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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세계일주 한 작가가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인터뷰] <300불로 떠난 이민, 20년 세계일주가 되다>의 저자 김현성씨
생활 거주형 여행기 <300불로 떠난 이민, 20년 세계일주가 되다>의 책표지. 원치 않은 시련과 실패로 시작된 20 여 년의 세계일주, 그 지나온 길을 되돌아본다. ⓒ 다반

얼마 전 신간 <300불로 떠난 이민, 20년 세계일주가 되다>에 대한 서평을 썼다. <오마이뉴스> 편집부로부터 연락이 왔다. 책의 저자를 인터뷰 해보면 어떻겠냐고. 20여 년 간 멕시코, 미국, 일본 등 7개국의 나라를 떠돌며 가족과 여행하듯 살아가는 '이 시대의 진정한 유목민'을 만나보고 싶은 터라, 흔쾌히 응했다. 

그렇게 지난 3일 자칭 '휴먼노마드'라 자부하는 저자 김현성씨를 만나러 가는 길(저자는 출판을 위해 지난 3월 한국에 나왔다 얼마전 독일로 돌아갔다). 아뿔싸! 약속시간보다 30분이나 늦었다.

중앙선 열차가 철도파업으로 감축운행 중이었던 것. 그런데도 김씨는 유쾌하게 한 마디 툭 던진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그 정도 불편쯤이야 서로 나눠가져야죠". 그랬다. 그는 대한민국이 처한 현실에 따뜻한 공감을 보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까다로운 서류 일색을 구비해야 입국이 허용되는 '외국살이'를 지속하는 이유는 뭘까.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원치 않은 실패의 문턱 몇 개쯤은 맞이하게 마련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두 겪은 IMF도 그중 하나.

"뭔가 납득이 안 됐어요. 대기업에서 일하는데 전세대출금 이자 갚고 공과금 내면 남는 돈이 없는 거예요. IMF 때 보너스 자진 반납하고 기본급으로 살았는데, 은행이자는 거의 두 배 가까이 뛰었어요. 이게 뭘까 싶었죠. 열심히 일하는데도 오렌지 주스 하나 못 사먹는 현실이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오렌지 주스 하나 못 사먹는 현실, 이게 뭘까" 

젊음을 담보로 그는 무작정 떠났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쳇바퀴가 전부는 아니었다. 20세기는 모두가 하나의 쳇바퀴에 목숨을 건 시대였지만, 21세기는 달라져야 할 것 같았다. 이제껏 그렇게 살아 왔으니까 앞으로도 그래야 된다는 건 이해되지 않았다. 

은행대출 상품으로 보장되는 삶의 기반은 개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제든 무너질 위험이 있지만, 젊은 날의 패기로 덤벼보는 새로운 도전은 자신만의 선택이기에 어떤 결과라도 받아들일 자신이 있었다. 

지난 20여 년 생활거주형 세계 여행을 하는 동안, 매일매일 다가오는 세상의 파도는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혈연, 학연, 지연의 속박에서 벗어나 노동으로 일구어낸 열매는 값졌다. 세계 어디를 가든 그는 체면과 격식에 구속되지 않는 자연인일 뿐이었다. 진짜 중요한 자격증은 대학 졸업장이 아니었다. 미국에서 식품창고 하역노동자로 일할 때 제일 필요했던 건 지게차를 모는 기술이었다. 

외국에 정착할 때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겪는데 김씨는 그걸 '수업료'라고 부른다. 세상 어디를 가든 육체적, 정신적인 수업료를 내야 큰 사기를 당하지 않는다. 그 나라 물정에 어둡다보니 크고 작은 위험은 감수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비자 문제로 겪는 마음고생은 이만저만 한 게 아니다. 비자는 영사의 재량권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같은 서류를 챙겨도 영사와의 인터뷰에 따라 전혀 다른 상황이 속출했다. 

가족과 함께 떠난 유럽 여행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함께 가족사진을 찍었다. ⓒ 김현성

책에 비자에 관한 여행정보를 소개하는 부분이 있는데, 개인적인 경험담이 실린 원고를 모두 삭제해 버렸다고. 그건 어디까지나 지극히 자신에게 일어난 사적인 경우인데 일반적으로 이해될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란다. 굳이 이런 사실을 밝히는 이유는 '외국살이'가 생각보다 낭만적이지 않음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헛된 환상의 도구로 다가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기도 하고.

사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낼 의도는 없었단다. 우연히 신문에 가족이야기가 소개되면서 같은 시기에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내보자는 제의가 들어왔는데, 그때 대학 후배로부터 1인 출판사 <다반>을 운영하는 노승현씨를 소개받았다. 다른 대형 출판사들은 샘플 원고를 보내달라는 요청부터 했는데, <다반>은 직접 만나 얘기해보자는 연락을 보내왔다고. 

이 책 속에는 중간 중간 삽화가 등장하는데 '축사 안에서 편히 사는 양이 될지, 넓은 들판에서 사는 자유로운 양이 될지'를 생각하게 하는 그림들이었다. 그 그림은 책의 재미를 위해서이기도 했지만 누군가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일부러 수록했다고 김씨는 말한다. 젊은 세대에게 기회를 주는 기성세대가 되고 싶었던 평소 바람을 작게나마 실천한 것이다. 

