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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북한을 믿지 못하는데, 북한이 어찌 미국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싱가포르 정상회담 후 두 정상 <연합뉴스>

미국이 북한을 믿지 못하는데, 북한이 어찌 미국을 믿을 수 있을 것인가?

우리는 북한과 김정은 세습 체제는 믿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상종 못할 도당으로 생각해 왔다. 더구나 오랜 세월 이북 공산당은 빨간색이며 빨간색은 무조건 미워하고 적대시해야 한다고 배워 온 우리로서는 역지사지하기가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역지사지할 필요조차 없었던 셈이다. 물론 철의 장막을 치고 세습 독재가 오래 지속되면서, 그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인간의 기본권이나마 보장되는 건지 갖가지 의구심을 자아내는 일들이 벌어져 왔음을 부인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그 반대를 생각해 보면, 북한이 남한을 신뢰하는 것 역시 힘든 일로 보인다. 더구나 기득권자 자신들이 그다지 정당하지도 떳떳하지도 않은 권력을 장악해 왔음을 알고 있는 세습체제의 장본인들과 그 하수인들은 그만큼 더 의심과 경계심이 많을 수밖에 없어서 신뢰의 걸음을 떼기가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 아마도 북한이 미국을 신뢰한다는 것 역시 결코 수월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비록 한국전쟁을 일으켜서 민족 앞에 씻을 수 없는 상흔을 남긴 원인제공자이지만, 미군의 잔인한 폭격은 북한 인민들에게 떨쳐버릴 수 없는 공포와 적개심을 각인시킨 것도 사실이며, 그동안 핵무기 개발을 억제하기 위한 몇 차례 협상과 선언들이 있어 왔지만, 미국의 소극적이고 적대적인 태도가 결국 북한으로 하여금 핵개발을 강행하는 쪽으로 선회하게 된 측면도 없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뢰 관계가 깨어진 채로 세월이 오래 지나게 되면, 이처럼 닭이 먼저냐 알이 먼저냐 논쟁해 보아야 아무 소득 없는 소모전만 반복하면서 오히려 둘 사이의 골만 더 패이게 되기 십상이다. 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신뢰만큼은 깨지 말아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번 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란 차라리 무에서 새로 시작하는 관계보다 더 어렵다고들 하지 않던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세기적인 만남을 통해 나온 "싱가포르 선언"이 있은지 한 달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세기적인 이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과연 그 합의가 그대로 지켜질 것인가 하는 회의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 아닐까? 더구나 신뢰의 회복은 결코 한 두 차례의 이벤트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카리스마 리더십의 표상인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세기적인] 악수 한 번에 모든 것을 다 맡길 수는 없다는 [미]국내 여론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정당성을 지닌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신뢰란 것이 본래 그런 게 아닐까? 한 번 깨어진 신뢰를 회복하려면 어차피 누군가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것이며, 이때 혹 거간꾼이 나서준다면 서로 간의 뻘쭘함을 대거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과거의 불미스러웠던 일들을 서로 내어 놓고, 사과할 것은 하고 사과받을 것은 받고 다시 원점에서 시작하기로 마음을 모은다면 못할 것도 없다. 세상만사가 다 사람이 하는 일인데, 국가와 국가 간의 일 역시 대표자들이 이처럼 나서서 새로운 출발을 선언한 것은 관계 회복의 첫 걸음을 뗀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과거를 덮기로 한다면, 과거의 불신을 또 다시 들먹여서는 안 되는 법이다. 과거를 한번 제대로 털었다 해도, 또 일방적인 강요나 굴종을 요구한다면 신뢰는 쌓이지 않을 터인 바, 과거를 제대로 짚고 정서적인 교감조차 불충분한 상태로는 불신과 의심의 촉은 계속 곤두서서 매사에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게 마련이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북미 간에 어떤 정도로 과거의 불신과 적개의 요소들을 제거했는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너무 오래 묵은데다가 이제는 세대가 바뀌어서 세세한 기억조차 없다면 굳이 조조이 따지기보다는 뭉뚱그려서 불신과 적개의 요소들을 일단 창고에 넣고 자물쇠를 굳게 채워야 한다. 

그럼에도 작금의 진전 상황을 보면, 이전의 불신과 적개의 상흔들을 또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더구나 김정은은 어떨지 몰라도, 트럼프는 전체 미국민의 지지를 받지도 대변하지도 못하는 어정정한 처지에 놓여 있기 때문에 김정은 위원장을 직접 만나고 온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충분히 신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미국민 전체가 하루아침에 모든 불신을 걷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더더욱 중요한 것은 약속한 것은 피차 한 단계 한 단계 확실하게 지켜 나가야만 다시 신뢰의 벽돌을 쌓아 올릴 수 있다. 한꺼번에 전부를 요구하거나, 불신을 도리어 자극하는 일방적인 조건을 내걸게 되면 신뢰의 배는 진전은커녕 다시 산으로 가기 십상이다. 

