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 : 2017.12.7 목 02:49
상단여백
HOME 뉴스 문화
"그렇게 살면 행복한가?" 우병우에게 묻는다[서평] 국정농단 청문회 보며 다시 꺼내든 <자발적 복종>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제5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선서하고 있다.ⓒ 남소연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국정감사 청문회가 12월의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재벌회장, 고위공무원, 교수, 의사 등 관련된 증인들이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내고 답변을 하고 있지만, 생각만큼 진실이 밝혀지지는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모든 의혹들에 대해 모른다 하거나 부인하는 증인들이 상당히 많다.

심지어 전 민정수석 우병우씨는 청문회에 참석해 여러 가지 의혹들엔 부인하다가 박근혜와 김기춘은 존경한다고까지 말했다. 이 장면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대한민국의 최고 엘리트라 할 만한 사람의 이와 같은 행태를 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런 의문은 비단 우병우씨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시민들은 대통령 탄핵을 명령했지만 여전히 새누리당 의원들은 박근혜를 군주처럼 옹위하며 지키려 한다. 범죄에 가담하거나 방조했던 고위 공무원 및 재벌들은 청문회 증인으로 나와서도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뻔뻔스럽게 위증을 하기도 한다. 박근혜를 사랑하는 일부 극우 세력은 촛불에 맞불을 놓겠다며 광장으로 나와 시민들의 집회를 방해하기도 한다.

정말 궁금했다. 도대체 무엇이 사람들을 이렇게 만드는 것인지. 책장을 훑어보다 460여 년 전 프랑스의 청년 에티엔 드 라 보에시의 짧지만 강렬한 글 <자발적 복종>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라 보에시는 왕의 재판 권한을 대리하는 고등재판소 재판관이었다고 하는데, 그는 자신의 직책에도 불구하고 군주제에 반하는 생각을 거침없이 쏟아냈다.

460년 전 프랑스 청년이 2016년 대한민국에 전하는 말 

자발적 복종 표지ⓒ 생각정원

라 보에시는 많은 사람들이 단 한 사람의 독재자를 견디는 일이 어떻게 벌어지는지에 집중했다. 이 '독재자'가 권력자 혹은 재벌 회장 등으로 바뀌기만 했을뿐 시대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똑같은 일들이 벌어져 왔다. 한국만 해도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일본식민지에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등 독재권력 아래서, 최근엔 거대한 자본권력 아래 머리를 조아리는 이들을 목도해왔다.

사람들이 억지로 복종을 강요당하기도 하지만 수많은 이들이 노예처럼 스스로 굴종하는 모습을 보며 라 보에시는 이것을 '자발적 복종'이라 칭했다. 그리고 이렇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로 먼저 '자유'라는 소중한 재산을 경시하는 경향을 든다. 짐승들조차도 사로잡혀 있으면 자유를 향한 욕망을 온몸으로 표출하는데 어찌 사람들은 본질적 욕구인 자유마저도 포기하는 것일까?

"우리는 여기서 자발적 복종의 일차적 근거가 습관이란 사실을 발견한다. 그것은 마치 말이 길드는 과정과 같다. 말에 재갈을 채우면 처음에는 재갈을 물어뜯다가 나중에는 익숙해져 재갈을 갖고 장난질한다. 말에 안장을 얹으면 처음에는 격렬하게 반항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자신을 짓누르는 무거운 장비와 장신구를 뽐낸다."(81쪽)

그렇다. 요즘 청문회에서 진실을 말하려 하지 않으며 드러난 사실조차도 부인하는 이들은 이와 같은 악습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언제나 복종해왔던 백성이었기에 자신들 위에 군림해왔던 권력자의 잘못된 행위들까지도 정당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라 보에시의 이 격정적인 연설을 들려주고 싶다.

또한 사람들은 권력자들이 하사하는 선물 혹은 호의에 매우 취약한 점을 라 보에시는 지적한다. 우리가 라 보에시와는 완전히 다른 시대를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폭군들이 백성들의 탐욕, 시기와 경쟁, 관심돌리기 등 유약한 지점을 간교하게 파고들어 복종이라는 굴레를 씌웠던 과거의 방법들이 현재 이 순간에도 여전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자발적 복종의 습관, 자유를 누려본 경험이 없거나 자유에 가치를 두지 않는 태도, 권력자들의 간계에 더해 권력자의 지배를 공고히 하는 가장 핵심적인 비밀이 하나 더 있다.

"독재자를 보호하는 것은 기마대도 보병대도 아니며 무기도 아니다. 언제나 대여섯 명이 독재자의 권력을 떠받들고, 이 대여섯 명의 신하가 온 국민을 노예처럼 부리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왕에게 접근했거나 왕의 부름을 받고 왕의 잔악한 짓을 공모하기 위해 모인 자들이다.

이들은 왕의 쾌락을 위한 동반자고 왕의 애욕을 채우기 위한 뚜쟁이며 왕의 재산을 축적하기 위해 국민들의 살림을 약탈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 공범이다. 이들은 군주 본연의 악함을 넘어서 측근들 자신의 악함까지 모두 삼키게 하려고 군주를 제대로 길들인다." (109-110쪽)

자발적 복종에서 벗어나 자유로 

청와대 향하는 모형 감옥. 17일 오후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 공범처벌, 적폐청산의 날 - 8차 촛불집회'에 참석한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우병우 전 민정수석, 김기춘 전 비서실장, 황교안 총리, 비선실세 최순실, 안종범 전 경제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이 갇힌 모형 감옥을 끌고 청와대를 향해 행진하고 있다.ⓒ 권우성

2016년 현재 대한민국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그려 놓은 것 같아 소름이 돋는다. 이들 수하에 수많은 조력자들이 촘촘하게 그물망처럼 얽혀 지배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라 보에시는 말했다. 국회 청문회만 봐도 이것이 현실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광장에서 촛불을 든 우리 시민들이 극복해야 할 장벽이 절대 만만치 않다는 것을 확인해 준다.

이 책은 16세기 프랑스에서 짧지만 아주 강렬한 생애를 살다 떠난 젊은 청년 라 보에시가 21세기 대한민국에 고하는 메시지처럼 들린다. 광장에 나와 그동안의 잘못된 구조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는 인간 본연의 가치인 '자유'를 되찾으라고 말한다. 권력과 한 몸이 되어 자발적으로 복종하고 있는 자들에겐 아래와 같이 고한다. 

"그렇게 사는 인생이 행복할까? 그렇게 사는 것을 과연 인간의 삶이라고 부를 수조차 있을까? 나는 대단한 용기를 가진 인간에게 묻는 것도, 훌륭한 가문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묻는 것도 아니다. 나는 단지 상식을 가진, 인간의 얼굴을 한 존재에게 묻고 있다.

자기에게 속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존재. 타인에게 자신의 평안과 자유, 몸 그리고 삶까지 온전히 맡기고 있는 이러한 삶보다 더 비참한 삶의 조건이 가능할까?"(117쪽)

본지 제휴 < 오마이뉴스 >, 무단 전재 재배포 금지

이훈희  newsm@newsm.com

<저작권자 © NEWS 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icon인기기사
의견나누기(0개)
코드를 입력하세요!   
0 / 최대 3200바이트 (한글 1600자)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상세보기]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