김씨는 한국사회를 바라볼 때 제일 안타까운 것으로 비정규직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점점 많아지는 것을 꼽았다. 우리 사회의 최저임금제는 제대로 된 빵 한 조각과 방 한 칸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실정 아닌가라며. 

"수만 갈래가 있는 세상, 자신만의 깃발을 들기를"

책의 저자 김현성씨 <300불로 떠난 이민, 20년 세계일주가 되다>의 책 작업을 위해 한국에 머물고 있다. ⓒ 김현성

그가 이렇게 국내 사정에 관심을 기울이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외국에 나가면 모두가 애국자가 되더라는. 김치 조각만 봐도 반갑고, 한국 사람이라는 말만 들어도 눈물이 났단다. 

그런데 모처럼 돌아온 모국에서 만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사건은 참담한 심정을 불러일으켰다. 김씨는 "도대체 어느 나라 역사에 이런 치욕의 역사가 존재한단 말인가"라고 묻는다. 그러며 갑자기 한 권의 책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바로 <세계를 뒤흔든 열흘>. 이 책은 1917년 미국 기자 존 리드가 열흘 동안 러시아를 발로 뛰며 취재한 르포문학이다. 

김씨는 왜 그토록 볼셰비키 혁명에 목숨을 거냐는 기자의 물음에 답한 레닌의 말을 들려줬다.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먹을 빵 한 조각을 위해 싸웠다고. 민중이 원했던 건 대단한 권력이 아니라 빵 한 조각과 마음 편이 쉴 방 한 칸이었다고. 

그런 소박한 꿈을 짓밟는 기득권에 대한 저항, 격동의 혁명기가 아니더라도 여전히 그것은 현재진행형이었다. 문득 그의 시선으로 바라본 한국의 실상은 어떤지 궁금했다. 대답 대신 그는 사지선다형의 질문을 던졌다. 

"중동 분쟁, 멕시코의 갱 전쟁, 유럽의 테러, 세월호 사태와 북한의 핵미사일의 한반도. 이 가운데, 제일 위험한 지역은 어디일까요? 다음 문제, 하버드대, 동경대, 옥스퍼드대, 서울대. 이중에서 제일 공부 못하는 사람이 가는 대학은 어디일까요?"

독자 여러분은 답을 찾으셨는가. 답은 예상대로다. 김씨가 한국으로 돌아간다 했을 때 멕시코 친구들이 모두 반대했단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대는 위험한 나라로 왜 돌아가냐는 것이었다. 세계에서 한국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랬다. 그뿐인가. 이제껏 세계 어디를 가도 '서울대'를 아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만난 적이 없단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오직 자기 시선에 갇혀 있지 않느냐고 한탄한다.

2008년, 2012년 두 차례의 세계금융위기를 겪으면서 휴먼노마드 가족들에게도 시련이 찾아왔다. 문득 한국으로 돌아갈까 생각해봤지만, 그때마다 한국 정권에 대한 깊은 회의감으로 계속 여행을 고집했단다. 어쩌면 20년 세계여행에는 이명박, 박근혜 정권의 지대한 영향력이 컸다는 뼈있는 농담도 던졌다. 

지금 김현성씨네 가족은 독일에 머물고 있다. 슬슬 아이들과 헤어지는 연습을 하는 중이란다. 이런 식의 여행이 아이들에게 큰 부담을 주는 듯해서다. 시험 삼아 올 여름 방학 때 베를린에서 두 아이만 따로 생활했다. 이후에도 자신들이 하고 싶은 공부나 다른 계획이 있을 테니, 아내와 둘이서 떠날 여행을 구상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책에 싣지 못했지만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물었다.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만 가면, 이곳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 있어요. 우리의 시선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지요. 우리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다른 시선으로 보자면 별 거 아니거든요. 세상을 살면서 중요한 건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다는 거예요.

지금 한국 사회는 모두가 정해져 있는 길을 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잖아요. 세상에는 수만 갈래의 길이 있는데 말이죠. 사람들이 자기 깃발을 들고 자기 길을 갔으면 좋겠어요."

이 책을 통해 김씨가 말하고 싶었던 건 20년 동안의 세계일주가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 유일무일 한 '휴먼노마드 가족의 여행'은 획일적인 하나의 가치를 위해 무조건 참고 견디는 삶의 방식에 대한 나름의 도전이었으리라. 

21세기는 하나의 가치로 속박될 수 없는 시대임을 확신했고, 그는 자기만의 깃발을 들고 걸어갔던 것이다. 독자와 공감하고 싶은 지점이 있다면,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부디 당신들도 자신만의 깃발을 들고 이 거친 세상 속으로 걸어가기를 소망하는 것. 

자신만의 깃발이란 무엇일까. 나의 중심을 찾아주고 내 일생의 행복을 발견해 줄 나만의 깃발. 마음 속 어디에선가 펄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가 특별한 사람이라서 20년 세계일주를 한 것이 아니듯, 세상 밖으로 나만의 깃발을 꺼내는데 그리 어렵지 않을 듯했다. 

어수선한 시절이지만 전국 방방곡곡에 소신 있는 자기만의 깃발이 펄럭이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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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숙  newsm@new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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