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소 고지의 문재인과 손원영
핵소 고지의 문재인과 손원영
  • 김기대
  • 승인 2017.02.21 10:1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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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언제?

2차 대전 말엽 오키나와 전투에 참전했던 미군 위생병 데스몬드 도스(1919~2006)의 실화를 다룬 ‘핵소 고지’는 얼핏 영웅 주의나 국가주의 영화 처럼 보인다.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으면 고지의 이름도 핵소(hacksaw, 쇠톱)이었겠는가? 지옥같은 현장에서 75명이나 되는 병사의 목숨을 구했다는 전설같은 실화는 국가주의를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 영화를 그렇게만 보기에는 미안한 부분이 있다. 도스는 '제7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 우리가 흔히 안식교라고 부르는 종파의 교인을 어머니로 둔 가정에서 성장했다.

일본의 진주만 습격이후 미국의 젊은이라면 ‘애국’을 위해 자발적 참전이 하나의 흐름인 시절 도스도 기꺼이 입대한다. 일반 체력훈련은 뛰어난 점수로 통과한 도스지만 집총훈련이 시작되자 집총을 거부한다. 살인 무기를 잡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안식교인은 여호와의 증인과 달리 집총거부나 수혈거부를 하지 않는다. 그런데 도스는 어릴 적 실수로 동생을 죽일 수도 있었던 사고(실제로는 그렇게 큰 폭력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의 기억으로 십계명의 살인 금지 계명이 마음 속에 깊게 각인된 채로 성장했기에 집총을 거부한 것이다. 여기서부터 상관과 동료들의 박해가 시작되고 도스는 고통의 시간을 견뎌내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도스는 위생병으로 핵소고지 전투에 참전하고 비처럼 쏟아지는 포탄속을 누비며 무기 없이 75명을 구해낸 무용담, 영웅설화의 주인공이 되었다. 

영웅설화를 그냥 흘려 보낼 수 없는 이유는 모두가 전쟁의 광기를 품고 있던 2차 대전 시기에 한 양심적 집총 거부자의 신념과 주변의 사회가 그것을 수용하는 과정을 담았기 때문이다.

 

멜깁슨 감독의 참회록 같은 영화

감독이 멜 깁슨이다. 주지하다 시피 그는 ‘성비오 10세회’ 소속의 가톨릭 교인이다. 성비오 10세회는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을 거부하고 트리덴티노 미사 예전을 따른다. 제 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정 중 지역 교회는 모국어로 미사를 드리라는 내용을 따르지 않고 라틴어 예전을 고집하는 단체다. 교황청으로서는 골치거리일 수 밖에 없는데 지금은 가톨릭 교회의 일부이긴 하되 로마 가톨릭 교회의 완벽한 지체라고 할 수는 없다는 모호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멜 깁슨이 여기에 속한 신실한 가톨릭 교인이란 뜻은 그만큼 경직되어 있다는 뜻이다. 그가 연출한 영화 '패션(Passion)'은 유대인을 지나치게 악독하게 묘사했다는 비판을 받았으며 '패션'에서 사용된 언어도 아람어 였다. 멜 깁슨은 2006년 7월 음주운전에 단속될 당시 "X같은 유대인들 때문에 세계의 모든 전쟁은 일어나고 있다"는 인종 혐오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었다.

그랬던 그가 이번 영화에서 개신교 내에서도 비주류인 안식교인 데스몬드 도스의 손을 들어 주었다. 개신교 중에서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다시 말해 가장 유대교스러운 개신교인데도 말이다. 이 영화는 멜 깁슨의 참회록 처럼 보인다. 성비오  10세회 신도로서의 배타성을 파기하고 그는 다양성에 더 많은 방점을 찍은 것이 아닐까라는 실낱같은 기대를 가질만한 영화였다.

 

나중에 언제?

