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들끼리 돈거래는 NO!
성도들끼리 돈거래는 NO!
  • 김기현
  • 승인 2008.01.09 23: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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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돈의 위력 인정하고 돈의 제자도 세워야

세상에는 말끔하게 정리되지 않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 중 하나가 돈일 것입니다. 돈이란 역설적인 것이어서 한편으로 ‘신’입니다. 하나님 자리를 놓고 경쟁을 하는 신적인 존재가 돈이기에 주님은 돈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단언하셨습니다(마 6:24).

돈은 가짜요, 사이비 신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돈은 ‘선’입니다. 모름지기 하나님이 창조한 모든 세계는 출처가 하나님이기에 하나님을 닮아서 선합니다. 착합니다. 해서, 은도, 금도 주님의 것입니다(학 2:8). 따라서 결론은 어떻게 사용하고, 무엇을 위해 쓰느냐에 따라 돈은 재앙이 될 수도, 축복이 될 수도 있습니다.

마음먹기에 따라 다릅니다. 돈이 아니라 마음이 문제입니다. 살고 죽는 것이 무릇 마음에서 비롯됩니다(잠 4:23).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딤전 6:10) 부자청년은 돈 때문에 망했고, 삭개오는 돈 때문에 살았습니다. 어리석은 부자는 돈에 집착했지만 자신을 위해 한 푼도 사용하지 못하고 죽었고, 아리마대 요셉은 돈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있느냐, 돈과 하나님 사이에 어느 것을 더 귀히 여기느냐가 관건입니다.

제가 돈 얘기를 하는 것은 돈과 관련해서 우리 교회 안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부끄럽게도 한 사역자가 거의 모든 청년들에게 돈을 빌리고 갚지도 않고, 갚을 의지도 없이 소리 소문 없이 잠적해버렸습니다. 타인의 명의를 사용하고는 부채만 남겨두었습니다. 게다가 많지 않은 교회 재정도 손을 대고 말았습니다. 당혹스러운 것은 그것이 비단 우리 교회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일로 교훈을 얻었습니다.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역사를 반복한다고 했습니다. 과거에서 배우지 못하면, 불행한 과거를 되풀이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전에 준비하지 못하고 일이 터진 다음에 수습하는 어리석음을 질타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소를 잃은 다음에도 외양간을 고쳐두지 않는다면 또 다시 소를 잃을 것은 자명합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애굽에서 광야에 이르는 여정을 정리하면서 수차례 강조합니다. “기억하라.” 그렇지 못하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도 애굽의 노예살이를 다시 경험할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를 합니다.

성도들끼리 돈거래하지 마세요

먼저 사죄를 드립니다. 담임목사로서, 공동체의 최고 지도자로서 추호의 변명의 여지도 없을 정도로 돌보지 못하고, 관리하지 못한 책임이 제게 있습니다. 사역자가 많은 사람에게 돈을 빌리고, 또 많은 이들이 돈을 빌려주고 있는데도 전혀 몰랐습니다. 교회와 교우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일일이 알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도 고개를 숙이는 것은 어찌되었건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의 최종적인 책임은 제게 있기 때문이고, 사역자와 관련된 일은 더욱 더 그러합니다. 다 제 부덕한 탓입니다.

게다가 그는 제가 참으로 아꼈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도 저를 무척이나 따랐고요. 저를 영적인 아버지라고 불렀고, 저는 바울이 디모데를 아끼듯 그렇게 신뢰했습니다. 그랬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니 마음이 착잡합니다. 뒤통수를 세게 한 대 얻어맞은 배신감보다는 일말의 안타까움이 더 큽니다. 제가 더 많이 사랑해주고, 더 많이 기도해주었다면, 그리고 조금이라도 낌새가 보일 때 얼른 서둘렀다면, 무엇보다도 충분한 사례를 지불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너무 믿었기에 설마 설마 하던 것이 그만 사단이 벌어졌습니다.

다음은 돈의 위력을 인정하고, 돈의 제자도를 세우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돈에 관한 한 정답이 없습니다. 돈 앞에 장사 없습니다. 돈은 신앙의 정도와 성숙을 측정할 수 있는 바로미터입니다. 내가 얼마나 버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과 교회, 이웃을 위해 얼마나 쓰느냐가 척도입니다.

