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듀엣곡으로 녹음한 마이클 잭슨의 <Love never felt so good>을 들을 때마다 나는 마이클 잭슨이 참 부럽다.
예술가든 학자든 과거 그 분야의 위대한 업적을 남긴 사람의 영향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한참 인기를 얻을 때 '백인판 마이클 잭슨'이라는 소리가 종종 들렸다.
사실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음악과 동작 하나를 보면 마이클 잭슨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백인판 마이클 잭슨'이 아니라 저스틴 팀버레이크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현대적으로 변형했기 때문이다.
이젠 저스틴 팀버레이크가 출연하는 뮤직 비디오처럼 마이클 잭슨과 듀엣곡으로 녹음을 하면서 노골적으로 오마쥬를 해도 아무도 그의 음악성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
신학자도 마찬가지다.
과거 위대한 신학적 업적을 남긴 사람의 영향을 받아 그 기반 위에서 이론을 전개하는 것을 나쁘거나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현대 모든 신학자들은 어떤 형태로든 과거의 영향을 받고 있으니 말이다.
종교개혁자들의 글은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21세기에 16세기의 글을 아무런 해석의 과정도 없이 문자적으로 인용하여 참됨을 주장하는 것은 나쁘거나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여전히 중세적 영향이 남아 있는 그들의 주장 중 현대인들이 수용할 수 없거나 낡은 악습으로 여겨질 수 있는 가르침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그들이 존경하는 신학자들을 올바르게 기억하거나 기념하는 방식이 아니다.
마이클 잭슨의 춤과 노래를 지금 그대로 따라 하는 이들이 커버가수일 수는 있지만 일상적인 의미의 가수라 불리거나 1980년대와 같은 열광적 지지를 얻어낼 수 없다.
신학은 다를까?
루터든 깔뱅이든 시대적 한계가 분명 있는데 이를 무시한 상태에 앵무새처럼 그대로 반복한다고 해서 신학자라 불릴 수 있을까?
신학에 흥미를 느낀 덕후일 수는 있을 지언정 신학자라 불릴 수는 없을 것이다.
진정 존경하는 신학자의 학문을 연구하는 학자라면 그 가르침의 현대적 의미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교회의 비극은 신학자라 불리기보다는 덕후라고 불리워야 하는 이들이 신학자 행세를 하며 담론이랍시고 궤변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성서도 해석하고 적용하고 재해석하는 시대에 왜 특정 신학자는 해석하고 적용하고 재해석해서는 안 되는가?
그들의 가르침이 우리의 신앙의 대상인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라 불린 그 분보다 진정 위대한 것인가?
그렇다면 예수를 믿어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치지 말고 그 신학자가 메시야라고 가르치는 것이 더 정직한 표현이 아닐까?
[출처] 옹켈팍OnkelPark 블러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