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하며 도를 닦다
간호하며 도를 닦다
  • 지성수
  • 승인 2019.02.18 04: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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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성탄절날 아내가 갑자기 어지러움증이 심해서 엠블런스를 불렀다. 불안한 마음으로 엠블런스를 타고 가면서 영구차를 탄 것 보다는 다행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엠불런스를 타면 돌아 올 수 있지만 영구차를 차면 돌아올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지러움증으로 입원을 했기 때문에 일단은 뇌졸증으로 의심하고 검사를 받았다. 아내의 상태를 면밀히 살피던 의사가 아래 입술이 오른 쪽으로 미세하게 쳐진 것을 발견하고 나에게 평소에도 이랬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매우 놀랬다. 의사가 아내의 운전면허증을 보여달라고 하더니 사진을 보고 똑같다고 했다. 내가 아내와 거의 50년을 함께 하면서도 아래 입술이 오른 쪽으로 미세하게 쳐진 것을 몰랐다고 하니까 의사와 회진하는 스탶들이 모두 웃었다. 나중에 과장 의사가 오자 담당 의사가 다시 그 이야기를 해서 내가 한국 사람들은 부부가 입술로 볼 일을 보는 일이 별로 없어서 잘 모른다고 해서 다시 한 번 다같이 웃고 넘어갔다.

기계가 고장이 났을 때 원인을 찾지 못하면 해결 방법을 찾기 어려운 것처럼 몸도 마찬가지여서 아프기는 한데 원인을 찾지 못하면 치료할 수가 없다. 여러 가지 검사 끝에 일단 뇌졸증은 아니라는 좋은 결과를 얻고 퇴원을 했다. 몇 차례 더 진단 끝에 아내의 병은 결국 우울증이라는 결론이 내려졌다.

일단 퇴원은 했지만 아내가 좀처럼 회복이 안되어서 나의 일상생활이 완전히 중단 되었다. 아내의 수족이 되어 리모컨처럼 움직여야 했지만 그런 것이 조금도 귀찮게 느껴지거나 짜증이 나지 않고 오히려 무엇을 더 해 줄 것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원래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닌데 어떻게 그런 생각이 들었는가 하는 것을 냉정하게 생각해 보았다. 인간에게는 부모가 어린 자식을 사랑하듯 하는 맹목적 사랑이 있다. 그러나 부부관계라는 것은 그런 것일 수는 없다.

주름진 아내의 손을 보며 “나와 아이들을 위하여 평생토록 먹히고 입히기 위해서 수고를 한 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부의 정 이전에 아내의 헌신에 대한 보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더 갖게 되었다.

우울증에는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들과의 대화가 큰 힘이 된다.

우울증의 위험성은 감정의 기복이 심해서 추락할 때는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 순간을 넘기지 못하면 위험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10 년 전쯤에 40 전후의 젊은 후배 목사의 아내가 1만 불 정도의 돈 때문에 고민하다가 바다에 가서 빠져 죽은 일이 있었다. 주변에서는 평소에 적극적인 성격인 그녀가 우울증을 앓고 있었던 것 조차도 몰랐었다.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빠질 바다로 가는 2 시간 정도의 시간 동안 그녀의 극단적 감정이 변하지 않아서 초등학생인 2 자녀를 잊어버리고 결국 비극을 초래 했던 것이다.

아내가 심신이 허약해지자 “불안하다, 초조하다, 미칠 것 같다, 죽고 싶다.” 등등의 부정적 말, 즉자기 자신을 해치는 말을 많이 했다. 건강했을 때는 했다면 남을 해치는 말을 한 적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곰곰이 따지고 보니 몸이 약해지고 나니 남을 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해치는 말들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인간은 언제 남을 해치는 말을 하는가? 건강할 때가 아닌가? 건강할 때 남을 해치는 말을 하던 사람도 심리적으로 병이 들면 자기를 해치는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정신병원에는 모두 자신을 해치는 사람들일 뿐이지 남을 해치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말로서 남을 해치는 일은 법으로 다루어야 하고 자신을 해치는 것은 병으로 다루는 것이다.