우리 남한이 중개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지만, 사실 우리도 그동안 북한보다는 미국 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온데다가, 남북한 간의 과거청산 역시 아직은 좀 더 시간이 걸려야 하는 상태인지라 도보다리에서 나눈 짧은 대화로는 그 간의 긴 세월을 털어버리기에는 아쉬움이 여전히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남한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한 것은 일면 북미 간의 깨어진 관계 구도상 당연한 일로 보인다. 당사자 간의 신뢰가 불투명할수록 중개자의 신뢰 관계가 더욱 중요한 변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미국 편을 들기 위해 북한을 신뢰하지 않으려 하거나, 반대로 북한 편을 들기 위해 미국을 신뢰하지 않으려는 기미라도 보인다면 중개자로서의 역할은 더 이상 기대하기 힘들어지고 말 것이다. 

따라서 양쪽 사이에서 줄타기[ 외교]를 해야 하는 문재인 정부로서는 그 어느 정권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긴장하고 고민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하겠다. 그렇다고 신뢰란 마냥 천천히 간다고 해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세월의 길이만큼 신뢰의 회복은 그만큼 더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의 국내에서의 궁색한 처지나 충동적인 성격이 첫 만남을 성사시키는 데는 오히려 시간표를 앞당기는 불쏘시개로 작용한 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아니 거기까지여야 한다. 이벤트는 한 번 하는 것이지 반복되면 효과가 반감되게 마련이다. 

이제는 정말 한 계단 한 계단 사이좋게 묵찌빠를 하면서 올라가야 한다. 풍계리 핵 시험장을 폐기하는 선조처가 싱가포르회담을 끌어내는 밑거름이 되었듯이, 서로 밀고 당기고 하는 신뢰의 긴장을 늦추지 말고, 그렇다고 너무 세게 당기지도 말고 약속한 바를 서로 신실하게 이행해 나가는 진정성을 담아야 한다. 일방적인/'강도적인'(burglar-like) 요구는 상대방의 신뢰를 얻기보다 불신의 나락으로 상대방을 [다시] 내모는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다. 다만 미북 양자가 모두 신뢰의 기초석을 절단내버리겠다는 것은 결코 아님을 재삼재사 언론에 흘리고 있는 것을 보면 '세기적인 만남'의 동력을 무위로 돌리지는 않겠다는 기대와 의지는 다행히 여전한 것으로 보인다. 

중개자/중매자의 역할은 사실 여기까지다. 당사자끼리 만나서 서로의 속내를 알아가면서 의지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해야만 두 사람의 우정/애정은 비로소 자라가게 되어 있다. 중간에서 섣불리 말을 잘못 옮겼다가는 도리어 중개자가 양자 사이에서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실은 우리 남한은 중개자로서 그리 적절한 위치에 있다고 할 수는 없다. 우리도 북한과 묵은 앙금들을 털어내고 신뢰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마당에 사실 누굴 화해시키겠다는 것인가? 작금의 모양새는 일면 남북 간의 신뢰도 충분히 회복되지 않은 시점에 미북 관계를 위한 중개자를 자처한 형국이 아닌가?

이렇게 보면 다분히 성급하게 보이는 것이 사실이나, 문제는 핵무기의 위험천만성을 생각하면 사실 한 시가 급한 것이 사실이다. 남북의 오랜 대치 기간을 인고해온 우리가 안보/전쟁 불감증에 걸린 것은 일면 당연하겠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실 끔찍한 일이다. 좁은 한반도 군데군데에 핵발전소를 두고 있고, 북한은 비좁은 땅의 지반을 위태롭게 해 가면서 핵실험을 하는데도 우리는 그저 그러려니 하며 아무 문제없다는 듯이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아마도 우리가 제 정신이 아닌지도 모른다. 북한의 핵미사일이 미국 서부는 물론 워싱턴까지도 겨냥할 수 있음을 알게 된 미국이 이제야 비로소 위협을 느끼게 되면서 드디어 협상테이블로 나온 것과 비교해 보면 우리가 그 동안 얼마나 생각 없이 지내왔는지 알 수 있지 않은가?!

