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을 밀면 문이 되고, 눕히면 다리가 되고 (3)
벽을 밀면 문이 되고, 눕히면 다리가 되고 (3)
  • 이보교
  • 승인 2024.02.17 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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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방문 마지막 날

이민자보호교회 네트워크(이하, 이보교)는 1월 29일(월)부터 31일(수)까지 미-멕시코 국경지역인 텍사스 주의 엘 파소와 멕시코의 후아레즈 시에서 국경체험(Border Encounter) 프로그램에 16명의 성직자, 활동가, 사회복지사, 변호사들이 참여했다. 

이보교는 추방 위기에 놓인 서류 미비자들을 비롯한 사회적 약자에게 피난처를 제공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꿈으로 2017년 시작되었다. 뉴욕, 뉴저지, 시카고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미 전역에 150여 가입교회들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보교는 작년 제1회 민권운동 역사순례에 이어서 올해 제2회 엘 파소 국경체험을 다녀왔다. 이 현장들이 갖는 의미는 현재 미국 내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 중의 하나인 난민들의 애달픈 삶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음이니라"(신 10:19) 이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현장이 이보교에게 나침반이 될 것이라는 소망으로 찾았다.   

정글을 지나고, 바다를 건너며, 사막과 강을 가로질러 수 천 킬로미터를 걸어온 난민들이 마주하는 국경 장벽은 난민들에게 거절의 현장이면서 동시에 그들을 뜨겁게 맞이하는 환대의 장이었다. 손쉽게 사랑을 포기하는 우리 삶 속에 엘 파소 국경은 우뢰 같은 외침을 들려주었다. "벽을 밀면 문이 되며, 눕히면 다리가 된다" 앞으로 3번에 걸쳐 우리의 희망체험을 연재하려고 한다. -편집자 주-

 

국경방문 마지막 날

어느덧 엘파소-후아레스 국경방문 일정을 마무리하는 아침, 마치 금방이라도 쟝고가 말을 타고 권총을 양쪽으로 차고 나올 것 같은 황량한 텍사스 사막능선을 넘어 기분 나쁘지 않는 엘파소 정유공장의 매연이 드라이한 사막 바람을 타고 우리가 머물고 있는 숙소 ABARA 로 불어온다.

비행기 시간으로 일찍 돌아가야 하는 이보교 동료들이 있어 마지막 날 일정을 한 시간 일찍 시작한다. 수년간 소명을 가지고 난민과 이민자들을 위한 일들을 국경에서 하고 있는 ABARA 스텝들이 밴을 벌써 숙소 앞에 준비시킨다.

10 분여 운전을 하고 국경으로 가는 길에 난민을 위한 쉘터들이 여기저기 보이는데 그 담벽에 그려진 난민 가족들과 기도하는 사람들, 그리고 비둘기를 그려넣은 벽화가 인상적이다. 또 줄을 서서 일용품들과 식료품을 나누어주는 모습이 보인다. 이 도시가 이민자와 난민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이야기와 고민들이 있었을지 짐작하게 한다.

국경장벽에 도착하기 바로 전, 일행은 예전 군대병영으로 사용한 군 시설 바로 옆 건물에 잠시 멈추었는데 이곳이 ABARA 에서 앞으로 사용할 난민을 위한 쉘터라고 한다. 낯선 외국땅에 와 입은 옷외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약한자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그들의 이웃이 되고자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는 스텝들로부터 느껴지는 자랑스럼으로 가슴이 따뜻해진다.

국경장벽을 바라보며

드디어 우리 일행 앞에 무겁게 서 있는 TV 로만 보던 미국남부국경의 18 피트 장벽을 본다. 녹슬고 붉은 쇠철사로 얼키고 설켜 미국과 멕시코 국경을 굽이보며 서있다.

이 엘파소 장벽은 9.11 테러전에는 존재하지 않았고, 그 이후 각기 다른 행정부들이 장벽을 세웠다고 한다. 보통 18 피트 높이의 장벽인데 높게는 30 피트까지 올려 세워지고 있고 텍사스 리오 그란데 주위에 설치되는 장벽은 1 마일당 이천백만불의 비용이 든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San Clemente 에서 텍사스 Brownsville 까지 멕시코와 미국 사이를 가르는 국경선 3,145 km 의 한 지점에 있을 철책장벽을 그리며, 그 머나먼 여정을 했을 난민과 이민자들이 상처난 발과 무거운 어깨로 이 곳에 도착했을 때 어떤 심정이었을까? 어쩌면 자유로이 국경선을 날아오가는 전신주 전기선에 앉아 있는 새들은 그 심정을 알 수 있을지.

