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하착(放下着)
방하착(放下着)
  • 지성수 목사
  • 승인 2024.02.22 03: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맹인이 낭떠러지에서 떨어졌는데 다행히 나무에 걸려 매달려 있었다. 지나가던 사람이 손을 놓으면 바로 살 수 있다고 했으나 믿지 못하고 매달려 있었는데 힘이 빠지자 어쩔 수 없이 손을 놓았다. 결과는 엉덩방아를 찍는 것이었다. 불교에서 쓰이는 '방하착(放下着)'이라는 말이다.

사람은 누구나 관심이 없는 분야에 대해서는 소홀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자신과 조금만 달라도 간격을 느끼는 예민한 분야가 신앙이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취미활동에 ‘절대적으로 옳다’는 신념까지 붙으면 신앙이 된다. 바꾸어 말하면 신앙도 취미생활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취미생활과 다른 점은 남에게까지 강권하는 것이다. 신앙은 다름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고유의 고집을 만들기 쉽다.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은 자신과 신앙이 다른 것을 견디지 못하는 성향이 있다.

그런데 다양성과 다원성은 다르다. 그런데도 차원이 다른 것을 이해하지 못해서 다양성으로 생각하고 참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자기가 이해하지 못하면 종교다원주의라고 딱지를 붙인다.

종교다원주의라는 말은 얼핏 들으면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어느 길로 가나 모두 정상으로 이르게 되어있다”는 뜻같이 들린다. 그러나 이 말은 "산을 올라가 보고 하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산을 올라가 보지 않고 먼 데서 산을 바라보기만 하고 하는 것인지”에 따라서 다르다. 산을 올라가다 보면 잘못 든 길도 있고, 가다가 끊어진 길도 있고 심지어는 골짜기로 도로 내려오는 길도 있다. 정상에 올라가 보고서 비로소 “모든 길은 하나로 통한다.”라고 할 때는 다원이 아니라 일원인 것이다. 그러므로 차원이 다름을 이해를 못하는 이들은 '종교다원주의'라고

딱지를 붙이지만 실상은 '종교일원주의'인 것이다.

어떤 분야이든지 경험은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경험을 절대화할 때는 독단에 빠지기 쉽다. 이런 현상이 가장 널리 유통되는 곳이 신앙이다. 주관적 경험을 마치 진리처럼 절대적으로 신봉하는 증세는 백신도 치료제도 없다. 왜냐하면 독단을 지나 독선이라는 암에 걸렸기 때문이다. 신앙은 무리한 확신을 갖는데 크게 도움이 된다. 잘못 아는 것도 정당화 시킬 수 있고 아는 것이 적어도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확신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차원이 다른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르다고 생각하고 배척하는 것은 방하착인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