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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육질 기독교가 부활시킨 올림픽, 남북 평화의 계기로 승화되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광경. 사진출처: VOA 한국어

[NEWS M=신기성 기자] 신앙과 동시에 강건한 육체와 경건한 삶을 추구한다는 의미로 쓰이는 소위 남성적 기독교(muscular Christianity) 혹은 근육적 기독교에 대한 비판이 대두되고 있다. 미국 사람들이, 물론 대다수는 남성들이, 가장 큰 관심을 갖고 보는 경기가 미식축구 결승전인 수퍼볼이다. 지난 4일에 열린 수퍼볼에서 필라델피아 이글스가 전년도 챔피언 뉴잉글랜드 페이트리어트를 41-33으로 꺾고 첫 우승을 차지했다. 언론은 신앙으로 무장한 이글스가 우승을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경기 시작 전후로 이글스 선수들이 기도하는 모습이 수많은 언론에 보도 되었다.

몇 년 전 팀 티보 선수가 경기장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도 있다. NBA에서는 브루클린 네츠의 제레미 린이 유명한 기독교인이다. 그는 두 달에 한 번씩 기도제목을 알리고 자신을 위한 기도 팀을 만들어 도움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운동 경기 선수 중 개인적으로 자신의 신앙을 알리고 경기 전후나 혹은 중간에 기도를 하는 경우는 많이 있어왔지만 팀 구성원 전체의 신앙이 언론의 주요 관심사가 된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필라델피아 이글스 선수들이 수퍼볼 경기에서 승리한 후 기도하는 모습 . 사진출처: 유투브

 

개인이나 단체의 신앙 행위를 지적하거나 문제 삼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최고 스포츠 스타의 신앙이 강한 남성상과 어울려 남성적 기독교(muscular Christianity)의 편향된 가치관을 전파하는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표하고 싶은 것이다.

남성적 기독교의 출현

타임라인(Timeline)의 스테파니 벅(Stephanie Buck)에 따르면, 우리는 굉장히 많은 예수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만, 기독교가 백인 남성들의 종교였던 빅토리안 시절에는 아침에 자녀들을 안아주고 나가는 출근하는, 처벌보다 용서를 떠올리게 만드는 “여성스러운” 심지어 계집애 같은 예수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백인 남성들이었던 서구 학자들은 교회와 하나님의 아들의 이미지가 너무 여성화 되어 교인들을 약화시킨다고 판단했다. 문명화된 세계는 기술과 교육을 통해 위대한 발전을 이루었지만, 그 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지나치게 부드러워졌다고 평가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국의 지도자들은 새로운 캠페인을 시작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남성적인 기독교이다. 이 운동은 육체적인 훈련과 공격적인 신앙의 모습으로 등장했는데, 결과적으로 여성, 소수자, 비기독교인,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쉽게 배제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이 운동을 통해 생겨난 것이 YMCA라고 벅은 주장한다.

영국 성공회 신부이자 저자인 찰스 킹슬리(Charles Kingsley)는 뛰어난 운동선수였다. 그가 1857년에 쓴 『2년 전(Two Years Ago)』이라는 책을 썼고, 그 책에서 남성적 기독교에 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 책에서 묘사되는 영웅들은 모든 뼈와 근육들이 동물적인 강함을 갖고 있고, 몸은 놀라울 정도로 민첩하며,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뿐만 아니라, 멋진 육체를 소유한 남자들이다. 심지어 육체적 건강이 거룩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남성적 기독교의 본격적인 등장인 것이다.

미국의 남성적 기독교

미국에서의 남성적 기독교는 자녀들 교육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여성들에 의해 길러진 아이들은 원죄 때문에 지옥에 갈 위험이 있는 죄인들이 아닌, 정서적으로 도와주고 지도해야 할 결백한 존재들로 여겨진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단호한 심판자가 아니라 겸손하고 유약한 존재가 되었으며, 당대의 문학과 예술 작품에 여성적인 이미지를 가진 희생당한 어린 양으로 묘사되는 것에 대해 불만을 가졌다. 남성적 기독교는 이 유약한 그리스도 상을 운동선수처럼 강인한 모습으로 바꾸기를 원했다.

뉴저지 세빛교회 손태환 목사는 2015년에 청어람에 기고한 “상남자 예수?-남성적 기독교의 역사”라는 글에서 19세기 후반에 이르면서 이런 여성화된 사회적 분위기에 불만을 품은 흐름이 백인 남성들 사이에서 시작되었다고 언급했다. “그들은 그 현상을 국가적 위기를 넘어 인종적 위기로까지 보았습니다. 결국 과거의 자기 절제, 금욕, 품위를 강조하는 교육방식을 지양하고 열정적이고 활동적이며 야성적인 품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교육계 전반에서 높아집니다. 복싱이나 미식축구 등의 거친 스포츠가 단순히 운동으로서가 아니라 교육학 측면에서 장려된 것도 이 때부터입니다.”라고 썼다.

