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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택시운전사>의 추격신, 과연 필요했을까?광주 비극은 진행형, 재미 끼어들 여지없어

벤 애플랙이 주연을 맡고 연출까지 한 2012년작 <아르고>는 1979년 이란 테헤란에서 벌어진 미 대사관 인질사건을 재구성한 영화다. 미 대사관에서 인질극이 벌어지기 직전, 여섯 명의 대사관 직원은 미리 대사관을 벗어나 캐나다 대사관저에 은신한다. 미 중앙정보부(CIA)의 토니 멘데즈 요원(밴 애플렉)은 이들을 탈출시키기 위한 아이디어를 낸다. 그 아이디어란 영화 제작자로 위장해 이란에 잠입하자는 것이었다. 미 정부는 반신반의하면서도 멘데즈의 제안을 수락한다. 멘데즈의 아이디어가 탁월했다기 보다 별다른 묘안이 없어서였다. 그러나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이들의 탈출과정은 극적이었다. 공항을 장악하고 있던 이란 혁명수비대는 멘데즈 일행을 미심쩍게 여겨 본국 사무실로 전화를 건다. 물론 본국 사무실 역시 위장이었고, 그래서 멘데즈 일행은 공항을 무사 통과한다. 혁명수비대는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에야 이들의 정체를 알아보고 병력을 출동시킨다. 멘데즈 일행은 위기의 순간을 모면하고 이란을 빠져 나간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영화다. 실제 멘데즈 일행이 공항에서 이런 일을 겪지 않았다. 멘데즈 요원과 여섯 명의 대사관 직원들은 은밀히 마련한 항공편을 통해 유유히 이란을 떠났다. 

인기리에 상영중인 송강호의 <택시운전사> ⓒ 쇼박스

<아르고>를 자세히 언급한 이유는 최근 인기리에 상영 중인 송강호 주연의 <택시운전사> 이야기를 하기 위함이다. <택시운전사> 말미엔 광주의 택시운전사 황태술(유해진) 일행이 힌츠페터와 김만섭의 탈출을 돕고자 정보요원들의 차량과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을 보며 영화 <아르고>를 떠올릴 수 밖엔 없었다. <아르고>에서 이란 혁명수비대가 멘데즈 요원 일행이 탄 비행기를 쫓는 장면이 허구이듯, <택시운전사>의 택시 추격전 장면 역시 허구다. 

이 장면을 보며 ‘과연 택시추격 장면이 필요했을까?’하는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이 영화는 독일인 기자 유르겐 힌츠페터를 태우고 광주로 간 택시운전사 김만섭(송강호)의 이야기를 그린다. 김만섭은 홀로 딸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개인택시운전사다. 그는 힌츠페터(토마스 크레취만)를 태우고 간 광주에서 계엄군이 광주시민들을 학살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그는 처음엔 상황을 감당할 수 없어 괴로워한다. 그러다 광주의 진실을 외면할 수 없어 핸들을 광주로 튼다. 김만섭으로 분한 송강호의 연기는 보는 이들의 눈물샘을 적신다. 또 영화가 그리는 1980년 5월의 광주는 다시 한 번 광주의 아픔을 일깨운다.

완성도만 놓고 보면 그다지 뛰어나지는 않다. 독일 제1공영방송 기자였던 유르겐 힌츠페터는 말 그대로 ‘목숨걸고’ 광주의 진실을 기록했다. 그가 아니었다면 신군부가 광주에서 자행한 만행은 덮여졌을 것이다. 박근혜 전 정권이 세월호 참사를 덮으려 했던 것처럼. 그러나 이 영화에서 힌츠페터는 매운 김치를 먹고 당황하는 외국인으로 그려진다. 또 5.18을 둘러싼 전후맥락은 전혀 언급이 없다. 경우에 따라선 답답하게 느껴질 만치 김만섭의 시선만 쫓아간다. 

스크린에서 부활한 1980년 5월 광주

영화 <택시운전사> 말미엔 힌츠페터를 탈출시키기 위해 광주 택시운전사들이 정보요원과 추격전을 벌이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장면은 불필요했다는 판단이다. ⓒ 쇼박스

그럼에도 이 영화 <택시운전사>의 가치를 평가절하 할 수는 없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어떤 광경이 펼쳐졌는지를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당시 전두환을 주축으로 한 신군부는 광주 시민들을 폭도로 매도했다. 그러나 광주 시민들은 주먹밥을 만들어 나눴고, 기름이 필요한 김만섭에게 ‘공짜로’ 기름을 넣어줬다. 그러면서 이들은 민주주의를 외쳤고, 자신들의 목소리가 외부로 알려지기를 갈망했다. 이명박-박근혜 집권 기간 동안 보수진영이 광주의 진실을 왜곡하고 날조했다는 점을 감안해 보면, 이 영화는 광주의 진실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영화를 연출한 장훈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여전히 광주민주화운동 자체를 왜곡해서 이야기하는 이들에게 이 영화가 작은 변화를 일으켰으면 좋겠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광주 택시들과 정보요원이 벌이는 자동차 추격신은 불필요했다고 본다. 이 장면을 끼워넣은 이유가 영화적 재미를 위해서였을까? 

앞서 언급한 <아르고>의 공항 추격신은 명백히 영화적 재미를 증폭시키기 위한 것이다. 어느 면에서 이 장면은 다분히 정치적이기도 하다. 이란 미 대사관 인질사건은 미국으로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치부다. 그렇기에 멘데즈 일행이 이란 혁명수비대를 따돌리는 장면은 한편으로 이란을 조롱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치부를 치유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물론 <택시운전사>의 차량 추격신도 해석하기에 따라선 정치적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영화적 장치만으로 관객들의 쾌감을 자아내기엔 광주의 아픔은 너무 크고 깊다. 게다가 광주는 여전히 더 많은 진상규명이 필요하다. 또 지난 9년간의 보수 정권 집권기간 동안 보수진영은 5.18광주민주항쟁을 지속적으로 폄훼했다. 이런 저간의 상황을 고려해 볼 때, 재미를 위한 장면 구성은 경솔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 현대사에서는 유독 정치적 이유로 무고한 생명이 희생당한 일이 많았다. 제주4.3이 그랬고, 5.18광주민주항쟁이 그랬다. 더욱 불행한 점은 일련의 사건을 진상규명하려는 노력이 정치적 이유로 지지부진하고, 심지어 왜곡마저 공공연히 이뤄진다는 사실이다. 특히 보수 정권은 제주4.3을 홀대했고 5.18을 날조했다. 

만약 광주의 진실이 제대로 규명됐다면 보다 차분한 마음으로 그 시절을 돌아볼 수 있고, 영화적 재미를 위해 다양한 상상이 가미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광주의 비극은 진행형이기에 재미를 위한 약간의 장치마저 불편해 보인다. 부디 이 영화 <택시운전사>가 지난 9년 동안의 왜곡을 바로잡고, 궤도를 이탈한 진상규명 노력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데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유석  luke.wycliff@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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