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교회 은사와 비전으로 지역 사회 섬기는 곳'
③ '교회 은사와 비전으로 지역 사회 섬기는 곳'
  • 이응도
  • 승인 2013.06.12 18: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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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기고] 필라 초대교회 이응도 목사…복음적 중립지대론

한 꼬마 아이가 꽃봉오리를 자기 손으로 펴보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꽃잎은 조각조각 떨어져 버릴 뿐이었다. 마침내 화가 난 아이는 엄마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왜 내가 펴려고 하면 꽃잎이 떨어져 버리는 거예요? 하나님이 펴시면 아름답게 펴지는데…?”


질문의 심오함에 깜짝 놀란 아이의 엄마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나 아이는 곧 흥분된 어조로 이렇게 외쳤다.

“아~ 알았다. 하나님은 꽃을 안쪽에서부터 펴시니까 그런 거구나!” - 미르바 던 ‘Truly the Community’


어제 잘 아는 목사님 한분으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지역에 목회자가 없는 교회가 있는데 우리 지역에 신학교가 있으니 혹시 미국에서 목회를 시작하고 싶은 분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는 부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의 형편과 상황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원래 그 지역의 큰 교회에 문제가 있어서 분립 개척된 교회였고, 성인이 40명 정도 모이고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목회자 한분을 청빙해서 2년 정도 예배를 드렸습니다. 부흥하고 성장하면 좋겠는데, 상황이 어렵고 성도들이 조금씩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님도 갑자기 사임을 하고 한국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장로님 한 분을 포함하여 성인 15명 정도가 남아 있습니다. 좋은 목회자를 만나서 교회를 일으키고 싶어 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과연 그 교회는 그들이 원하는 좋은 목회자를 만날 수 있을까요?

그 교회가 목회자를 청빙하기 전에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왜 그 지역에 바로 그 교회가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입니다. 만일 아직 준비된 대답이 없다면 함께 모이고 기도하고 연구해서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래도 답을 찾을 수 없다면…. 좋은 교회를 찾아서 연합하는 것이 옳습니다. 어느 한 교회의 잘못된 행정이나 사람들 때문에 새로운 교회가 시작되는 것, 그들에 대한 반대와 미움이 새로운 교회 개척의 이유가 되는 것은 참으로 서글프지 않습니까?

오늘날 교회가 시대를 본받지 않는다는 것, 시대에 순응하지 않는다는 것은 교회 안에서 교회가 존재해야 할 분명한 하나님의 목적과 비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같은 지역의 다른 교회들과 차별되는, 우리만의 목적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아직 분명하지 않다면 다듬어야 하고, 확실하지 않다면 찾아야 합니다. 이 지역과 우리가 사는 시대에 하나님이 이런 교회를 필요로 하고 있다는 확신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교회의 성장과 변화는 바로 그 비전과 목표로부터 한걸음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로빈 스크로지스라는 신학자는 자신을 가장 번거롭게 하고 수고하게 하는 잘못된 삶의 원칙은 바로 ‘성취 원칙’이라고 말했습니다. ‘성취 원칙’(performance principle)이란 성공 혹은 성취에 대한 기준을 정하고 그것을 이루는 것을 최대의 선으로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성취의 원칙의 기준이 되는 것은 ‘숫자’입니다. 사회적인 성공도, 경제적인 성취도 모두 숫자로 평가하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도 그러합니다.

우리 사회가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성취의 원칙에 교회가 순응하게 되면 우리는 너무 쉽게 잘되는 교회, 번성하는 목회에 초점을 맞추게 됩니다. 우리 시대에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고 하나님의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성취와 성공에 집착합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소수의 성취를 즐기는 교회와 목회자, 그리고 다수의 실패한 교회와 목회자가 한 지역에서 함께 경쟁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거울도, 빛도 소금도 되지도 못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추구하는 성취와 성공을 이루는 또 하나의 장(場)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성취 원칙의 함정은 개인의 삶에 대한 평가와 가정의 행복에 대한 기준도 바꾸어 놓습니다. 적어도 이정도의 부는 갖춰야 하고, 적어도 이정도의 명성은 얻어야 하고, 적어도 이정도의 지위는 얻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우리들은 삶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참된 기쁨과 감사를 잊기 쉽습니다. 늘 부족하고 갈급하게 삽니다. 성취의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나의 삶의 현실을 바라보며 보다 많은 성취와 성공에 허덕이게 됩니다. 가정의 행복은 어떻습니까?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녀가 서로에게 성취의 일정한 기준을 들이대고 그것을 이루어야 행복한 삶이 보장된다고 요구한다면 과연 참된 행복을 누릴 수가 있을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신 분입니다. 성경 어디에서 우리가 성공하고 성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명령은 없습니다. 다만 주신 삶에 감사하며 게으르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 것을 권면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자신의 삶에 대해 신실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인생입니다.