이런 분위기에서 등장한 것이 강한 남성상을 보여주는 예수의 이미지이다. “호전적이고 심지어 전투적인 예수 이미지를 선호하는 이들이 늘어났다”고 손목사는 기록했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워너 샐먼(Warner Sallman)이 그린 <그리스도의 얼굴(Head of Christ)>이다. 그는 이 그림을 그릴 때, 무디성경학교의 한 교수로부터 “예수를 진짜 남자로 만들라”는 충고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이상적인 기독교인은 근육질의 백인 남성상이 되었다. 여성, 유색인종들은 기독교인의 이미지에서 제외된 것이다. 남성적 기독교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를 하나 되는 기독교의 모습이라고 칭한다. 이렇게 강한 기독교인의 이미지는 식민지 정복과 압제와 문화 말살을 정당화하게 된다.

 

올림픽과 근육질 기독교의 만남

고대 올림픽은 기독교에 의해 금지되기 전에 거의 천년을 이어왔다. 이 올림픽을 금지한 것이 기독교이다. 주후 390년에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는 올림픽이 이방의 경기라는 이유로 금지시켰다. 크리스차니티 투데이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때 중지된 올림픽을 다시 부활시킨 것도 바로 이 남성적 기독교라는 내용의 칼럼을 게재했다.

영국 세인트 존 대학교(St John University)에서 운동과 사회정의를 가르치는 니콜라스 왓슨(Nicholas Watson) 교수는, 올림픽이 고대 올림픽 철학과 남성적 기독교가 결합한 형태로 영국에서 부활했다고 주장했다. 육체적으로 강하고 도덕적으로 청렴한 지도자들을 양성하는 정신을 기본으로 하는 도덕적 기독교가 올림픽의 부활을 떠받쳤다는 주장이다. 정신과 육체가 건강한 도덕적인 종교를 표방하는 남성적 기독교가 실제로 보여주는 모습은 회의적이다. 사랑, 희생, 용서의 개념이 쟁취를 위한 경쟁과 도전의 장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 내외 뒤로 북한의 김여정과 김영남이 보이고 오른쪽 아래가 미국 팬스 부통령이다. 사진출처: 국방일보

화해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이렇듯 강한 남성상을 추구하는 기독교 제국주의의 산물로 부활된 올림픽은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게 되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지속된 남북한 긴장 완화와 평화 정책은 이번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엄청난 시험대에 올랐기 때문이다. 미국 주류 언론에서 전하는 올림픽 후의 전쟁에 관한 암시나 코피 전략(Bloody Nose Plan)등의 용어들이 보도되는 건 물론이고 동계올림픽이 끝난 후 북한을 선제공격한다는 소문이 무성한 가운데 맞이했다.

이른바 백두 혈통으로는 처음 남한 방문이라는 북한 김여정의 방문과 언론을 통해 전해진 김정은의 문재인 대통령 방북 초청 제안은 임박한 전쟁 위기를 조금이나마 누그러뜨리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뉴욕 타임스 등 미 주류 언론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핵무기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남북한이 화해 무드로 가는 것을 원치 않으며, 미국의 강한 압박 전략에 차질이 생길 것을 우려한다고 전했다. 남북한의 화해 무드를 백악관이 못마땅하게 여길 것이라는 의미이다. 또한 남북 정상회담이 가능하려면 북한의 분명한 조치가 선제해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기 때문에 아직 섣부른 판단이나 기대는 시기상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적 해결을 위해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중대한 첫걸음을 내디딘 것만은 분명하다.

올림픽 사전 행사에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보여준 노골적인 북한 대표부의 회피는 외교적 결례를 무릅쓴 적대감의 표출이었고 북미간 긴장관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미국은 전 세계를 상대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전략을 취한 듯하다. 펜스 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공히 리셉션 장소에 늦게 온 이유가 둘 사이의 회담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한의 화해 무드는 일본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분명히 전달한 셈이다. 심지어 아베 총리는 문대통령에게 한미연합 훈련에 관해 언급을 하며 내정 간섭이라는 비난을 초래하기도 했다.

세계열강의 이권 다툼 때문에 한반도의 위기가 날로 더해진 다는 사실은 새로운 것도 아니다. 분명한 것은 한반도 평화를 위한 과정은 남북한이 주도적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번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보여준 아름답고 세련된 장면들은 이를 지켜본 전 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해외 언론들은 찬사를 보냈고 국민들은 큰 자부심을 느꼈다. 촛불 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되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남북이 함께 입장하고, 성화를 봉송하며, 경기를 치루는 장면에서는 국민 모두가 가슴 뭉클한 기쁨을 맛보았을 것이다. 김연아 선수의 마지막 피날레는 화룡점정이었다. 아름다웠던 개막식가 함께 시작된 동계올림픽이 한반도 평화로 가는 중대한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신기성  shin@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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