나는 30년 전부터 마누라는 없어도 PC 없이는 못사는 사람이었다. 이 시대 많은 사람이 그렇겠지만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우리 집에는 PC가 서재에 한 대, 거실에 한대 노트북이 한 대, 도합 3대가 있다.

아내가 안절부절 해서 안방. 거실, 작은방, 바람 잘 통하는 현관 등으로 왔다 갔다 하며 누워 있기 때문에 항상 옆에 있어야 하는 나도 따라 움직여야 한다. 아내 옆에 앉아서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으니 노트북을 들고 따라 다닌다. 그런데 노트북 뿐 만 아니라 마우스와 돋보기 안경, 작은 소반상도 같이 챙겨야 해서 보통 성가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제 비로소 마누라와 컴퓨터가 똑 같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아내가 몸이 약해지자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서 평소에도 예민한 사람이 소리, 냄새, 빛, 온도 등에 대한 반응에 맞추기가 어렵다. 보통 사람들은 이해관계에 예민하다. 불의를 보고 꾹꾹 눌러 참을 줄 아는 사람들일수록 이해관계에는 더 민감하다.

아내의 신병 기간이 길어지자 먼 곳에서 까지 여러 사람들이 문병을 오고 반찬을 해 가지고 와서 크게 도움이 되고 있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나에게 물심양면으로 피해를 입힌 사람은 한 두 사람 뿐임에 비해서 물심이 아니라 이번 경우처럼 몸으로 까지 도움을 받은 일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로 가장 고귀한 일은 ‘고통 받는 자와 연대’하는 일이다. 물론 그러다가 어려운 일은 당하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가치가 있는 일이다. 기억은 사라지는 법이고 시간은 흐르는 법이기 때문에 어느 날 시간이 멈출 때를 대비해서 집까지 문병을 왔던 이름들을 기록을 해 두기로 했다. 극심한 우울증에는 의사나 약 보다도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들과의 대화가 더 큰 힘이 되었다. 심지어는 역시 생면부지의 사이이지만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았던 나의 페이스 북 친구와 매일 메신저로 통화를 하면서도 큰 힘을 얻었다. 왜냐하면 같은 고통을 겪었기 때문이다.

투병 기간이 길어지자 나 혼자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어서 한국에서 처제가 왔다. 처제가 와서 나는 비로소 음식 준비에서 해방이 되어 자유의 몸이 되었다. 먹지 못하는 환자의 간병에는 음식 문제가 가장 어려운 일이다. 문병을 온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마련해온 음식은 냉장고 차고 넘치는데 아내는 먹지를 못하니 기다렸다가 차례 차례 버려야 하는 일이 가장 짜증 나는 일이었다. 음식을 끓이고 데우고 식히고 냉장고에 넣고 빼고 하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가 엄청 났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처제가 와서 입맛에 맞게 음식을 척척 해주니 아내도 잘 먹고 점점 기력을 회복하고 있다.

있을 때 잘해!

사람이 태어날 때는 혼자서 태어나지만 죽을 때는 여러 사람의 손이 필요한 법이다. 물론 죽으로 가는 길에는 더 많은 사람이 필요해 진다. 이번에는 아니겠지만 아내도 언젠가는 갈 것이고 혹시 내가 먼저 갈지도 모른다.

성경에 그 때를 대비해서 친절하게 안내의 말씀이 나와 있다.

예수는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했다.

지옥에 당첨된 부자가 '앗 뜨거워라!'하고 지옥이 얼마나 힘든지 사람을 보내어 경고를 해달라고 제법 의미 있는 제안을 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사람들이 지옥에 오지 않게 하기 위한 더 이상의 예방 조치는 필요 없다고 한다. 지옥에 대한 홍보는 이미 충분히 되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있을 때 잘 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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