교회와 사역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성공하는 목회와 대형교회가 우리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때로 하나님 앞에서 신실한 사역은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하는 목회일 수 있습니다.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숫자보다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아름다우심을 성도와 교회의 삶을 통해 보여주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삶을 이 땅에서 살아가면서 날마다 개인과 가정과 교회가 변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이민 교회들이 다양한 사역을 통해서 현대 사회의 성공담을 교회를 통해 실현하려는 우를 범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개인이건 공동체이건 현대 문화가 가진 물질주의, 시간관, 부도덕과 유행, 성공을 이루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들을 거부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당시 유대 사회가 가진 모든 수단과 방법에서 자유를 누리는 분이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시험하려 했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유혹과 시험을 이기시고 십자가라는 참으로 신실한 길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께서 그런 길을 먼저 걸어가셨다면, 우리 또한 그 길 가운데 우리의 인생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각각의 피조물을 지으시고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어주시는 것은 그 모든 개체에 존재의 이유와 목적을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우리 각 성도의 삶이 그러하고 각 교회가 그러합니다. 각각 그 안에 하나님이 주시는 비전과 목표를 발견하기를 원하십니다. 안으로부터 열리기 시작하는 성도와 교회, 안에서부터 동력이 자라나는 성도와 교회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와 자원들이 오직 그 성도와 교회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특한 조합이 되어 나타나기를 원하십니다. 특정한 기준으로 획일화되지 않은, 각각의 창조적인 은사와 개성이 성도의 삶과 공동체를 통해 표현될 때 하나님의 창조적 성품이 가장 아름답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각 성도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따라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섬기듯이 지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교회들 또한 각각의 교회가 다른 은사를 가지고 지역 사회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예배, 보다 나은 교육 환경, 성도간의 친밀도 등으로 다른 교회보다 우리가 얼마나 더 나은가를 비교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오늘날 한 지역에 존재하는 많은 교회들이 다른 교회보다 더 좋은 교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경쟁하기보다 다른 교회와 차별화된 은사와 사역을 개발해나가는 것이 옳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목회자와 교회에 허락하신 은사와 비전을 개발하고 한 지역사회에서 각각의 교회가 각각의 은사를 따라 각각의 사역을 감당하는 것, 그것이 다양성이 보편적인 가치로 인정받는 시대에 교회가 하나님의 창조성과 온전하심을 보여줄 수 있는 길입니다.

복음적 중립지대, 사회와 교회의 소통 공간

저희 교회가 현재 지역 사회에서 복음적 중립지대의 개념으로 하고 있는 사역을 간단하게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저희는 약 10년 전 개척 초기부터 인권 문제와 상담 사역에 집중했습니다. ‘인권’이라고 말하면 어려운 것처럼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필라델피아 여성 봉사회’와 ‘가정 상담 연구원’이라는 기관을 세우고, 교회 내외의 자원 봉사자들을 모았습니다. 적절한 훈련을 거쳐서 영어 교육, 법률 자문, 의료 봉사, 통역 서비스, 자녀 교육, 가정문제 등의 분야를 나누어서 지역 사회에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구체적인 문제를 함께 고민했습니다. 3년 전부터 5개 교회가 연합하여 ‘다솜 한국 학교’를 시작했고, 올해부터는 Afterschool 을 시작합니다. 2년 전부터 60세 이상의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춘 합창단’을 교회 성도들을 중심으로 시작해서, 올해부터는 지역 사회 노인들까지 확대해서 단원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연 1-2회 정도의 공연을 통해서 지역 사회 노인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봄과 가을에 지역 School District에 있는 교사들과 전문가들을 모시고 학부모 세미나를 개최합니다. 매년 주제를 달리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매년 1회 상담 학교를 열어서 가정문제, 청소년 문제, 약물 중독 등의 다양한 주제로 지역의 이웃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지난해부터 상담학교의 이름을 ‘요셉 프로젝트’로 바꾸었습니다. 요셉처럼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말씀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자는 내용입니다. 자신있게 말하건대, 필라 근교 지역에서 교회의 규모로 따지만 아직 내세울만한 교회는 아니지만 이웃을 섬기고 지역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일에 대해서는 가장 앞서나가는 특별한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이 일을 교회의 부흥을 목표로 하거나 개인의 목회적 성공을 위해 해왔다면 아마도 벌써 지치고 낙심했을 것입니다. 함께 섬기고 일하는 성도들이 그 사역을 통해서 삶의 의미와 보람을 찾고 있습니다. 목회자의 사역을 돕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 섬기고 있습니다.

