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화운동'과 '백투예루살렘'이란 망상
'성시화운동'과 '백투예루살렘'이란 망상
  • 송강호
  • 승인 2010.08.23 19:51
  • 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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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를 맴도는 그릇된 환상들

민족 복음화

나도 한때 민족 복음화를 꿈꾸는 젊은이였다. 성경이 가정의 준칙이 되고, 대한민국의 헌법이 되기를 희망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이 미국 대통령처럼 성경에 손을 얹고 취임 선서를 하는 나라가 되는 날이 오기를 바라며 나의 젊은 날들을 불사르던 시절이 있었다. 온 나라의 모든 국민이 예수를 믿는 나라, 술집도, 창녀도, 러브호텔도 없는 나라, 그리고 절도 없고 우상도 없는 나라, 거리마다 찬송이 울려 퍼지고 사랑과 평화, 하나님의 정의가 흘러넘치는 나라. 상상만 해도 가슴 벅찬 꿈이었다. 한때 유행했던 성시화 운동은 이런 민족 복음화를 향한 발걸음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이 환상은 이루어질 수 없는 망상(illusion)이다. 성시화 운동은 CCC의 창시자인 김준곤 목사를 통해서 구상되어 2000년이 오기 전에 민족을 복음화하자는 구호(캐치프레이즈)로 이미 30년 전에 춘천을 기점으로 출발한 운동이었으나 지금까지 어느 한 도시도 성시화한 곳은 없다. 그렇지만 시제품도 없는 상품을 대량 생산하듯 성시화 운동은 여러 도시로 확산되고 있고 이 운동을 이끄는 인사들도 우리나라 교계의 대표적인 지도자들을 망라하고 있다. 성시화는 이루어질 수도 없고 이루어져서도 안 된다.

   
 
  ▲ 시제품도 없는 상품을 대량 생산하듯 성시화 운동은 여러 도시로 확산되고 있다. 성시화운동본부 해외 현황.(출처 : 성시화운동본부 홈페이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 받기를 원하는 마음이야 거룩한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생각하지만, 모든 이 땅의 모든 사람이 모두 그리스도인이 될 수는 없으며 또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문으로 들어갈 수도 없다. 또 이들이 예수의 제자가 되어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갈 수도 없다. 비현실적인 환상이다. 술과 몸을 팔아 남의 가정을 파탄케 하고 자기 몸까지 병들게 하는 것을 고치는 일을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건강한 생각만 한다면 불신자도 이에 동의할 것이고 불교인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보다 이 일에 더 열심을 낼 수도 있는 사람들이다.

흔히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는 사람들을 사회악인 것처럼 매도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외견상 존경받을 법한 사람들의 이기심과 불의와의 결탁이 더 큰 문제다.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을 때 공수부대의 무자비한 진압에 놀라 도망치던 학생들이 금남로에서 가까운 광주 중앙교회 안으로 도피하려고 문을 넘어서려는 순간 교인들이 그들을 가로막고 문을 걸어 잠가 그 문 앞에서 많은 학생들이 군인들에게 붙잡혀 끌려갔다.

여기서 도망친 학생들은 황금동에 늘어선 술집들과 창녀촌으로 들이닥쳤는데 그때 몸을 파는 여인들이 쫓기는 학생들을 숨기고 보호해 주었다. 이런 착한 여인들이 꿈에도 그리는 자기 고향, 자신의 가족들의 품으로 그들을 돌려보내는 데는 성시화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비그리스도인들과 함께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럴 때야 비로소 더 완전하게 하나님의 평화가 성취될 수 있다. 비그리스도인들과의 협력은 그리스도인들이 쉽게 빠질 수 있는 그릇된 선입견 즉, '그리스도인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더 윤리적일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 준다. 성시화는 잘못된 도덕적 우월감에서 시작된 것이다.