누가복음은 부의 위험성을 너무 잘 알기에 부자의 운명에 대해 누차 경고합니다. 기도 못지않게 깨어 있어야 할 영역이 돈입니다. 이 점에 관해서 더 깊이 있는 논의와 실질적인 지침을 주는 좋은 책을 소개하는 것으로 대신합니다. 리처드 포스터의 <돈 섹스 권력>(두란노)과 자크 엘룰의 <하나님이냐 돈이냐>(대장간)를 적극 추천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셋째, 당부 드릴 것이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는 절대로 돈 거래를 해서는 안 됩니다. 이는 두 가지 의미입니다. 하나는 돈을 빌리지도, 빌려주어서도 안 됩니다. 이것은 이제 명약관화해졌습니다. 이번 사건이 주는 교훈입니다. 제 아내가 한 성도에게 그러더군요. 목사님이 빌려달라고 해도 빌려주어서는 안 된다고요. 그렇습니다. 다시 반복해서 말씀드립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돈을 빌려주고 빌려달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신앙 잃고 사람 잃습니다. 내세도 금생도 손해 봅니다. 교회도 병들고 개인도 상처를 받습니다.

지난번 가정교회 세미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강사인 목사님이 아무리 가정교회 안에서 나눔이 좋다고 해서, 그리고 한 가족 같다고 해도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것이 두 가지 있다고 하더군요. 하나는 성적인 이야기와 고백이고, 다른 하나는 돈을 주고받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얼마 전에도 한 성도가 너무 어려워서 한 300만 원이 필요하다고 하자, 딱한 사정을 다 아는 처지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목자가 얼른 목사님에게 상의드렸습니다. 목사님 왈, ‘차라리 내가 빌려줄 테니 내게 보내세요.’

안타깝게도 빌려줄 돈이 없으니 제게 와도 드릴 수 없습니다만, 여기서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차제에 이런 일이 생기면 얼른 제게 알려주십시오. 모두들 금액이 그리 크지 않고, 다른 사람도 아닌 사역자의 문제니 말하기가 껄끄럽고 부담스럽고, 그리고 별 일 아닌데 굳이 목사님에게 알려서 문제를 만들 필요가 없다고 다들 생각했다고 하더군요. 우습게도 그런 생각이 문제를 키웠습니다. 지혜롭고 부드러운 말로 타이르시면서 곧 바로 제게 알려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가 불거지지 않습니다. 조기에 해결이 가능합니다.

성도들끼리 물건도 사고팔지 마세요

넷째, 경계할 것은 물건을 사고파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교제에는 삶의 모든 차원이 포함됩니다. 그러니 자기 사업 얘기도 은연중에 하게 되지요. 그러나 절대로 물건을 매매해서는 안 됩니다. 그냥 그런 사업을 한다는 것 정도만 알면 되지, 사업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은근히 또는 명시적으로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 하나 더하면 보증은 절대로, 절대로 안 됩니다. “모르는 사람의 보증을 서면 고통을 당하지만, 보증서기를 거절하면 안전하다.”(잠 11:15) 보증을 서는 자를 지각없는 자라고 했습니다(잠 17:18). 아예 꿈도 꾸지 마세요.

다섯째, 미워하거나 분노하는 마음을 오래 품지 말아야 합니다. 한때나마 저도 속이 부글부글 했었습니다. 사울이 아무리 잘못해도 하나님의 사람이고,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 다윗이 선대했던 것이 신자의 모범입니다. 그가 불의한 일을 했어도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최종적인 판단은 하나님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쳐놓고 앞서 판단하고 심판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어쩌면 더 나쁜 일인지 모릅니다. 의로운 척하면서 똑같은 죄인을 손가락질한다면 이것이 바리새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할 바는 그를 하나님에게 맡기고, 그의 죄를 용서하고, 그를 통해 우리 안의 죄를 돌아보고 회개하고 바로잡는 계기로 삼고, 그의 영혼과 삶을 위해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시편의 딱 한 구절이면 족할 듯합니다. “내 사랑에 대해서 그들은 미움으로 보답합니다. 그러나 나는 기도할 뿐입니다.”(시 109:4, 우리말)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오직 기도입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이 사건을 ‘하나님의 예방접종’이라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예방접종이란 병을 앓게 하는 세균 등을 제거하거나 약화시켜 주사하면 우리 몸에 면역 능력이 생겨서 질병에 걸리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하시라도 이런 일이 발생할 개연성은 농후합니다. 그것을 살짝 경험하게 하셔서 그런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합니다. 독감 예방주사를 맞았다고 독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게 아니듯이 언제든지 잠복해 있습니다. 우리의 약함과 악함과 달리 하나님의 넘치는 놀라운 섭리를 찬양합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생긴 교회 재정의 손실을 몇몇 형제들이 어려운 중에 보충하는 데 나서 주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심심한 감사를 표합니다.

김기현 / 수정로침례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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