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라이트에는 왜 기독교인이 많은지
뉴라이트에는 왜 기독교인이 많은지
  • 박지용
  • 승인 2015.11.13 0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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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난데 없이 오래도록 책장 한켠에 꽂혀 있던 E. H. 카아의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뽑아 읽었습니다. 그러잖아도 매일 읽어야 할 책들이 수북이 쌓여져, 목록과 분량을 정해 놓고 차질없이 읽으려고 하는데, 마뜩잖은 이슈가 끼어들게 되어 분량이 늘어났습니다. 이유인즉은 한국에서 '국정화 교과서' 찬, 반으로인해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이미 나와 있는 검증교과서도 정부에서 가이드 라인을 주어 집필하게 했고 그것을 학교에서 가르치도록 승인해 놓고, 이제 와서 좌편향 교과서라고 몰아세우며 정부가 발행하는 국정교과서를 집필하겠다고 이 난리입니다. 역사가 뭐길래 이 난리를 치는 것인지? 이런 때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고, 행동해야 하는지를 찾기 위해 종이질조차 바래진 책을 한 장씩 넘겨 보았습니다. 오래 전에 읽었던 책이라 군데군데 줄이 그어져 있었지만 더 촘촘히 읽으려고 집중했습니다. .

 

유신회귀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될 때부터 '유신으로의 회귀'는 예상은 했던 일입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리라는 직관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지금 그 직관이 현실이 되었다고 놀라지는 않습니다. 흔데, 역사마저 획일적으로 통제하여 전체주의로 가려는 의식화 작업을 서스럼 없이 하며, '재단된 역사'를 기획하고 있으니 참담한 심정입니다. 좌, 우 진영논리로 나라가 분열되어 치열한 다툼이 있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만은 아닙니다. 북한이 적대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한 이 문제는 풀기 힘든 민족의 과제이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입니다. 다만 은연중 정치인들의 음흉한 모략이 이런 조국의 현실을 악용하거나 조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서글픔과 분노를 갖게 합니다. 정치는 원래 야누스-두 얼굴-라고 합니다. 거짓을 진실로 위장하고, 알고 있는 것도 속이려고 드는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효심(?), 즉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독재를 하면서 입버릇처럼 "후대의 역사가들이 평가할 것이다"는 말을 했으니, 그 말을 후대로서 역사가들을 들러리로 세워 제대로(?) 반영해 드리기 위한 발로로, 현대사를 미화하려고 한다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어서 조국의 과거, 현재, 미래가 암담합니다.

이런 암울한 현실에 더 분통이 터지는 것은 교과서 왜곡에 앞장 서고, 국정교과서 작업을 하는 주역들이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인데, 그들 대부분이 기독교인들이라는 사실에 실망을 넘어 절망을 느끼게 합니다. 아울러 로마황제 콘스탄틴이 AD. 313년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하면서부터 교회와 권력이 밀착하기 시작하더니, 그로 기독교 중심부 사람들의 권력편향적인 역사 의식이 여기까지 흘러왔구나 하는 생각에 부끄럽기 그지 없습니다.

 

입맛대로

다시 E. H. 카아의 책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역사의 사실은 언제나 기록자의 마음을 통해 굴절된다. 따라서 역사책을 읽을 때 우리는 그 책에 포함된 사실이 아니라 그 책을 쓴 역사가에 대해 일차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 마디로 역사가는 '사실'을 가져다가 주관적으로, 즉 자신의 입맛대로 요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어에서 역사라는 단어를 'his+story = history'라고 하나 봅니다. - 이렇게 놓고 본다면, 국정화 교과서를 쓰겠다는 것이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역사는 획일화 될 수 없습니다. 되어서도 안 됩니다. 성경에 예수님에 관한 기록도 4 복음서가 있는데... 이정용 교수는 "동일성과 단일성이라는 중심주의 이데올로기는 차이를 부정하면서 하나님의 창조적 질서까지 거부하는 이중 부정을 만들어낸다."고 했습니다. 전세계에 국정교과서로 가르치는 나라가 북한, 방글라데시, 그리고 일부 이슬람 국가 뿐이라고 합니다. 이제 북한과 남한이 나란히 이름을 올리게 되었으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실질적 참여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인은 정교분리 원칙을 내세우며 정부 하는 일에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은 분명합니다. 아닙니다. 신학자 몰트만은 "기독교 신앙은 사적인 일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가 선포한 것은 개인적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였기 때문이다."고 했던 말은 정교분리는 없다는 말입니다. 국가의 잘못된 정책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 바로 세워지도록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이쯤되면 좌파, 종북으로 딱지를 붙이고 야당 좋게 하려는 목사라고 오해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색깔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믿음의 공공성을 주장하는 말입니다. 기독교인의 신학도, 신앙도, 공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보수, 진보 / 개인구원, 사회구원이라는 용어를 써 가면서 찬반과 중립/균형을 말할 필요도 없이, 복음은 교회 안에만 갇혀 있지 않아야 한다는 말과 같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바른 역사의식을 가지고 조국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와 참여하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박지용 목사 / 온맘장로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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