처음으로 이슬람 도시 사라예보를 방문했을 때 역 앞에 늘어섰을 법한 창녀촌도 없고 술집도 없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이들 이슬람교도들이 소위 기독교 국가라고 자부하는 암스테르담이나 함부르크 같은 부패한 도시들을 보며 어떤 충격을 받을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었다. 실제로 세계에서 가장 술집이 많고 창기가 많은 나라는 기독교 국가다. 하나님이 혐오하는 사람들은 창기가 아니라 부패한 성직자다. 이기적이고 위선적인 성직자들로 가득한 기독교 국가가 내 눈에 보이는 민족 복음화의 미래다. 왜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보냐고 묻는다면 역사가 그렇게 나에게 대답하고 있다고 말할 것이다.

복음화한 나라들이 역사상 존재했다. 바로 암흑시대라고 일컫는 유럽의 중세다. 유럽의 도시 어디에나 많은 시민들이 예배하기 위해 세운 교회들로 빼곡하다. 내가 처음 독일로 유학 가서 하이델베르그에서 살림을 시작할 때 교회들의 종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괴로웠다. 그 많은 교회 종탑들 사이에 또 하나의 사각 탑이 있는데 그곳이 바로 마녀사냥을 통해 가녀린 여자들을 욕보이고, 짐승에게조차 대기 끔찍한 무서운 고문 도구로 몸을 찢은 감옥이다. 이것이 지금도 대학 광장 한 코너에서 무섭고 암울했던 기독교 세상을 증언하고 있다.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구별된 거룩한 공동체(ekklesia)다. 모든 사람이 다 교회를 출석하게 되는 날 우리는 중세처럼 저질화한 교회, 세속화한 교회를 경험할 것이다. 지금 안 믿는 사람을 전도하는 것보다 교회를 개혁하고 비성경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을 교정하는 것이 더 중요한 과제다. 이것이 진정한 전도를 위한 초석임을 알아야 한다.

민족 복음화와 세계 복음화는 실현될 수 없는 비전이지만 그것이 주는 강렬한 상상은 많은 젊은이들을 열광시키는 힘을 갖고 있다. 매 세기마다 자신들의 시대에 땅끝까지 복음을 전파해 주님의 종말이 임하게 하자고 외쳤던 선동가들이 있었다. 19세게 말에도, 20세기 말에도 그런 희망은 불길처럼 번졌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기독교 종주국을 자처하는 미국의 폭력을 보았고, 전쟁의 암운이 검게 드리운 새 천 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성시화 운동이나 민족 복음화 운동보다 더 절실한 시대의 요구는 교회의 자정(自淨)이요,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묵묵히 실천하는 운동이다. 하나님의 때를 인간이 끌어당기려는 그릇된 시도는 유대인들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게 돕자는 엉뚱한 프로젝트로도 진행되고 있다.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모두 귀환하는 날 인류 역사의 종말이 온다는 믿음으로 돈과 인력을 들여 그 일을 진행하고 있다. 하나님의 마지막 날,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 날을 우리의 손으로 앞당기자는 구호가 한국의 일부 기독 청년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우리는 이장림의 1992년 10월 28일 예수 재림 소란 사건이 이런 한국 교회의 복음주의 운동의 일각에서 자라난 것일 수도 있음을 사려 깊게 반성해야 한다.

평양에서 예루살렘으로

오늘날 한국의 기독 청년들을 열광시키는 또 하나의 망상은 소위 '평양에서 예루살렘으로'라는 복음 전파의 세계 역사적 흐름에 대한 환상이다. 복음이 사도 바울의 유럽 전도에서 물꼬를 잡아 미국을 돌아 한국으로 넘어왔다는 설이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소위 세계적인 석학이라고 하는 선교학자들도 많이 이야기하니 사람들은 의심의 여지없이 교회사의 흐름이라고 여기는 듯하다. 이제 이 복음이 미전도 종족들이 많이 몰려 사는 10/40창을 돌아 이슬람 세계를 복음으로 격파하고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으로 진격하여 예루살렘의 모든 이방 신전들을 무너뜨리게 되는 날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이라는 환상이 젊은이들을 열광케 하고 있다.

