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미 혹은 유사 파시즘: 트럼프 찬양에 대한 비판
반미 혹은 유사 파시즘: 트럼프 찬양에 대한 비판
  • 정재웅
  • 승인 2016.05.17 00: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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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페친들 사이에서 회자된 글이다. 비판 글만 읽다가 본문을 읽어봤는데, 정말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이런 글을 쓴 사람이 “역사학자”라니, 도대체 어떤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란 말인가. 오류로 가득한 글이지만 몇 가지만 언급하고자 한다.

군산복합체와의 암투?

첫째, 오바마가 군산복합체와 임기 내내 암투를 벌였다는 내용이다. 군산복합체가 비록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의 언급 이후 정치에서 주목받은 것이 사실이지만, 그 영향력은 지나치게 과대평가 되었다. 이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나는데, 한국 좌파들, 특히 NL 계열은, 미국의 군산복합체를 만악의 근원으로 생각한다. 즉 군산복합체가 정부와 의회를 포획(capture)해서 전쟁을 통해 미국 패권을 확장하고 자신들의 이익을 키우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이러한 인식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망상에 불과한지는 미국 내 군수산업체 Big 5-보잉, 록히드 마틴, 노스롭 그루먼, 레이시온, 제너럴 다이내믹스-의 연간 매출을 다 합쳐봤자 월마트나 애플에 턱없이 모자란다는 사실만 봐도 충분히 알 수 있다. 고작 이들의 이익과 로비에 미국 정부와 의회가 휘둘린다? 꼬리가 몸통을 뒤흔드는 일이다. 차라리 월마트나 애플이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 진출하기 위해 로비를 했다고 주장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군용 시장은 민수 시장에 비해 턱없이 규모가 작다. 군용 수송기에서 가장 많이 판매된 C-170이 약 230대 운용되는데, 비슷한 시기 개발된 A-330은 운용 기체수가 1,000대를 넘은지가 옛날이다. 뇌내망상에 현실을 끼워 맞추려는 지극히 “NL 소아병적” 사고다.

트럼프의 참여민주주의?

둘째, 트럼프가 “참여 민주주의”에 가깝다고? 이것이 역사가가 쓸 말인가? 대선 레이스에 참여한 이래 트럼프가 보여준 것은 여성과 소수자에 대한 혐오, 기 확립된 절차적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불신, 미국 예외주의 등 1960년대 린든 B. 존슨의 민권 개정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이었다. 이에 환호하는 사람들 역시 미국의 기존 체제에서 소외되었다고 느낀 백인 저소득층이 대부분이다. 이럴진대 이것이 참여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는가?

이것은 민주당-공화정의 양당체제에 균열을 내는 참여민주주의가 아니라 파시스트 독재자에 대한 열광이다. 히틀러의 집권과정을 상기해보라. 그 역시 민중의 열광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집권해서 파시스트적 정책을 펼쳤다. 민주주의, 즉 Democracy는 단순히 “다수(Demo)에 의한 지배(Cracy)”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 대혁명 이래 확립된 공화주의 전통과 기본적 인권에 대한 옹호, 자유-평등-형제애 등에 기초하여 대화와 토론과 타협을 그 근간으로 삼는 정치체제다.

따라서 이의 전복을 시도하는 사람은 그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이건, 아돌프 히틀러건 상관 없이 민주주의의 적이다. 이런 적을 옹호하는 사람이 참여 민주주의 운운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다.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가치조차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 심신상실 상태이기 때문이다.

고립주의/국제주의

셋째, 미국 고립주의에 대한 환상이다. 역사학자이자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 교수인 닐 퍼거슨이 언급한 것처럼, “미국은 제국”이다. 그것도 “역사상 가장 관대한 제국”이며 “자신이 제국이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제국”이다. 생각해보라. 인류 역사상 그 어떤 제국도 자신에 맞서 도전한 국가가 자신을 위협하는 자리에 오도록 용납한 적이 없다. 반면 미국은 자신과 전쟁을 치른 두 국가-일본과 독일-가 자신에 이은 글로벌 2인자의 지위에 오르는 것을 용납했다.

뿐만 아니라 이 글의 저자가 찬양하는 “민주주의”의 가치를 전 세계로 전파하는데도 앞장서고 있다. 칠레 피노체트 정권이 독재정권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그 기간 중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현재의 민주주의가 확립되었고, 콜롬비아에서는 미드 “나르코스”에서 볼 수 있듯이 콜롬비아 정부와 함께 메데인 카르텔에 맞서 싸웠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모든 국가에서 미국이 “양키 고 홈”이라는 비난의 표적이 된다는 사실인데, 이 역시도 미국이 확립한 민주주의적 제도가 아니었다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세계사에 대한 이러한 기본적 인식조차 없는 사람이 이런 글을 쓴다는 사실이 어이가 없다.

넷째, 국제주의와 고립주의에 대한 언급이다. 국제주의는 미국 패권의 팽창이고 고립주의는 미국이 평범한 보통국가로 돌아가는 것을 지향한다는 인식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국제정치에 대해 기본적 인식도 없는 부끄러운 수준에서 쓴 망언이다.

케네스 월츠와 그 이후 국제정치 저작들을 보면 국제적 패권 질서가 없는 상황이 얼마나 국가 간의 정치와 역학관계에 있어 혼란을 초래하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미국의 패권은 이러한 국제정치의 혼란을 교통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쉽게 말해, 미국이 고립주의를 채택했을 당시의 국제연맹과 현재의 국제연합을 비교해보면 이 차이를 더 명확하고 간단하게 알 수 있다.

이 글에 환호하는 인간들은 질서가 없는 국제정치의 무정부적 상황을 바라는가? 그렇게 된다면 한국이 있는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나타나는 것은 미국을 대체하는 중국이라는 완고한 유사 제국(Pseudo Empire)가 될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상황은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미국이 아니면 무엇이든 좋다” 혹은 “미국 붕괴를 희망한다”는 NL 소아병 환자들이 뇌내망상을 하는 것은 자유다. 그런데 이렇게 매체를 통해 기고해 잘못된 사실을 설파하며 사람들을 오도하는 것은 안 된다. 하물며 그 저자가 “역사학자” 타이틀을 달고 있음에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이 글을 쓴 사람 말처럼,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만약 트럼프 이후 전 세계가 지옥으로 간다면 그 길은 아마도 트럼프 같은 파시스트를 찬양한 이런 무지한 사람들의 어리석은 믿음으로 포장되어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런 길 위에 서기 싫다. 미국은 계속 제국으로 남아야 하며, 세계 질서를 유지해야 한다. 그것이 미국에 좋을 뿐만 아니라, 한국에도 좋기 때문이다. 이런 논의는 해롭기만 하다.

본지 제휴 <ㅍㅍㅅ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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