저희 교회가 이런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성도들 모두에게 늘 강조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이 활동을 하는 중에 ‘전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른 교회 출석하는 성도들이 이런 행사나 기관에 찾아왔을 때 우리 교회로 오라고 권면한다든지, 믿지 않는 사람들이 무언가 도움을 받기 위해 이런 기관이나 행사에 참여했을 때 전도하고 싶은 유혹을 이겨야 합니다. 복음적 중립지대의 사역은 지역 사회와 교회가 함께 만나 소통하고 친밀감을 가지는 장(場)입니다. 다른 교회 성도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지역 사회의 이웃들이 편하고 부담 없이 함께 자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역 사회가 교회를 이해하고 친밀감을 가질 수 있도록 교회를 그저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교회 또한 복음적 중립지대를 통해서 이웃의 삶을 배우고 알아가며 교회가 무엇으로 섬겨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부연하자면, 상담 사역을 처음 시작할 때 주변 교회의 많은 목사님들이 경계했었습니다. 다른 교회의 담임 목사가 섬기는 상담소에 자기 교회 성도들이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좋지 못한 소문을 고의적으로 내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0년 정도 상담 사역을 해온 결과, 오늘날 그런 목회자들은 없습니다. 상담의 결과로 다른 교회 성도들이 우리 교회로 적을 옮기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신앙을 가지게 되고, 저희 교회 성도가 되는 일은 자주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아주 조심스럽게 진행합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문제와 위기의 해결이 목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역들을 통해서 지역 사회와 소통하고 섬기는 일들을 한 지역에 있는 다양한 교회들이 협력할 수 있다면,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하나님 나라의 확장이 교회가 속한 지역 사회로부터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을까요?

교회가 사회에 감동 주는 '복음적 중립지대'

교회의 지역 사회에서의 역할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도시공동체 연구 소장인 성석환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도시를 새롭게 하는 지역 교회들이 필요하다. 파편화와 분열, 경쟁과 갈등의 현장인 도시를 화해와 조화, 나눔의 공동체라는 이미지로 변화시키기 위한 교회들의 역할이 필요하다. 이미 이러한 필요에 응답하는 사회적 움직임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국가나 공공 기관들이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한정된 예산으로 가시적 효과를 거두기 위한 정책 실행에는 반드시 사각지대가 생긱기 마련이다. 시민 사회로 대변되는 제3영역이 성장함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도 이 부분에 관심을 갖는 단체들이 많이 생겨났는데, 사회적 약자와 가난한 이들에 대한 특별한 서비스들을 제공하는 복지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지역 교회도 이와 같이 국가나 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 대한 배려와 함께 지역의 도덕적 기준을 제시하는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뉴욕의 리디머교회나 샌프란시스코의 뉴 호프 커버넌트 교회가 우리들이 섬기는 교회와 전혀 다른 교회이거나 다른 것을 가르치지는 않을 것입니다. 같은 복음이 증거되고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과 지도력, 지역사회와의 친밀감과 지역 사회에 주는 감동은 많이 다릅니다.

오늘날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이민 한인 교회도 사회적 지도력을 잃은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믿음은 있지만 사회의식과 역사의식이 없는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다시 교회가 사회에 대한 영향력과 지도력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다양한 대안과 연구가 진행되고 있겠지만, 저는 지역 교회를 섬기는 한 목회자와 성도로서 저희 교회가 최선을 다해 섬기고 있는 사역에 대한 개념을 소개했습니다. 신학적 개념도 아니요, 교회사적인 의미를 가진 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다만 한 목회자와 지역 교회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따라 비전을 품고 그 교회가 뿌리 내리고 있는 지역 사회를 복음으로 섬기고자 하는 깊은 고민과 기도의 결과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빛나는 전통과 역사의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지역사회 속에서 현장성을 획득할 때 하나님이 교회에 주신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겠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역사가 사랑하는 교회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응도 목사 / 필라델피아 초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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