이런 환상은 여러 판(Version)으로 재구성되었다. 군사적인 폭력과 전쟁까지 가미한 아마겟돈 전쟁판도 있고, 새로운 십자군 전쟁을 정당화하는 미국의 강경한 복음주의판도 있다. 이런 미국 교회의 분위기 속에서 부시와 같은 군사적인 그리스도인(military chritian)도 등장했다.

   
 
  ▲ 소위 '평양에서 예루살렘으로'라는 복음 전파의 세계 역사적 흐름에 대한 환상도 또 하나의 망상이다.  
 
예루살렘을 복음화하자는 입장에는 편향성이 있다. 기독교가 유대교와 이슬람 모두를 다 척결해야 한다면서 유대인들은 동정적으로 바라보는 데 비해 이슬람은 뿌리 뽑을 악으로 인식한다. 때문에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간의 갈등에서도 이스라엘을 옹호하며, 약자로 나라를 잃고 고통과 설움을 겪는 팔레스타인 민중의 한을 외면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또 복음 전파의 궤적에 큰 장애가 되는 이슬람을 악의 축으로 보고, 이에 대한 영적 전쟁의 환상을 불어넣어 한국의 기독 청년들이 '기독교=선, 이슬람=악'이란 이원론에 빠지게 하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개척자들'은 이런 현실에서 기독교나 이슬람이나 똑같이 모두 자기 자신에게 있는 악, 이기심, 위선과 싸우는 것이 진정한 영적 전쟁임을 깨닫고 있다.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성경적인 삶을 실천하려는 그리스도인들뿐 아니라 양심적인 비그리스도인의 협력과 도움을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아 가고 있다. 서로서로 진심으로 충고하고, 연약함과 허물을 감싸 주며 때로는 사랑으로 비판하고 잘못을 고쳐 주는 친구가 되어야 함을 배우고 있다.

우리는 모두 미성숙한 구도자들이다. 기독교만 완전한 진리를 갖고 있고 남들은 다 틀렸다는 생각은 극히 편협한 아집이다. 비록 신앙이 진리라고 하더라도 우리는 아직 미성숙하다. 그 미성숙함은 한 인간이 평생 채울 수 없는 분량이다. 교회도 200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아직 성숙되지 못했고 앞으로도 계속 배워야 하고 교정해야 하는 존재임을 자각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드는 일보다 더 중요한 과제가 있다. 불신자들을 전도 대상자로 보기 전에 진정한 이웃과 친구가 되어 그들의 아픔과 슬픔 속에 한걸음 가깝게 다가서는 것이다. 친구에게 물드는 것이 전도의 핵심이다. 우리가 그들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섬기는 삶이 곧 우리 신앙의 증거다. 초대 교회는 드러내어 전도하지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이 전파되었다. 친구가 됨으로써.

감성주의의 늪에서 벗어나자

많은 한국 교회의 젊은이들이 감정적인 신앙의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자발적으로 한 곳에 모여서 교육과 훈련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 교회다. 우리 사회 어디서도 교회 말고는 그런 가능성이 없다. 그런 만남이 매번마다 감성을 자극하는 찬양과 개인의 내적인 위로를 위한 말씀만으로 채워진다면 이는 교회의 직무 유기다. 불법과 폭력, 전쟁과 재난, 기아와 절대 빈곤으로 파괴되어 가는 이 세상을 변화시키고 책임져야 하는 책임이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져 있다. 더 이상 개인주의적이고 감성주의적인 은혜 받기에만 몰입해서는 안 된다. 대중 집회는 더 이상 그릇된 환상을 불어넣어 주는 통로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청년들이 가야 할 새 길이 필요하다.

