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명상
이건희 명상
  • 지성수
  • 승인 2016.08.18 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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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평생 사업만 하시다가 몸소 매춘 사업에 소비자로서 경험을 하신 이건희 회장의 이야기 때문에 장안이 훈훈한 탓에 나도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우선 이건희 황제가 잡놈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주어 개돼지들로 하여금 “그래. 너도 별 수 없는 나 같은 보통 인간이었구나!”하는 위로를 크게 받게 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처음 생각난 것이 삼성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살다가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삐진 다음에 “삼성을 생각한다”라는 책을 써서 전 국민들로 하여금 “과연 삼성이란 어떤 곳인가?”하는 명상을 하게끔 만들었던 김용철 변호사를 만나서 크게 실망 했던 일이었다.

당시 지역 인사의 소개로 부천에서 빵집을 하고 있던 김변호사를 만났다가 씁쓰름한 경험을 했었다. 나로서는 전혀 예기치 못했던 반응이었다. 한국 최대 재벌과의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인 싸움꾼을 찾아갔다가 너무 초라한 모습을 보고 실망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그의 태도는 웅크린 체 잔뜩 경계를 잔뜩 동물 같이 피해의식에 쌓인 방어적인 모습이었다. 2년 이상의 치열한 전투를 치른 사람으로서 너무 의외의 모습이었다. 물론 거대한 조직과 힘과의 싸움에서 개인의 심신이 피폐해졌을 것이라는 것을 충분히 이해 할 수 있다

그러나 잔인한 법률게임을 했던 냉혹한 법률가였던 그가 그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이해되기가 어려웠다.

조금은 어이가 없었던 나는 원래부터 그의 출신성분이 끈질긴 생명력을 기반으로 하는 잡초 같은 우리 같은 민초와는 다르기 때문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면서 80년대 후반 재벌의 토지 소유 문제를 폭로해서 민주사회로의 발전의 길에 큰 공로를 세우고 이후에도 오랫동안 그 분야의 전문가로서 공헌을 했던 감사원 출신 이문옥 감사관이 생각났었다.

두 번째로 나의 매춘 사업 관계를 더듬어 보았다.

나는 평생에 두 번 매춘업소를 찾아보았다.
한 번은 대학 3학년 때 총학생회장 선거가 있어서 선거운동원들이 수원에 있는 서호로 단합대회를 하러 갔었다. 돌아오는 길에 버스가 고장이 나서 고치다가 시간이 늦어져서 통행금지 시간이 임박했다. 통금을 어기지 않기 위해서는 전원을 여관에 투숙을 시켜야 하는데 그럴만한 예산이 없었다. 그 때 복학생 그룹에서 아이디어를 낸 것이 서울역 앞 도동 창녀촌으로 가는 것이었다. 화류계 경험이 풍부한 한 선배가 늦게까지 손님을 못 받은 창녀들이 그날 밤의 방값이라도 빼기 위해서 싼 값에 방을 내준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도동으로 가서 급하게 여기 저기 뛰어 다니며 교섭을 해서 50명을 풀어서 몇 명 씩 한 방에 자게 했던 것이다. 그날 어찌나 빈대에 많이 물렸던지 그 기억 밖에 없다.

그 때 같이 갔던 김홍신이는 그가 써서 공전의 힛트를 친 ‘인간시장’에서 그 때의 경험을 살렸을 것이다.

두 번째는 군대 시절 말년에 PX를 보고 있을 때였다.
부근 부대에서 고교 1번 선배가 육사 출신으로 중대장을 하고 있었는데 중대장은 사병 보다 더 외박이 어려워서 거의 외출을 못나가고 있었다. 선배가 우리 중대 중대장에게 백을 써서 나와 같이 외박을 나가게 되었다. 나는 술이나 사주고 끝내려고 했는데 여자까지 보급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래서 여자를 붙여주고 나오려고 했더니 ‘너는 전우애도 없느냐?”고 찐뜨기를 붙었다. 할 수 없이 나도 여자를 불러서 옆 방에 들어간 다음에 돈만 주고 조용히 나갈 터이니 옆 방 손님에게 아침에 갔다고 하라고 했다. 그랬더니 여자가 하는 말이 “마침 오늘 생리 하는 날인데 잘됐네요”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아니? 생리를 하는 날도 손님을 받아요?”라고 하니까 “이런데 있는 여자가 그런 것 저런 것 다 가리면 어떻게 돈을 벌어요?”라고 했다. 

그 날의 경험은 세상을 더 깊이 알게 하는 공부였다.....이건희 회장님도 공부 좀 하셨으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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