누가 꽂아두었을까? 장벽의 철책사이에는 텍사스 사막바람에 시들어 말라 버린 꽃들이 그 누군가를 위해 꽂혀져 있다. 고국을 떠나 여러 모양으로 미국의 꿈을 가지고 위험한 정글과 메마른 사막과 강을 지나오다 중도에 시든 꽃처럼 죽어간 이민자가 최근 통계에 잡힌 것만 한해 800 명 이상이 된다고 한다. 이제 그들에게 아메리칸 드림은 이제 악몽(American Nightmare)이 되어 버린다.

ABARA 와 같은 곳에서 이들의 지친 손을 잡아주기도 하지만, 난민과 이민자의 유입을 막기위해 텍사스 주지사는 최근 여러 주지사들과 국경에서 국경위기를 성토하고, 일부 텍사스 주민들은 민병대를 조직해서 국경을 넘는 이민자들을 단속하고 나섰다. 국경은 상상보다 복잡하고 참담하다.

이민자들의 통로에서 이름없는 이민자들을 보다

장벽 주위에 있는 몇개의 역사적 기념물들(Historic Markers)로 일행은 자리를 옮긴다. 돌로 만든 세개의 기념비들이 남쪽 장벽을 향해 화려한 장식도 없이 서있다. 초기 정착한 스페인 식민개척자 Juan de Oñate 의 정착을 기리는 기념비와 아무런 표기가 없이 이름도 없이 그냥 바로 옆에 서있는 또다른 기념비가 대조를 이룬다.

원래 El Paso 는 통로 (The Pass) 라는 뜻으로 여러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들이 거주했으며, 이들은 유럽인의 식민지화 이전 수천 년 동안 이 지역에 살았다고 한다. 16 세기 들어와 스페인 탐험가와 정착민이 이 지역에 도착하여 스페인의 신대륙 식민지화 노력의 일환으로 선교지와 정착지를 세웠다. 그 이후 19 세기 초 멕시코 독립 전쟁으로 이 지역은 멕시코의 지배를 받게 되었고, 19 세기 중반에 프랑스가 지배하는 루이지애나 영토의 영향을 받았고 나중에는 미국 서부 확장의 일환으로 미국 정착민이 유입되었다고 한다. 19 세기 말과 20 세기 초에 중국 이민자들이 들어와 철도 건설 및 기타 노동 집약적 산업 분야에서 기회를 찾아 엘파소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그외에 초라한 기념비의 주인공인 이름도 모를 많은 이민자들이 이 통로를 거쳐 신의 보살핌을 기도하며 거쳐갔으리라. 이렇듯 원주민이 살던 이곳에 여러 이민자들이 다른 모양의 꿈을 가지고 지나갔고, 우리는 바로 오늘 이곳 엘파소 국경에서 맞닥드린 난민문제를 어떻게 합당한 정의와 인간애로 다시 이해하고, 고민할지 기도드린다. 함께 눈을 감고 “우리 오늘 눈물로”를 부르며 그 소망의 길을 간구한다.

국경수비대 요원과의 대화

일행은 이번 국경체험의 마지막 일정인 국경수비대 요원(CBP Agents)과의 만남의 자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두명의 CBP 베테랑이 나와 현재 국경의 현실을 상세하게 브리핑하고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다. 엘파소에 있는 국경수비대는 미국국경에 있는 65 개 스테이션 (Border Station) 중 하나이고, 많은 난민의 국경유입으로 신속한 국경통과절차와 망명절차는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국경으로 온 이민자는 국경수비대에 잡히면 안도의 숨을 내쉰다고 한다. 어떨때는 민병대의 추격을 피해 도망을 가는 과정에서 부상을 입거나 고초를 당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국경을 넘은 이민자의 국경통과를 무조건 거부할 수 없고 일단 국경을 넘으면 구금을하고 샤워를 시키고 의복을 제공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민자 스크리닝 절차가 시작된다. 이민자의 신분을 증명하는 개인서류를 확인하고, 이민신분과 국적등을 확인하고 신체검사와 지문을 찍는다. 그 이후 인터뷰를 통해 망명 가능성 또는 난민신분적격을 심사하고 사유가 있는 경우 앞으로 있을 이민법원 절차를 위해 법원출석명령서(NTA)를 부여받고 구금에서 풀려나 희망하는 곳으로 간다고 한다. 물론 이민법상 구제사유가 없는 경우는 계속 구금이되고 추방절차를 밟는다고 한다.

