추구하는 종교는 흔하지도 않지만 아무나 추구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앞에 예를 든 보안 스님처럼 처음부터 우선 순위를 물질적 가치 보다 정신적 가치에 두는 길을 택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 일인가? 그러나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하는 일이 바로 제대로 된 종교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요즘은 찾아보기가 힘들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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