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이 '니코틴없는 담배'가 되지 않으려면
문재인이 '니코틴없는 담배'가 되지 않으려면
  • 김기대
  • 승인 2017.04.07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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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은 '지못미'의 대상이 아니다

문재인 후보가 더불어 민주당 경선에서 과반수 득표에 성공해 차기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흥행의 차원에서는 2차 경선까지 가는 것이 유리했으나 더민주당 지지자들은 본격적인 대선 과정에 하루라도 빨리 참여하라는 뜻에서 문재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을 이야기할 때  확장성 부족을 지적해 왔었는데 오히려 이번 경선과정에서는 이재명과 안희정의 확장성 한계가 여실히 증명되었다. 보수 표심을 의식한 안희정의 행보는 집토끼의 이탈을 가져왔다.

반면 이재명의 경우 본인은 ‘이 정도 득표도 기적’이라고 자위하지만 그가 받아온 관심에 비한다면 다소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다. 그가 진보적 의제를 생산함으로 정의당 성향의 유권자들과 안철수가 미덥지 못해 고민하던 반문성향의 유권자들을 끌어오는데 성공했지만 흔히 ‘리버럴’이라고 부르는 중도 진보 성향 중 다수가 고심 끝에 문재인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안정감이나 신뢰가 부족했다는 이야기다. 본선 경쟁력을 생각할 때 기초단체장이라는 한계도 한 몫 했다.

이런 부족을 상쇄하는 데는 ‘감성’이 중요한데 이재명은 이미지가 너무 강했다. 이재명을 흔히 노무현에 비교하는데 그에게는 기득권에 맞서 싸우는 기개도 있었지만 잘 우는 감성도 있었다. 특히 그의 눈물에는 인위적인 것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진정성이 있었다. 이건 훈련으로는 되지 않는 것이기에 노무현의 강성 이미지를 상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은 재야에서 활동하던 기간이 짧았고 성남시에서의 ‘행정적 성취’에 심취된 나머지 작은 자들에 대한 연민이 부족해 보였다. 물론 세월호 피해자들과의 연대에서 (후보들 중에) 이재명 만한 진심을 보여준 사람이 없지만 세월호는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 전국민적 연민이 이루어진 사건이기에 이재명만 돋보이게 하는 데는 부족했다. 경선 토론 과정에서 세월호 리본을 문제 삼아 문재인을 공격한 것은 패착이었다. 공감이 아니라 노란 리본을 은연중에 훈장으로 여겼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는 공격이었다.   

그렇다면 문재인은 어떤가? 심리학자 김태형의 지적처럼 문재인에게는 빗나가지 않으려는 착한 아들 콤플렉스가 분명히 있다. 그의 웃음과 외모가 주는 안정감도 있다. 게다가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했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언처럼 그에게는 노무현 프리미엄도 있다. 노무현의 적자 즉 예수에게는 베드로 같은 안희정도, 노무현의 자발적 제자 즉 사도 바울 같은 이재명도 가질 수 없는 ‘노무현 스러움’이 문재인에게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문재인의 한계는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그의 이런 이미지는 장점이지만 일부 열성 지지자들의 ‘지못미’ 트라우마는 오히려 표를 잠식할 수 있다.

‘지못미’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쓰이던 ‘지켜 주지 못해서 미안해’의 준말이다. 노무현을 탄핵에서 지켜냈던 시민들은 임기가 끝나갈 무렵 모두 앞다투어 반노로 돌아섰다. FTA 체결 등의 문제로 진보세력이 등을 돌리기도 했지만 실제로 그 세력이 비노로 돌아선 것은 극소수였다. 게다가 그들은 처음부터 진보정당의 지지자들이었지 노무현의 지지자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2004년 탄핵반대집회에서 촛불을 들던 노무현 지지자들 대다수가 보수 언론의 기획에 따라 행해지던 노무현 난도질에 동참했다. 임기말에 지지율은 10% 초반까지 떨어졌다. 마침내 노무현과 선을 긋는 것을 선거 전략으로 삼던 정동영은 이명박에게 참패했다. 임기후에도 노무현에 대한 공격을 그치지 않던 기득권 세력에 의해 또 한번 ‘논두렁 시계’ 따위로 난도질 당할 때 여론은 그를 지켜주지 못했다. 결국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보고서야 모두 ‘제 정신’을 차렸다. 

문재인의 지지자들은 이런 트라우마 때문에 문재인을 지킨다며 조그만 비판에도 발끈한다. 지난 경선과정에서 훈장 발언을 비롯한 우클릭 발언에 대한 비판에도 지지자들은 견디지 못하고 음모니 공작이니 매도했다.