현재 60,000 명의 요원을 가진 CBP 는 전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의 법집행기관이지만 유입되는 이민자들에 비해 턱없이 적은 요원들과 시설부족으로 열악한 근무 환경에 놓여 있다고 한다. 국경을 수비하는 요원들의 고충과 국경현실을 직접 요원들을 입을 통해 전해들을 수 있어 국경의 모습을 파악하기에 좋은 기회가 되었다. 우리가 만난 요원은 국경수비 업무수행을 하며 난민 가족들이 여러 이유로 그들의 나라를 뒤로 하고 수만리를 역경을 감수하고 국경으로 오는 현실에 슬픈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솔직한 심정을 전했고, 각국에 나가 있는 미대사관에서 비자와 영주권 심사를 용이하게 해서 합법적 입국을 늘리고, 조속히 의회에서 입법을 통해 국경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을 강력히 전한다.

ABARA 의 소망과 비젼에서 우리를 보다

숙소로 돌아가기전 우리는 ABARA 의 미래 사무실과 활동의 허브가 될 La Hacienda 로 가서 현재 그들의 비젼을 듣고 건물을 둘러 본다. 이들은 ’국경선 평화 마을, 사랑의 공동체’를 꿈꾸며 예전에 식당으로 사용했던 역사적인 건물을 매입해 보수해 가며, 국경의 이민자와 난민자를 위한 활동과 교육을 하고 있다.

건물내부에는 소망의 메세지를 담은 국경도시 아이들이 그린 작은 그림들이 한줄의 실에 매여 복잡한 어른들의 눈과 마음을 붙잡는다. 아이들이 순수한 마음으로 그려낸 국경과 이민자들의 모습들 하나 하나가 우리가 가야할 곳이고 희망이 된다. 건물의 한켠에 국경에 온 이민자들이 두고 간 인형, 신발, 소지품등을 비치해 두고 있는데, 앞으로 이 이민자의 물건들을 사용해 이민자에 대한 더 많은 Story-telling 의 자료로 사용하려고 한다고 한다.

정원으로 나가보니 넓은 멕시코풍의 파티장소가 있는데, 어느 예술가가 장벽을 만들때 사용한 철사를 이용해 구성한 이민자의 발 (An Immigrant’s Foot)이라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아마도 이민자들의 미국국경까지의 힘든 여정을 표현한 작품으로 보인다. 예수님의 손에 난 못자국과 오버랩되면서 깊히 마음에 남는다. 다른 한켠에는 뚫어진 장벽에서 떨어져 나온 철책을 몇년간 모아 두고 있었는데 앞으로 이민과 난민문제를 이야기하는 매개체로 사용할거라고 한다.

여정을 마무리하고 숙소로 돌아오면서 ABARA 스텝들의 진정한 이민자들에 대한 태도와 사랑, 그리고 그들이 진행할 일들에 대한 확고한 소망과 비젼을 생각하게 된다. 이민자보호교회네트의 일원으로 거의 7 년간 함께 활동하며 이민자들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활동하고 있다고 느꼈던 내 모습이 부끄러워짐을 느낀다.

국경에는 무수한 이민자들과 난민들의 스토리와 꿈과 비극이 있었고, 장벽과 반목, 그리고 진정한 사랑과 희망도 있었다. 우리가 더 이야기하고 함께 고민하고 극복해 가야할 그 무언가도 우리 가슴에 담겼다. 텍사스를 뒤로하고 돌아오는 비행기의 창문에서 구름속으로 내려보이는 텍사스와 멕시코 사이의 장벽이 우리의 십자가가 되길 기도한다. 오늘 아침에 뉴욕에 모처럼 펄펄 하얀눈이 내린다. 모든 지저분한 땅의 불순물들이 모두 덮히고 모처럼 마음도 차분하고 숙연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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