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가 성직자인가?
목사가 성직자인가?
  • 진민용
  • 승인 2008.03.04 08:16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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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종교인 세금 문제가 확산되고 있고, 이제 교회는 스스로 자정 능력을 잃어버린 거대 공룡 집단이 돼버린 듯한 인상을 줍니다. 그런데 최근 방송사에서 토론을 하러 나왔던 몇 분의 목사들이 여러 주장을 하면서 쓴 '성직자'라는 단어가 제 마음에 걸렸습니다. 스스로 '성직자'로 지칭하는 그들의 논리가 지나치게 비성경적이고 몰상식적이기에 반론을 제기합니다.

1) 목사는 성직자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기준으로 판단하지 말라?

목사는 성직자가 아닙니다. 유독 한국 교회가 목사에 대해 성스러운 자격을 부여하는 이유는 어쩌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서'에 근거한 것이 아닌 자의적 해석에 따른 경우일 것입니다. 흔히 여러분이 교회에 출석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목사는 구약의 제사장·선지자·예언자·신약의 사도들의 뒤를 잇는 직분이라는 것일 텐데요. 하지만 성경 어디에도 목사를 '성직'이라고 구분한 경우가 없습니다.

성경에서 '성직'이라고 할 때는 '제사장'에게만 해당합니다. 일반인은 직접 야훼의 얼굴을 대면하지 못했고, 야훼와 인간의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제사를 집도했던 직종이 바로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잘 아는 아브라함과 모세·여호수아·다윗 등의 인물들조차 제사장 앞에서는 한 인간에 불과했습니다. 그만큼 야훼의 '성직' 구별은 철저했습니다.

자세한 제사장 선출법은 율법서라고 불리는 레위기와 출애굽기에 나오므로 여기서 나열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오늘날에는 '성직'이라는 구별을 할 만한 직책이나 인간은 없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로마 가톨릭의 교황조차도 '성직'은 아닙니다.

그러나 목사들은 스스로 성직자라고 부릅니다. 이는 아마도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일반 직장인과 달리 모든 생활 자체를 교회 일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인 듯합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교회 전담 직원입니다. 그리고 목사뿐 아니라 교회에는 목사보다 더 교회를 위해 일하는 '관리집사'라는 직종도 있습니다. 이들 또한 목사 못지않게 교회 관리며, 청소·예배 준비·뒤처리 등등 다른 직업이 없이 매달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사람에 대해서 '성직자'라고 불러주는 목사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밖에도 교회 차량 운전기사, 행정 사무 직원 등도 교회 업무를 전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또 목사들은 말합니다. "목사는 안수를 받으며 말씀을 전하고 예배를 인도한다"고요. 물론 교회에서의 핵심적인 역할은 목사가 하고 있고, 또한 실질적인 교회 대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더 나아가지 말아야 합니다.

'역할의 차이'와 '역할의 차별'은 다른 것입니다. 목사는 다른 일반 교인들과의 '역할의 차이'만 있을 뿐 '역할의 차별'을 둘 만큼 다른 교인들이 목사에 비해 결코 '덜 거룩한' 사람들이 아니며, '덜 성직'을 수행하는 것도 아닙니다.

2) 하나님의 직접적인 부르심을 받은 종이다. 소명 받은 종이므로 '성직자'다?

이 부분이야말로 오늘날 한국 교회의 목사들에게 있어 가장 큰 자부심이자 자존심입니다. 그들이 교회에서 평신도와는 '레벨'이 다른 이유를 들어 '하나님의 부르심'을 말합니다. 참 어처구니없는 주장입니다.

흔히 신학교에 입학할 때 이런 고백을 하고, 교수 앞에서 면접을 보면서 고백을 합니다. "저는 이러 이러 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습니다"라고요. 저는 되묻고 싶습니다. 그 부르심을 직접 음성으로 들었다는 사람도 있고, 마음에 깨달음으로 인도를 받았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심지어는 하는 일마다 실패를 맛봐서 결국 신학교에 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 출발합니다. "나는 성직자로 불렀고, 너희는 평신도로 살게 했다"는 이분법적인 교만함 때문에 목사가 되면 이상한 우월감에 빠지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평신도로 부른 것과 주의 종 즉, 목사로 부른 것이 다르다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그 '다르다는 것'이 수준의 차이를 말합니까, 아니면 역할의 차이를 말합니까? 목사로 부르심은 고급스런 부르심이고, 집사로 부르심은 저급합니까? 목사로 부른 것은 사명이고, 교회 운전기사로 부른 것은 일반 직업입니까? 또 나아가 세상에서 일하는 과학자·대통령·정치인·환경미화원으로 최선을 다해 일하는 성도들은 그들의 직업이 하나님의 부르심이라고 믿으면 안 될까요?

또한 이들의 주장은 교회 역사를 봐도 근거가 빈약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개신교의 출발 신호탄을 쏘아 올렸던 마틴 루터가 내세운 기치는 '만인의 제사장화'였습니다. 16세기 중세 가톨릭의 사제들이 저질렀던 비성서적인 일들, 특히 성직 매매·성모 숭배·성인 추대·면죄부 판매, 그리고 교황과 사제들의 지나친 '성직' 의식으로 '교황은 죄가 없는 사람이다'는 논리의 비약을 비판했고, 종교 재판과 마녀사냥 등 비성경적이고 몰상식적인 만행을 저질렀던 교황청과 그 부류들에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구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95개 조항의 반박문을 붙이고 시작된 것이 바로 '종교개혁'입니다.