기독 청년들아, 새 꿈을 꾸자. 수천 년 동안 우려먹은 빛바랜 꿈들을 버리자. 한때 사람들을 흥분시키고 열광시켰던 거짓 꿈들을 버리고 우리의 생명을 바쳐 이웃을 살리는 평화의 길로 나가자. 전쟁과 기아로 죽어 가는 어린이들을 살리는 꿈을 꾸자. 지뢰밭 한가운데 부셔진 채 내버려져 있는 학교를 다시 재건하고, 전쟁으로 자신들의 학교에서 쫓겨난 아이들에게 학교를 돌려주는 꿈을 꾸자. 전장으로 나간 젊은이들을 연인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꿈을 꾸자. 전쟁터에서 잃어버린 아이들을 찾아 잠 못 이루는 어머니의 가슴에 잃어버린 아이를 다시 품게 하는 꿈을 꾸자. 이 땅의 어린이들과 어머니들에게, 그리고 연약한 모든 이들에게 큰 기쁨의 평화를 선물하자.

우리의 기도가 나의 만족감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탱크를 막아설 수 있는 용기를 불러일으키는 기도가 되게 하자. 어린이와 부녀자를 향하여 겨눈 총구를 막아서는 용기를 얻게 하는 찬양이 되게 하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했다. 당신은 그 누군가에게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자신이 암만 구원받았다고 주장한들 다른 사람들이 인정하지 않는다면 자기 착각이거나 자기기만일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사실이 그렇다.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자기 암시하는 신앙을 그치고 남들이 당신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딸'이라고 고백하게 하자. 더 뜨겁게 기도하자! 더 열심히 찬양하자! 더 이상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인류의 정의와 세계의 평화를 위한 용기를 얻도록!

송강호 / 개척자들 부설 코메니우스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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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영 2013-02-27 21:51:21
아무리 보아도 삐닥하기 그지 없는 내용입니다. 코카콜라는 3퍼센트만 맛들이게 하면 그지역사람들이 코카콜라를 애용할수 있는 것입니다. ' 우리의 기도가 ...아니라 탱크를 막아설수 있는 용기있는 기도가 되게하자..'는 것이 더 실현 불가능하고 감성적인 구호입니다. 정말 삐뚤어진 내용들입니다.

elcanian 2010-09-02 09:19:07
창녀와 성직자를 비교를 하셨는데, 성직자의 우둔성은 잘못 ㅤㄷㅚㅆ지만, 창녀의 두둔은 목사님으로서 바른 판단이 아닙니다. 글은 잘 썼는데, 감동이 없네요..., 십자가를 한번 거나하게 져보세요. 성토적인 글은 상대를 변화 시킬수 없어요 아셨나요. 목사님!

gosl 2010-08-31 14:54:08
글을다읽어봤는데 뭐가 잘못된환상이라는건지? 성시화와 백투예루살렘이 잘못된것이라는겁니까? 뭐가 잘못되었다는얘기는없이 원론적 말씀만 하셨네요. 창녀가좋은일했다고 창녀있는도시가 좋다는건지? 평양에서 예루살렘까지 복음화한다는계획이 성경에없어서 안된다는얘긴지 하나도 없네요. 그리고 구원은 우리의 믿음으로 되는것인데, 다른사람의 잣대로 구원됐다 안됐다 판단하라는말인지? 자정운동에의해 더신중해주고 복음화의 노력을 하지는취지로 글을 쓰셨다고 보기에는 너무 작위적인것 같습니다. 많은교회가 많은 성도들이 많은목사들이 기도로 열심을내고있읍니다. 다썩은것아니지요. 성시화를 위해 백투예루살렘을위해 기도하고 노력해야할일이지 잘못된환상이아닙니다. 기도합니다.

카이 2010-08-30 07:06:27
글을 쓰시려면 기본적으로 성시화가 뭔지 백투 예루살렘 운동이 뭔지 구분을 하시길 바랍니다. 대충 대충 알던 시대는 지났습니다...본질에 접근하지 못한 지저분한 글은 설득력이 없어요...

블루 2010-08-29 16:27:33
송강호님은 정말 '한때' 민족 복음화를 꿈꾸셨던 젊은이였던 것 같습니다.
남에게 보이려는 신앙은 바리새인과 뭐가 다를까요? 남들이 나를 하나님의 자녀라고 인정하면 뭐가 다릅니까? 신앙은 남들이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다른사람에게 보이는 신앙은 참 신앙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