게다가 핵의 위험성을 차치하고서 한 걸음 더 들어가 보면, 북미 관계 개선은 사실 우리에게도 시급한 선결 과제라 하겠다. 북한이 우리 동포이기에 그들이 잘못되면 우리도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동족 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심리적 일체감을 아마도 제 3자는 결코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게다가 남북의 분단이란 벽은 실제로 남한 사회의 민주화의 지연과 그에 따른 엄청난 분단비용과 고통을 초래해 오지 않았던가?! 분단의 벽을 허물지 않는 이상 남한 사회는 문자 그대로 반쪽일 수밖에 없다. 그 동안의 군사 쿠데타와 그에 따른 군사 독재, 독재 권력과 재벌의 정경유착, 기회주의로 대체되고 만 민족정기 등등의 혼돈 상황은 사실 모두 분단과 그에 따른 안보를 빌미로 명분을 얻고 기생해 올 수 있었던 것들이 아니던가?!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분단구도를 고착화시킨 요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한미 동맹이란 것이다. 북한의 위협을 차단하고 보호막을 쳐 준다는 각도에서 보면 미국은 남한의 우방이자 동맹이 맞지만, 반대로 북한과 종전선언을 하고 신뢰관계를 회복하고 동포애를 다시 잇고자 하는 각도에서 보면 여전히 북한을 적대시하여 위협하고 경계하고 있는 미국은 도리어 남북 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한미 연합 군사 훈련이란 이런 이중적이고 역설적인 구도를 고착시킨 장본인인 셈이다. 연합 훈련을 하면 할수록 남한의 안전이 보장되는 듯하지만 동시에 남북의 평화와 통일은 그만큼 지체되어 왔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판문점 정상회담과 도보다리의 허심탄회한 듯 보인 두 정상 간의 대화에서 무슨 얘기가 오고 갔는지는 알 길이 없지만, 김정은 위원장이 그저 미국의 위협을 차단하기 위해 힘들게 핵과 미사일을 개발하였던 것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해 보게 되는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이다. 남북의 평화 관계 회복이 궁극적인 목표인데, 그 과정에서 한미 동맹을 축소하고 미북의 외교관계를 수립하여 분단의 아픔과 고통을 줄이는 것이 궁극적으로 북한과 남한을 함께 번영시켜 나가는 길이라는 데에 일정 정도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유추해 보게 된다. 인민들의 고혈을 통해 개발한 핵을 포기하는 것이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까지 오기 전에 종전선언도 하고 평화협정도 끌어내고 했으면 좋았겠지만, 남북 간의 속빈 명분싸움과 그 틈바구니에서 이득을 챙기던 독재 세력들이 국가와 민족 전체의 명운에는 뒷전인 채 그야말로 관심이 없어도 너무 없었던 연고로 어언 70년 세월이 훌쩍 흘러가고 말았으니, 이제 와서 누구를 탓한들 잃어버린 세월을 돌이킬 수는 없으며, 무고하게 희생당한 이들과 이산가족의 쓰라린 세월을 되돌려 줄 수도 없다. 물론 책임질 자리에 있었던 이들은 어떤 모양이든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상황만을 의지할 수도 없고 의지해서도 안 되겠지만, 여건이 조성되고 기회가 왔을 때마저도 그 모멘텀을 이용하지 못한다면, 또 다시 제2 제 3의 70년 세월을 흘려보내게 될 것이다. 북한의 경제적인 난국, 미국의 북핵 위협, 문재인 정부의 역사의식과 진정성이란 3박자가 상승작용을 일으킬 수만 있다면, 체제와 안보의 위협 그리고 적대적인 긴장 해소를 넘어서 평화와 통일로 가는 길목에서 해묵은 큰 걸림돌들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미국이 우리의 진정한 우방이라면,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을 진정으로 원한다면, 일제의 식민지와 남북 분단과 전쟁의 참상을 치유할 수 있는 통일의 길목에 더 이상 남의 일 보듯이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거나 나아가서 의도적이진 않더라도 결과적으로 어쭙잖은 걸림돌로 작용하는 일은 삼갈 수 있길 삼가 기대해 본다. 북한을 어떻게 믿을 수 있을 것인지를 물론 생각해야겠지만, 북한이 미국을 신뢰할 수 있도록 통 큰 양보나 솔선하는 액션을 취함으로써 북한의 믿음을 이끌어 내고 고양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상징적인 의미가 더 크겠지만, 북한이 "원수국"의 유해들까지도 기꺼이 송환하겠다고 하는 마당에, 미국은 그야말로 크게 돈 드는 일도 아닐 텐데도 "종전 선언 카드" 가지고 재고 있으니 말이다. 힘 센 쪽이 통도 더 커야 하는 법이어늘, 적어도 북미 관계만 놓고 본다면, 현재로선 미국인들이 당신들의 대통령만 못한 것이 사실 아닐까?!

권영석  youngseokwon@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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