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술
낮술
  • 박총
  • 승인 2016.01.09 13:48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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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어머니, 요즘 제게 가장 큰 낙은 낮술입니다. 맞습니다. 에미애비도 못 알아본다는 그 낮술 말입니다. 낮술 한 잔 걸치고 어머니에게 전활 걸어 "이영자 여사님 계십니까?" 하면 어머닌 "너 또 술 마셨구나!" 하시지요.

네, 어머니 술 마셨습니다. 이 미친 세상을 맨 정신으로 살기 힘들어서, 넷이나 되는 애들을 ‘헬조선’에서 키우기가 버거워서 점심 들며 반주 한 잔 쭈욱 들이켰습니다.

갓 대학에 들어가 처음 맞는 술자리에서 대취, 선배 방에서 자고 다음 날 집에 들어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용서를 구하던 그 어린 아들이, 그 다음날부터 교회에서 가르치는 대로 음주는 죄악으로 굳게 믿고 졸업할 때까지 술 한 잔 입에 대지 않던 당신의 막내아들이 이렇게 변했습니다.

어머니, 저는 술이야말로 하나님이 고달픈 인생에 허락한 가장 큰 위안이라고 믿습니다. 실제로 요즈막 제가 모든 시름을 잊고 너털웃음을 지을 수 있는 자리가 ‘주주클럽’입니다. 짐작하셨겠지만 낮 주(晝), 술 주(酒) 자를 쓰는 낮술모임입니다. 한 달에 한 번 목사, 신부들이 점심을 들며 대낮부터 주님을 모시는 모임이지요.

압니다, 어머니. 가족 중에 알코올 중독으로 시련을 겪은 분이 있는 건 저도 잘 압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시 104:15)가 하나님의 선물임을 부인할 순 없더군요. 소싯적엔 술만 보면 ‘묻지 마 정죄’를 남발했지만, 어느 샌가 “그 백성을 위해 잘 익은 포도주로 잔치를 베푸시는”(사 25:6) 야훼야말로 참된 디오니소스(酒神)임을 발견했습니다. 아니, 이제는 술 마시는 것이 죄가 아니라 마시지 않는 것이 죄라고 한 이븐 알 파리드(Ibn al-Farid)에게 공감합니다.

너는 술 마시는 죄를 범하였구나, 하고 그들은 말하지만

결단코 아니로다, 나는 참으면 죄가 되는 것밖에는 마신 적이 없노라

취하지 않고 산 자, 세상을 산 게 아니로다.

11세기 페르시아의 오마르 카이얌도 <루바이야트>에서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이 허무의 시편은 수상한 세월을 견뎌내는 제게 적잖은 위로를 줍니다.

생사의 갈림이야 수학으로 풀어보고

인간의 영고성쇠 논리로써 따지거니

헤아려 보고자 한 모든 것 중에서도

깊은 이치 터득한 건 술의 묘미뿐이로다.

 

시집 한 권, 빵 한 덩이, 포도주 한 병,

나무 그늘 아래서 벗삼으리

그대 또한 내 곁에서 노래를 하니

오, 황야도 천국이나 다름없어라.

 

한 가닥 진실에 사랑이 불붙거나

분노로 이 몸을 불사르거나,

알고 있노라, 술집에서 문득 본 진실이

사원에서 잃은 진실보다 귀하다는 것을.

어머니, 염려 마세요. 본디 술이 약하고 겁 많은 제가 어머님 걱정할 정도로 마신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요. <채근담>의 가장 설레는 소절인 “꽃은 반만 핀 것을 보고 술은 조금 취하도록 마시면 이 가운데 무한한 가취(佳趣)가 있다”는 말씀은 참으로 옳더군요. 뭐, 언젠가 한 번 필름이 끊겨 보도록 마셔보고 싶기도 합니다만.

그러다 인사불성이 되어 하나님이 제 손에 쥐어준 천국행 티켓을 잃어버리면 어떻게 하냐고요? 어머니, 저는 취할수록 천국에 가까워진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무슨 소리냐고요? 켈트 그리스도인들은 건배할 때 이렇게 한답니다.

When we drink, we get drunk.

When we get drunk, we fall asleep.

When we fall asleep, we commit no sin.

When we commit no sin, we go to heaven.

So, let's all get drunk, and go to heaven!

어머니는 영어 까막눈이라 잘 모르시겠죠? 어머니가 시장 바닥에서 속옷과 양말을 팔아 가르친 아들이 이럴 땐 쓸모가 있을 겁니다.

술 마시면 취한다.

취하면 잠이 든다.

잠이 들면 죄 짓지 않는다.

죄 짓지 않으면 천국에 간다.

그러니 취하고, 천국에 가자!

그러니 어머니도 천국에 가시려면 술을 좀 드세요. 나중에 하늘나라 가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나오는 최고급 포도주를 만끽하려면 조금씩 맛을 들여야 할 겝니다. 고기도 먹어 본 놈이 먹는다잖습니까.

날이 부쩍 추워졌습니다.

건강하세요, 어머니.

박총 | 도심 속 수도원 ‘신비와저항’ 원장(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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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두기 2016-01-13 02:42:12
이게 뭔 헛소린지... 술마셔도 정죄하지 말라는 말같기는 한데 그렇다고 무슨 감동이나 교훈이 있는건 아니고... 그냥 자기합리화나 본인도 왜 썼는지 모르는 그런 글이 아닐까요?

"미친 세상을 맨 정신으로 살기 힘들"다는 건 모두가 공감하겠지만 그럴수록 더욱 주님께 매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힘든걸 술로 채우는 사람들도 있지요. 술 주로 지은 주주클럽을 소개하면서 "주님을 모시는 모임"이라 하는 것도 많이 거슬리네요. 정죄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환영할 만한 내용도 아닙니다.

andrew 2016-01-12 11:40:05
글쓰신 분의 마음과 글의 의미는 어렵푼이 공감이 되지만 그래도 술을 좀 더 가까이 (playing with fire) 하게 할수도 있는 글이라 좀 아쉬움은 있습니다.

난독증? 2016-01-10 03:32:54
71번님 글을 문자로만 읽어요? 글의 의미를 좀 보세요. 이렇게 문자적으로 읽고 정죄하는것이 본인의 지적수준을 반영하는것입니다. 제발 의미를 좀 이해하세요. 오랜만에 정말 좋은글 읽었습니다.

kimlkk 2016-01-10 00:59:47
NEWS M 이제 대놓고 막가기로 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