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막고 귀 막은 목사 되지 않으려면'
'눈 막고 귀 막은 목사 되지 않으려면'
  • 이승규
  • 승인 2008.06.14 1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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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미국에서 신학 공부하는 의미 잘 되새겨야

▲ 맨해튼에서 열린 촛불 집회에 참여한 드류대학 신학생들. 이들은 개인적으로 왔다. 한인학생들의 목소리가 통일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6월 7일 뉴욕 맨해튼에서 촛불 집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는 약 150명이 참여했는데, 이중 뉴저지에 있는 드류대학교(Drew University)에 다니는 신학생과 가족 16명이 참여했다. 유니온신학교에 다니는 사람도 몇 명 있었다. 다른 신학교 학생들이 왔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었다.

드류대학교를 다니는 한국인은 약 70명이라고 한다. 가족까지 합하면 대략 200명 정도로 추산할 수 있다. 이중 16명이 집회에 왔으니 10% 약간 못 미치는 비율로 참여한 셈이다. 한국 유학생들이 많은 미국 신학교 중에 상대적으로 덜 보수적인 학풍으로 알려져 있는 신학교치고는 참여 인원이 적은 편이다. 참가자들도 이 점을 아쉬워했다.

드류대학교 한인학생회는 한인 학생들을 상대로 이메일 설문조사를 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관련해 학생회에서 입장 표명을 해야 하나', '뉴욕이나 뉴저지에서 촛불 집회가 있으면 참여하겠나' 등의 질문을 던졌다. 이틀 동안 실시한 설문조사에 답을 보내온 사람은 13명. 나머지 60명 정도는 답하지 않았다. 답장을 보낸 13명은 촛불 집회가 있다면 당연히 참여를 할 것이고, 학생회에서도 적극 나서달라고 주문했다.

뉴욕과 뉴저지에 많은 신학교가 있고,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온 유학생도 많다. 한국 학생 없으면 상당수 미국 신학교가 문을 닫아야 할 형편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그 많은 신학생 중에 극소수가 촛불 집회에 참여했다. 마음은 있지만, 주말이기 때문에 주일 준비를 해야 할 수도 있고, 담임목사 눈치를 보느라 못 올 수도 있고, 개인적인 사정이 있어서 못 올 수도 있다. 따라서 이날 집회에 참여했다 안 했다만 가지고 이러쿵저러쿵 뭐라 판단할 일은 아니다.

촛불 집회 참석 여부로 판단할 일은 아니지만

그러나 이번 기회에 신학 공부를 한다는 것, 특히 미국에서 신학 공부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신학을 공부하러 유학 온 학생이 많이 모이는 인터넷 사이트가 있다. 최근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미국산 수입소와 촛불 집회에 대한 다양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그런데 그중에는 도저히 정상적인 과정을 밟아서 공부를 하고 있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수준의 글도 가끔 보게 된다. 시골의 무학(無學) 촌로(村老)처럼 "기도하면 다 돼" 하는 식의 글도 가끔 만난다. "복잡한 거 싫어. 편하게 살고 싶어" 하는 글도 있다. 반대로 학자들 이름과 이론을 마구 끌어들여서 나름의 논리를 펴서 '음모론' 같은 걸 제기하기도 한다. 심지어는 "광우병 걸려 죽을 확률보다 간접흡연으로 죽을 확률이 더 많다"는 낯익은 '확률론'도 나온다. 한국의 중학생이 재미 삼아 인터넷에 댓글로 올린 괴담들이 아니다.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온 거다. 그것도 나름 진지하게.   

좋은 신학교가 좋은 목사를 만들어주지 않는다. 한동안 조용하게 지내다가 촛불 반대 1인 시위로 기지개를 켜고 있는 서경석 목사를 보면 안다. 그는 대운하 건설도 지지하고 있다. 그는 한국의 서울대와 장신대, 미국의 프린스턴신학교와 유니온신학교를 나왔다. 그런데 저러고 있다. 지금 사태가 마치 거짓말과 괴담 때문에 일어난 것처럼 얘기하고 있는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나 온누리교회 한홍 목사, 모두 미국에서 공부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큰 교회를 세습한 아들 목사들은 또 어떤가. 거의 다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이들의 내면의 공통점은 제국의 주구(走狗)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 서경석 목사가 하는 1인 시위 반대편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김종환 목사. 섬김의 대상이 누구인지도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바른 목소리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경석 목사 맞은편에서 "서경석 목사님, 목사로서 당신이 부끄럽습니다", "양해해주세요. 목사가 다 이렇지는 않습니다"라는 피켓을 들었던 '이름 없는 또 다른 목사'가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누구처럼 미국에서 공부하지 않았다. 만약 이들이 미국에서 공부했다면 서 목사나 오 목사처럼 됐을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 굴속에서 살아남아 호랑이를 잡으려면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호랑이에게 잡혀먹는다.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호랑이 굴에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우상을 수호하고 확산하는 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우상숭배의 논리를 재생산해주는 수단으로서 신학을 공부하게 된다. 그리고 미국에 남든지 한국으로 돌아가든지, 제국의 주구 노릇을 하게 된다. 친일을 하며 내 나라 백성을 괴롭혔던 많은 이들이 일본의 명문대를 나왔던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정신을 바짝 차리려면 도서관에만 처박혀 있으면 안 된다. 지식만 쌓아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자칫 외눈박이가 될 수 있다. 진정 누구를 섬기려고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려 한다면, 섬김의 대상과 늘 함께 있어야 한다. 섬김의 대상이 누구인지도 중요하다. 곽선희 목사처럼 압구정동의 부자들을 위해 목회하기로 처음부터 마음을 정했다면, 부자와 권력자들 입맛에 맞게 설교를 한다. 곽 목사는 이들과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 수입 스포츠카를 몰고 다녔다. 서경석 목사나 오정현 목사가 섬기는 대상도 예수가 말한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저러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섬김의 대상은 고아나 과부가 아닌, 권력자들과 기득권 세력인 것이다.

제국의 주구 노릇을 하지 않으려면

미국에 신학을 공부하러 온 신학생들이 지금은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할 때인 것은 사실이지만, 내가 열심히 공부한 신학을 가지고 '장차' 섬기려고 하는 사람들과 '지금' 함께 있지 않는다면, 변질은 순식간이다. 한때 민중을 위하는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느라 감옥 가고 고문당했던 사람들도 쉽게 변질되는 마당에, 책상머리에 앉아서, 그것도 호랑이 굴속에서, 섬김을 머리로만 생각해봤자 변질과 변절은 손바닥 뒤집기다.

제국의 주구 노릇을 하는 선배 목사들처럼 되기 싫다면, 지금 현장에 나와 장차 섬기려고 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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