그 이후 개신교는 칼빈과 루터라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각 계파가 나눠졌지만 유일하게 한 목소리를 냈던 것이 바로 '오직 성경으로'였습니다. 칼빈의 5대 교리 중 핵심적인 것이 바로 '오직 성경으로'입니다. 오늘날 천주교에서는 '성모 마리아 형상'이나 '성자' 등을 많이 섬기면서 그들의 형상이나 그림·동상 등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어떤 사람의 동상도 교회에 세우지 않습니다. 심지어 예수의 그림이나 형상들조차 거부하는 교회들도 많습니다.

이처럼 종교개혁의 교과서가 됐던 '성서'에 '목사'라는 단어는 단 한 차례 등장합니다. "그가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예언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엡 4:11)

오늘날의 목사와 가장 가까운 직종이 바로 이 대목입니다. 에베소 교회에 보낸 사도 바울의 편지에 등장하는 '목사'라는 단어는 다른 직종들과 나누는 구별을 하고 있습니다. 또 이 구별이란 교회에서의 역할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지 역할에 있어서의 차별, 또는 우월적 위치를 주장하는 근거가 되지 않습니다.

즉, 교회에는 목사와 교사, 그리고 집사와 장로, 또는 관리원과 사무원 등 다양한 방법으로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봉사하는 직책들이 있습니다. 그 중 목사는 다른 직종보다는 다소 무거운 책임을 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즉 설교와 예배집례, 기도회 인도, 교육 또는 양육 등의 교회 일련의 대부분 역할을 목사가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들은 앞서 말한 대로 '성직' 수행으로서의 일보다는 '직무의 수행'에 가깝습니다. 즉 '목사'가 마치 신과 인간의 중간 역할을 수행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면서 신성불가침 영역인 듯 행세하도록 성경은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구약의 제사장은 짐승을 죽이는 제사를 집도했지만, 신약의 예수는 바로 그 제물이 돼서 직접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야훼와 인간의 중재자가 됐습니다.

따라서 인간들 중 어느 누구도 그 예수의 역할을 다시 할 필요도 없을 뿐더러, 이제 교인들이 하나님과의 대면을 위해 목사라는 사람의 중재를 받을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목사라는 직책은 교인들을 마치 하나님의 곁으로 인도하는 듯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아닌, 단지 교인들이 예수를 믿고 신앙을 고백하는 과정에서 성경을 토대로 하는 가르침과 예배(제사가 아님)의 집례를 하는 사람입니다.

3) 목사가 성직자 노릇하도록 묵인한 것은 한국 교회의 결정적인 실수

일단 성경에는 목사를 '성직'이라고 규정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목사들 스스로 자신들의 정체성과 가치를 높이기 위해 아무리 '제사장'이니, '선지자'니, '대언자'니 외쳐도 이미 그 역할은 예수에게 집중됐고, 그 예수는 그야말로 타락한 구약의 제사장들과는 달리 진실한 대제사장이 돼서 하나님과 사람의 중재자가 됐습니다.

이런 일이 생긴 이유에 대해서는 한국 교회의 신학적 부재를 첫째 원인으로 꼽습니다. 신학적으로 정확하게 목사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규정지어주지 못한 채 두루뭉술하게 넘어간 책임이 있습니다. 또한 한국 교회의 초창기 신학자들은 대부분 목사들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지위에 대해 묵과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또한 지적하고 싶습니다.

또 한 가지는 교회를 일컬어 '성전'이라고 부르지만 결코 성전은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란 '예수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말하는 것이지,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성전이라고 불리는 건물은 구약에만 등장하며 신약에 와서는 성전은 무너지고 그 터 위에 예수가 믿음으로 살아있는 성전이 됐던 것입니다.

이처럼 '성직'과 '성전'이라고 불리는 목사와 교회, 이들이 그처럼 세상의 비난과 여론의 뭇매에도 당당할 수 있고, 엄청난 돈을 쏟아 부으면서 수백억짜리 교회 건물을 지으려 하는 이유가 바로 '신학적인 무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MBC 방송의 '뉴스후'가 지적한 교회들의 납세 문제와 아울러 헌금의 사용처에 대해서도 마치 '성스러운 영역을 세속적인 방송이 건드리지 마라'는 식의 태도를 취하는 일부 대형 교회의 자세는 매우 잘못된 것임을 다시 한번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민용 / <뉴스앤조이> 기자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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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unayah 2019-04-20 13:56:16
공감 합니다
아주 정확하게 집어 주셨습니다.
애매한점을 확실하게 잡어 주시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됬습니다.

제이 잔 2009-01-15 00:47:27
성경을 근거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없다는 것을 아주 조리있게 지적하셨습니다. 이 구분은 케톨릭의 전통에서 나온 것으로 개신교가 잘못사용하고 있는 것중에 하나이지요. 예수님은 성전을 헐라 그리고 삼일만에 다시 짓겠다고 하셨는데 오늘날 목사님들이 교회 건물을 지으면서 성전을 짓는다고 하며 예수님의 말씀과 반대로 구약의 교회를 강조합니다. 여전히 구약의 완성인 신약성경을 제대로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요. 성경에는 모든 성도가 예수님의 제자이고 성직자이며 성직을 수행하는 자입니다. 종교개혁자 쟌 칼빈은 하나님의 백성은 모두 성직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모두에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하심에는 우리 모두가 그 성직수행을 위해 부름을 받은 것이지요. 주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삶은 우리가 하고 있는 직업(occupation)을 가지고 성직(vocation)을 수행하는 것이지요. 현대교회의 문제점이 목사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성직자임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 문제이지요. 성경은 크리스찬 모두가 성도라고했고 성도가 이땅에서 사는 것이 거룩하게 사는 것이고 주님이 부탁한 거룩한 성직(vocation)을 성직자로서 생업의 현장에서 수행하고 사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