노무현을 지키지 못한 상처는 충분히 이해하지만 적어도 문재인이 노무현은 아니다. 일단 보수 언론의 영향이 예전만 못하다. 그런데도 민주적인 경선 절차에서 있을 수 있는 갈등 조차 극대화하고 서둘러 봉합하려는 시도들을 보면 문재인 지지자들이 오히려 경선과정의 갈등을 과장 보도하는 보수 언론에 낚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열성 청취도의 기준으로 보면 지금은 기성 언론보다 팟캐스트의  영향력이 훨씬 지대하다. 100위 안에만 들어도 성공이라는 팟캐스트 시장에서 상위 10위권에는  거의 모두 친문 성향의 방송들이 올라 있다.

언론 지형이 노무현때와는 확연히 다르다는 말이다. 지금 보수 언론들의 안철수 띄우기도 설문조사 문항 설계를 의도적으로 안철수에게 유리하게끔 만든 불공정한 면이 분명히 있지만  문재인의 일방적 질주보다 대결구도로 가는 게 ‘장사가 된다’는 언론의 속성에 다름 아니다.  지나치게 음모론으로 바라보는 건 거슬린다.

억울하다고 징징대지 말라는 말이다. 친문 성향의 팟캐스트 진행자들도 새겨들어야 한다. 문재인은 지금 강자다. 지못미의 대상이 아니다. 그가 가진 착한 아들 이미지를 잘 살려 비문연대와 같은 말도 안 되는 공격에는 이유 없이 당하는 약자 이미지를 보여주는 게 도움이 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신뢰를 줄만한 과감한 진보적 의제를 생산하면서 기성 언론의 시선을 끌어야 한다. 지금은 공격할 때가 아니라 성을 지킬 때라는 안이한 접근으로는 힐러리의 악몽을 재현하게 될지도 모른다.  

보수언론의 행태에서 보듯이 지금 안철수를 보수의 아이콘으로 삼아 양자구도로 삼으려고 시도 중이다. 여기에 대응한답시고 함께 보수에게 구애를 하면 필패다. 오히려 확실한 진보성과 함께 안철수의 정체성을 계속 공격함으로써 안철수에게 어느 정도 쏠려 있는 중도 진보의 표와 안철수를 선호하는 보수표를 갈라치기 해야 한다.

탱크를 타고 있는 1988년 미국 민주당 대권후보 마이클 듀카키스 / 정치전문지 폴리티코(Politico) 사진 갈무리

198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듀카키스는 진보 이미지를 불식시킨다며 탱크에 올라탔다가 (아버지) 부시에게 참패한다. ‘안보’ 이미지를 보여준다며 제너럴 다이나믹(General Dynamic)의 군사공장을 방문해 탱크용 헬멧을 쓰고 M1A1 아브라함 탱크에 올라탔다. 당시 듀카키스의 보좌관이었던 멧 베넷(Matt Bennett)에 따르면 90명의 기자단 전원이 비웃었다고 한다. 베넷은 그때 그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다고 지난 2013년 11월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에서 회고했다. 문재인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부분이다.

그의 장점을 자신의 프레임으로 살려야지 저들이 쳐 놓은 덫에 걸려들지 말라는 의미다. 장신기는 최근 ‘진보 오리엔탈리즘을 넘어서’(시대의 창, 2017)에서 진보를 오리엔탈리즘에 빗댄다. 오리엔탈리즘이란 서구인들이 자신들의 잣대로 ‘동양’을 규정한 것인데 ‘동양’ 이 오히려 서구의 잣대에 따라 자신을 분석하는 부정적 용어다. 장신기는 지금 진보가 그렇다고 말한다. 보수가 규정해 놓은 기준에 따라 자신을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가 자신의 ‘안보’, 자신의 ‘경제’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나도 너희들(보수)이 만든 기준만큼 할 수 있어’라고 한다는 지적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니코틴 없는 담배’, ‘알코올 없는 맥주’, ‘카페인 없는 커피’라는 말로 내용이 없어진 민주주의, 실패한 자본주의의 현재를 분석한다. ‘문재인은 좋은 사람이다’ 라는데 토를 타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뭔가 자극적인 그 너머를 기다리는 유권자들에게 “이 담배 한 번 피워봐요. 니코틴이 없어서 건강해 해롭지 않을꺼에요”라고 말하는 사람만 좋은 문재인이 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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