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전쟁과 건국전쟁
백년전쟁과 건국전쟁
  • 김거성
  • 승인 2024.02.29 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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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5주년을 맞이하며 교육과 역사를 생각한다

나는 최근 미래 교육비전이 지향해야 과제의 하나로 행복교육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행복 교육의 실현을 위해 지금까지 한국교육이 바탕으로 삼아왔던 패러다임의 근본적인 전환을 도모해야 한다는게 생각이다.

학생들을 교과성적 가지 요소로 평가하여 서열화하는 체계를 극복하고, 학생 주도로 자존감을 바탕으로 다양한 능력과 관심, 꿈이나 끼를 살려 나가도록 지원해야 한다. 학생에게 지식이나 기능만 채워 ‘산업인재’를 공급하는 것으로 교육이 의무를 다하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신체와 정신, 이웃과의 관계, 세계에 대한 관심과 참여 전인적 차원으로 발전할 있도록 살펴야 한다.

파편적인 지식이나 암기력 중심의 성적 매기기를 그치고 창조성, 상상력을 확보하고 있는가를 중시하여 사고력 중심으로 평가체계를 전환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어떤 시와 관련한 국어문제가 출제되었는데, 정작 시인은 문제를 풀지 못했다는 이야기는 향후 한국 교육이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무엇을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까 설명하는 좋은 사례로 삼아야 한다.

'가난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모르겠는가/ 너와 헤어져 돌아오는/ 쌓인 골목길에 새파랗게 달빛이 쏟아지는데….' 우리 중학교 교과서에 실려있는 신경림의 '가난한 사랑 노래'. 어느날 시인을 만난 어느 교사가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문제 10개를 풀어보라고 내밀었다. "일곱 문제나 틀렸지 뭐야"라며 시인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고 한다. .

지금까지의 교육 현실에서 성적으로 나타나는 대부분은 예술적 상상력이 아니라 일방적인 ‘하나의 정답’에 대한 순응이었고, 역사의식과는 무관한 연도 외우기였으며, 공부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그저 외우고 따라가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제 일생동안 어떻게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누릴 것인지, 이를 위해 어떤 역량을 갖추어야 하는지 하는 물음과 학교에서의 학생들의 학습 내용이 과연 얼마나 깊이 관계되어 있는가 묻고 대안을 제시해야 것이다. 학생이 공부해야 하는지, 어떻게 공부할지에 대한 생각은 개인적으로 학습에 대한 흥미유발, 학습 의지, 학습 주제에 대한 관심, 그리고 학습 효과와 학생의 역량강화에도 매우 효과적인 출발점이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실제 생활, 현실과 관련된 주제들을 과목의 학습에 연계하는 계기별 교육도 효과적일 있다.

 

역사의식과는 무관한 연도외우기라고 역사교육을 평가절하한 같지만, 이것은 자신의 체험이기도 하다. 1978, 당시 이른바 대통령긴급조치 9 위반으로 감옥에 갇혀있던 19세의 소년 정치범은 임종국 선생의친일문학론 읽으며 밥을 먹기가 싫어 사흘 정도를 굶었던 같다. 중고등학교 시기 년동안 역사를 배웠지만, ‘한 번도 친일 문제에 대해 제대로 생각해 적이 없었구나’하는 자책감과 함께 ‘속았구나! 역사를 잘못 배웠구나!’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생전에는 뵙지 못했지만, 나중에 임종국 선생의 임종 직후 장례식 준비에 참여하였고, 하관예배를 인도했다.

1919, 105 조선 왕국이 망했고 일본 식민지가 되어 있다. 우리가 시기에 살고 있었다면, 과연 일제에 협력하고 살아볼 것인지 아니면 이에 저항하여 어려운 삶을 살다가 죽을 것인지 이런 고민을 했어야 하지 않을까?

땅에서는 동학농민혁명과 3.1운동 등을 통해서 이상 부속물도, 객체도 아닌 스스로 판단하고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역사의 주인공으로서의 ‘시민(citizen), ‘사람()’에 대한 관점이 본격적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아닌가? 그래서 3.1운동은 우리 역사에서 잃어버린 나라의 회복과 동시에 사람의 권리를 세우려는 중요한 전환점을 기록한 위대한 운동이었다.

얼마 영화서울의 관객수 1300만을 넘겼다고 해서 반가웠다. 그런데 최근건국전쟁이란 영화가 100만을 넘겼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없습니다. 앞서 말한 역사의식의 부족 때문에 벌어지는 현실이고, 그런 역사관을 심기 위한 시도라고 밖에 없다.

 

사람들에게 제대로 역사의식이 없으면 나라의 미래가 암담하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 세력이 땅을 계속 그들의 식민지로 붙잡아두기 위한 노력 또한 바로 식민사관이었고, 이에 바탕을 역사왜곡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이런 한심한 생각이 자취를 감추지 않고 있는 현실은 바로 우리 기성세대의 잘못이고 책임이다.

 

일제 식민지 시절에 민족자강이냐 외교술이냐 이런 논쟁이 있었다. 독립운동을 한다면서도, 고난의 현장에서 멀리 떠나 호의호식하며 외교 수완으로 자신이 뭔가 바꿀 있다고 주장한 자도 있었다. 나중에 4 혁명으로 권좌에서 쫓겨나 하와이로 도망친 사람 말이다. 이런 자를 ‘국부’라며, 이른바 ‘건국전쟁’의 영웅으로 칭송하고 기념관을 짓겠다고 나서는 현실을 정말 개탄하지 않을 없다.

‘백년전쟁’이란 영화가 있다. https://youtu.be/idbhQx10-9A. 민족문제연구소가 주관해 제작한 한국 근현대사 100(1910-2011) 다룬 4부작 다큐멘터리다. 1부에서는 이승만과 박정희를 분석한다. 이미 ‘건국전쟁’이라는 영화를 보고 감동 감화받은 사람이라면 해독제로 ‘백년전쟁’을 봐야 한다.

 

그런 생각은 지금도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있다. 미국이나 일본, 또는 러시아 등에 기대어 나라 지도자들과 사진을 찍고, 이를 통해 안위가 보장될 것처럼 선전한다. 그걸 믿게 만들기 위해서는 역사 또한 그렇게 재단하여 가르쳐야 아닌가? 그래서 유튜브 방송을 열고, 영화도 만든다. 그런 바탕에서 영화 ‘건국전쟁을 ”우리나라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할 있는 기회“라고 보는 아닐까? 그것으로 역사의식 없는 역사, 왜곡된 식민사관을 주입하려는 아닌가?

 

강자에 빌붙고 약자를 등치는 것이라면 그것이 개인의 삶이든 나라의 정책이든, 외교든 파탄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약자와 함께 하고, 지극히 보잘것없는 잃어버린 자들을 찾아 나서는 삶은 실상에서는 괴롭고 힘든 나날로 점철될 것이다. 그러나 밖에는 참다운 문제의 해결이 없다.

이글은 필자가 목회하고 있는 구민교회에서 지난 사순절 둘째 주일에 다음 본문으로 설교한 내용을 칼럼 형식으로 편집한 것입니다.

"잃었던 나라의 회복 “, 예레미야 31:10-14; 베드로 전서 2:18-25; 누가복음 15: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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