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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냐 그리스도냐
지난 가을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태극기 부대가 박근혜 전 대통령 석방을 촉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는 장면 ⓒ시사인 신선영

[미주뉴스앤조이=신기성 기자] 예수는 공직에 오른 적이 없다. 예수는 특정 후보를 지지한 적도 없다. 투표를 한 적도 없다. 무엇보다 예수는 국기, 국가, 혹은 어떤 지도자에게도 충성을 맹세한 적도 없다. 그의 삶과 사역에서 당시의 정치 체제와 어떻게든 결부된 적이 결코 없다.

기독교의 본질

그에게는 하나님 나라가 우선이었고, 그 나라는 세상 국가나 권력 제도와는 대조되는 것이었다. 예수는 복음이 가르치는 삶을 사셨다. 가난한 사람을 돕고, 억압받는 자들을 위로하고, 짓밟힌 이들에게 힘을 주며, 이방인을 환영하고, 비난 받던 사람들을 돌아보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희망, 자비, 은혜, 치유, 용서, 희생적 사랑을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그의 삶을 따르는 것이다. 바로 예수께서 기독교의 본질이다.

기독교는 정치나 국가 지배 이데올로기가 아니고, 어떤 사회가 선호하는 도덕성을 강제하거나 가치를 합법화하는 수단도 아니다. 기독교는 그리스도가 중심이다.

물론, 개인은 정치에 개입하고, 공직에 나서고, 투표도 할 수 있다. 문제는 기독교인들이 둘 사이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순간이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국가의 지배 이데올로기가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다를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저항이 곧 순종

그리스도는 체포되셨고, 재판에 넘겨지셨으며, 정죄 당하셨다. 우리의 대답은 체포당하시고, 재판에 넘겨지시고, 당시 지배세력으로부터 처참한 죽음의 정죄를 당하신 그리스도를 닮아야 한다.

예수는 쉬운 길을 택하실 수도 있었고, 지배자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답을 주실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당시의 지배 구조와 체계에 대한 그의 저항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었다.

사탄에 의한 궁극적인 악행이 지배자들이 주장하는 정의 관념과, 이에 따른 법적 절차라는 허울 아래 감춰져 있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로마의 기준으로 보면 예수는 공정한 재판을 받았고, 그에게 유죄가 선고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규칙, 제도, 법, 그리고 집행 등에 있어서 현실적인 명확성을 선호한다.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정치적 견해나 정파에 관한한 어느 한쪽을 선호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예수의 제자들도 같은 두려움을 가졌었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자 세상의 구원자이신 예수님이 가장 큰 어려움을 겪으실 때 그를 버렸고, 심지어 가장 가까운 제자 중 하나는 그를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었다.

이것이 세속 정부나 사회가 의도한 일이다. 분열, 분노, 증오, 두려움, 그리고 권력을 통한 통제를 공고히 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초대교회, 즉 기독교 신앙의 첫 세대는, 예수의 희생을 마음에 담았고, 겁쟁이가 되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예수를 따랐고 정치적 박해, 공공연한 멸시, 고난, 심지의 당시의 법에 의해 처벌을 받으면서도 복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예수처럼, 그들은 지배 권력에 의해 억압받고 “당당하게” 죽임을 당했다.

기독교인에 대한 평가

예수의 복음, 좋은 소식이, 세상에 전파되는 방식은, 세상 권력자들에게 맞서고, 복음을 그 어느 것과도 타협함이 없이 전하는 것이었다.

로마 제국이나 시저 황제에게 무릎 끓지 않았던 수많은 기독교인들 덕분에 신앙이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들은 정치적 우상 숭배의 위험을 이해했지만, 오늘날 현대 기독교인들은 그렇지 못한 면이 있다. 우리는 세상 어떤 것보다 그리스도를 택했던 그들의 용기 있는 선택을 재발견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역사가 기독교인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것이고 더 중요하게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실까 하는 것이다.

국가 안보, 외교 정책, 재정적 안정, 경제적 영향, 군사적 능력, 그리고 정치적인 논쟁 등에 관한 우리의 염려가, 난민들, 이민자들, 고아와 과부들, 억눌린 자들, 세상의 약자들을 돌보지 못하도록 하는 상황을 하나님이 이해해 주실까? 우리가 선호하는 정치가, 정치 세력, 국가의 이익 등, 실제로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방해되는 것들을 포기해야 할 경우에도, 우리는 예수를 따를 수 있을까?

하나님은 미국, 한국, 그리고 어느 정치 정당도 맹목적으로 추종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예수를 따르기 원하신다. 게다가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을 그들의 민족성, 문화, 국적, 정치관, 세계관 혹은 사회 경제적 배경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이들로 여기신다.

따라서 난민, 이민자, 서류 미비자, 무슬림 등, 사람들을 분류하고 평가하기 위해 사용하는 개념들로 규정하는 대신에,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사랑받는 동료로 보기를 원하신다. 하지만 많은 기독교인들은 복음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그들이 선택한 정당, 그들의 국가와 법에 대한 충성심을 포기하지 않는다.

여전한 맹종

어느 순간에는 기독교인들이 불가피하게 그들이 선호하는 정치 정당이나 이데올로기와 예수 사이에 선택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코 복음이나 혹은 하나님의 이미지로 창조된 어떤 사람을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이 기독교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가 사랑 받고 싶은 방식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이제 내일 아침이면 박근혜 전대통령에 대한 선고 공판이 이루어진다. 벌써 며칠 전부터 무죄 석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시위 준비를 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부정, 비리, 부패, 무능력으로 얼룩진 전 정권을 지지하는 가장 큰 세력 중 하나는 보수 기독교계이다. 그들은 이번에도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나올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정치 신념, 개인의 유익, 국가주의, 정치적 선호 등을 예수의 가르침과 혼동하거나, 복음을 이런 세속적 욕망을 포장하는 수단으로 악용한다. 기독교인들에게는 그 어느 것도 복음의 본질인 예수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그의 가르침보다 우선되어서는 안 된다. 태극기 부대는 이를 모르는 걸까, 알고 싶지 않은 걸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요.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막 12:30-31)

본 칼럼은 지난 2월 6일 Sojourners에 게재된 "Christ, not America, First"의 번역을 기초로 작성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 - 편집자 주-

신기성  shin@newsnjoy.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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