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 받은 자, 초청 받지 못한 자
초청 받은 자, 초청 받지 못한 자
  • 노용환
  • 승인 2017.06.2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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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장 놓고 완장 놀음? 설왕설래로 흔들리는 동포사회
방미에 앞서 출국 인사하는 문재인 대통령 내외분 ⓒ <NEWS M>

정상 회담차 워싱턴에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일정이 시작되었다. 그 가운데 마지막 일정이 바로 내달 1일에 열리는 동포간담회다. 물론, 이전 대통령들도 동일한 행사를 치루어 왔다. 하지만 이번 동포간담회에 거는 한인들의 기대가 사뭇 다르다. 취임 전후 문 대통령이 보여준 소위 “디테일”이 남달랐기 때문이지 않을까? 예를 들면 어르신들 식사 자리에서 실수로 떨어뜨린 숟가락을 새 걸로 다시 갖다 드리기 전까지 자리를 옮기지 않는다든지, 기념식에서 사인을 받고 싶어하는 소녀가 가방에서 종이를 찾을 때까지 기다린다든지 하는 탈 권위적이고 사람 중심적인 행보 말이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섬세함이 육 천 마일 떨어진 미주의 동포들에게 아직 체감되지 못하고 있다. 동포간담회 초청 방식을 두고 적지 않은 갈등이 양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불만의 양상은 다양하다. 일부 지역 단체장들은 정치적인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당신들이 포함되지 않았음에 주목한다. 

반면, 초청을 담당한 이들은 누구를 빼고, 누구를 넣어야 되는지 심란하다. 비밀 유지를 전제로 한 초청 방식에 마지 못해 동의하여 함구한 활동가들은 같은 단체 동료들의 공정치 못한 초청 절차에 대한 이의 제기에 당황스럽다. 왜 너는 되고, 나는 안되냐는 말에 뭐라 할 말이 있을까? 심지어 동포사회에서 일명 “꾼”으로 불리우는 일부 인사들이 한국 내 지역적 인연, 혹은 집권당 수뇌부 내 인맥을 등에 업고, 스스로 ‘완장’을 찬 채 초청장을 돌리는 모습에 눈살을 찌뿌리는 모습도 보인다. 이런 모습을 지켜보던 한 관계자는 술렁이는 요즘 동포 사회의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뭔가 흐트러진 분위기”. 

세월이 흘러 대통령은 몇 번 바뀌고, 심지어 지난 정권은 심판 되기까지 했지만 이런 구태의연한 절차를 유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실마리를 풀어 보고 싶었던 기자는 초청 받았던 사람들로 이루어진 후보군을 정해 그들의 생각을  들어봤다. 

초청을 받았지만 거절했다는 서부 지역의 한 인사는 “정권이 바뀌었다고 사람이 바뀌는 건 아니다. 감투나 완장 따위에 연연하는 그들과 섞이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거절했다”고 한다. 이어서 “한국 정치 지형에서 해외 동포가 차지하는 분량을 적게 보고, ‘옜다, 떡이나 먹어라’라는 식으로 구태의연하게 접근한다면, 나는 이걸 덥석 물 이유가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역시 초청을 거절했다는 동부 지역의 한 인사는 “음성적으로 이루어지는 초청 방식에 동의하지 않아서 거절했지만, 지금은 이에 대해 공론화 시키고 싶지 않다. 게다가 가겠다는 사람들도 많지 않나? 내 몫은 여기까지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견해고, 초청받아 참석하는 이들이 큰 보람과 위로를 경험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더불어, “민심이 모여 촛불이 승리했고, 여기엔 팔백 오십만 해외동포, 사백 만이 넘는 미주 동포들의 단결된 힘이 있었음을 기억했으면 한다. 그 결과 선출된 대통령이 적절한 방식으로 대화를 시도하길 바란다”는 바램도 보탰다. 

한편 초청 받은 이들은 사뭇 조심스러웠다. 그렇지만, 초청 방식에 있어서 절차상의 문제는 개인 혹은 청와대가 급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는데 다수의 목소리가 실렸다. 인수위도 없이 급하게 시작된 정권에게 많은 것을 기대할 수 없다는 의견은 일면 현실적이다. 반면에 이상적인 차원에서 ‘공개 모집’ 방식을 도입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낸 참가자도 있었다. 

성숙한 시민의식에 어울리는 절차적 민주주의 도입 필요해

동포간담회 초청장을 발송하고, 이를 위해 신원을 확인하는 직접 주체는 미 대사관이다. 당연히 지역의 인사들을 자세히 파악할 수 없기에, 각 지역 영사관의 도움을 얻을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협력했던 동부 지역의 한 영사는 “대사관에 취합된 명단을 넘겼다. 하지만 누가 포함되었는지, 어떤 절차로 초청대상을 선정했는지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을 것”이라는 기본적인 입장을 밝혔다. 분명히 섬세하거나 혁신적인 모습은 아니다. CIA 문서도 공개되는 시대에,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다는 입장 말이다. 

절차를 잠시 뒤로 하고, 지난 겨울 수고한 민주 세력들이 초청 받아 식사 대접을 받고, 내 손으로 선출한 대통령을 환영하는 것은 마땅하다. 한정된 자리에 묵묵히 땀흘리던 지역 단체장에 대한 안배를 위해 수고한 영사들 또한 격려받아 마땅하다. 더욱이, 가장 앞장서서 정의를 위해 헌신했던 세사모(세월호를 잊지 않는 사람들), 희망세상 등 비교적 젊은 민주 단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조정한 기존 민주 단체들의 배려도 옳은 판단이다. 다만, 대통령도, 민주주의 경험도 이전과 다르다는 것에 대한 이해가 아쉽다. 그간의 관성적 조직의 어떤 우두머리 중심의 조직력이 아닌, 개인의 양심과 정보 이해에 따라 직접 참여 민주주의를 경험하며 부쩍 성숙한 의식으로 길거리에 나온 무명의 수많은 시민들, 그들 앞에 부끄럽지 않은 절차적 민주주의 도입은 중요한 과제다. 

노용환 기자 / <NEWS 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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