이 영화를 보면서 문재인 더불어 민주당 전 대표가 생각났다.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선언한 지난 16일 연설 중 어떤 성소수자가 인권 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청중들이 그 질문을 큰소리로 묻어 버리면서 파장이 커졌다.  질문자가 “저는 여성입니다. 그리고 동성애자입니다”라면서 “얼마 전 (문 전 대표가) 한기총에 가셔서 차별금지법에 반대하고”라고 말하자 문 전 대표는 “듣고 나서 말씀하시면 안될까요?”라고 물었다. 그래도 질문이 이어지자 일부 청중들이 “나중에! 나중에!”라고 외치며 질문을 묻어 버렸다고 한다.

이 장면은 온라인 상에서 첨예하게 대립했다. 연설 중 끼어들기가 잘못이라는 의견과 질문자의 호소를 막아 버린 것은 문제라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하지만 청중들의 과도한 문재인 감싸기가 더 큰 잘못인 것은 분명하다. 연설 중 끼어든 질문자에게 보인 문재인의 ‘나중에’는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사회자가 자제시켰더라도 파장은 커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소수자의 목소리를 다수자가 막아 버린 것은 소수자에 대한 다수의 횡포에 다름 아니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대 교수는 한국일보에서 “문재인 전 대표 측에서 오히려 그런 ‘나중에’ 발언을 제지시켰다면 더 적절했을 것이라 보여진다”고 언급했다.

영화 핵소 고지에서  훈련소 동료들에게 뭇매를 맞는 도스가 연상되었다. 언제까지 우리는 ‘나중에’ 만을 외칠 것인가? 그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소수자 문제를 나중 순번으로 제쳐두는 이들의 참회록은 언제쯤 나올 것인가? 문재인은 좋지만 '문빠'들이 싫다는 한 네티즌의 지적은 귀담아 둘만하다.

 

불상 훼손 모금 손원영 교수

서울기독대는 이사회는 지난 17일 손원영 신학대 교수를 파면했다. 지난 해 1월 17일 개신교인임을 자처하는 60대의 한 남성이 경북 김천 개운사 법당에 난입해 각목을 휘두르며 삼존불을 비롯한 불기들을 부수고 난동을 피우는 사건이 발생했다. 개신교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들끓자 손 교수는 “기독교계가 불교인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불당 회복을 위한 성금을 모으자”며 모금운동을 전개했는데 이것이 화근이 되어 신학대학에서 파면당한 것이다.

한 개인의 양심적 행위가 신학대 이사회라는 권력의 횡포에 의해 짓밟히고 말았다. 신학대 교수가 불교를 믿겠다는 것도 아니고 단순히 모금 운동을 주도했다고 해서 개신교내 소수 의견을 묵살하고 신분상의 피해를 준 시대착오적 결정이다. 

손원영 교수가 20일 돈암 그리스도의 교회 앞에서 파면을 철회하라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영화에서 부대의 지휘관들은 도스를 불명예 제대시키려고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지만 도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고 결국 전쟁터에서 영웅이 될 수 있었다. 기독신학대 이사들은 1940년대 미군 훈련소의 지휘관들 보다도 못한 결정을 내린 것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핵소고지 전투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탄핵 결정일이 다가오면서 일부 낙관주의자들이 탄핵 인용을 기정사실화 하고 있지만 오키나와 일본군의 저항만큼이나 농단세력들은 쉽게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이 전투 상황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일사불란한 전투력만 필요한 게 아니다. 전투에 승리하기 위해 소수자들은 잠시 닥치고 있으라는 요구는 전투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의심케 한다. 싸워서 쟁취하려는 목표는 특정인의 대통령 만들기가 아니라 소수자가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만들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을 전투에 동참시키는 일이야 말로 승리를 보장하는 전술이다. 도스가 그랬듯이 말이다.

그런데 오히려 강자들의 처지를 생각해주자는 주장이 이른바 ‘외연확장’이라는 차원에서 환호받고 있는 서글픈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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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범 2020-05-17 04:35:33
궁금한데 댓글이 올려지나요?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