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 부리바와 우크라이나
대장 부리바와 우크라이나
  • 김기대
  • 승인 2022.03.02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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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도 갈등의 한 원인일까

오래 티브이 채널이 많이 없던 시절, 종일 방송이 가능한 명절이면 자주 틀어 주던 영화 중에대장 부리바 있었다. 우크라이나 출신의 러시아 작가 니콜라이 고골이 동명의 소설타라스 불바(Taras Bulba)’ 1962 영화로 만든 것인데 J 톰슨이 감독하고 브리너(대장 부리바 ) 토니 커티스 등이 출연한 대작이다.

 

오스만 투르크의 전쟁이 있었던 16세기 지금의 우크라니아 지역에서 용맹을 떨치던 기마 전사족 코사크 족이 폴란드를 도와 오스만 투르크를 몰아 냈다. 당시 비잔티움을 함락(1453)시킨 오스만 투르크는 기세가 등등한 상태였지만 코사크의 용맹성을 당해 내지 못했다. 폴란드는 전쟁 우크라이나 지역의 거대한 초원을 코사크족에게 주기로 했으나 막상 전쟁에서 이기자 약속을 어겼을 뿐더러 코사크를 야만인으로 몰아 세웠다.

배신당한 코사크는 폴란드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는데 많은 코사크 영웅들이 배출되었다. 니콜라이 고골은 영웅들의 이야기를 모아 대장 부리바라는 인물을 창조했다. 폴란드에서 유학하던 부리바의 아들 안드레이는 폴란드 귀족 딸과 사랑에 빠지고 사랑 때문에 코사크를 배신했다가 결국 아버지 부리바에 의해 안드레이는 죽음을 맞는다. 일종의 대의멸친(大義滅親) 스토리다.

코사크 족은 러시아 역사의 전환점마다 등장한다. 1547 ‘짜르(Tsar)’라는 칭호를 처음 공식적으로 채택한 이반 4세는 몽골계의 타타르족이 차지하고 있던 시베리아 지역을 러시아 영토로 삼는데 이때도 코사크 족이 시베리아 점령의 첨병 역할을 했다. 1648 알래스카에 도착한 것도 코사크 족이었다. 이것을 계기로 러시아는 1741 알래스카를 영토로 삼았다가 세기가 지난 1867 미국에 720 달러에 매각한다.

코사크 전사들 볼셰비키 혁명기에  황제파인 백군편에 섰다가 결국 해체당했다. 세월이 흘러 소비에트 연방 해체 이후 코사크 족의 역사는 러시아의 역사라기 보다는 우크라이나의 역사가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의 장악력이 조금씩 약화되던 1980년대 말부터 코사크족 후손들의 전통회복 운동 일어났고 2005 푸틴은 코사크 민병대를 조직했다. 푸틴의 친위부대이자 사병이나 다름없는 조직이 탄생한 것이다. 볼셰비키 혁명 정신 계승보다는짜르 꿈꾼다는 푸틴에 대한 세간의 의혹에 대해화답이라도 하려는 그는 재빨리 우크라이나의 역사에 축을 차지하던 코사크 족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정치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코사크 전사들은 2014 우크라이나에서 친러파와 반러파의 갈등이 고조에 달했을 다시 나타났다. 이들은 2014 당시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들을 점거한 친러시아 시위대를 도와 우크라이나 정부군과 교전을 벌였었다. 처음에는 '울브스 헌드레드(Wolves' Hundred)’라고 불리던 이들은 타임지의 기사를 통해 정체가 드러났다. 타임은 "러시아가 정부군 대신 민병대를 투입하는 전략을 쓰고 있다" 무장세력은 코사크 민병대 소속이라고 밝혔다.

안타깝게도 코사크 족은 나라없는 다른 소수인종과 마찬가지로 강한 편에 붙어 생존을 지속해왔다. 정황상으로는 2022년의 우크라이나, 1917 볼셰비키의 편에 서야 같은데 그들은 러시아를 택했고 혁명의 시기에는 짜르를 위해 대신 싸웠다.

우크라이나의 역사는 러시아의 역사와 분리시켜 생각할 없다. 러시아는 9세기 세워진 키예프 루스 공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때문에 지금 우크라이나의 수도인 키예프는 러시아가 시작된 성지 같은 곳이다. 우크라이나에서는 슬라브와 비슷한 인종인 루스 족이 주류였는데 러시아Russia라는 말도 ‘루스족의 땅’이라는 의미다. 현재 우크라이나 인구 중 러시아계는 18% 되고 우크라이나어가 공용어이지만 러시아어 사용자가 50% 된다.

몽골이 러시아 지역을 침략했을 키예프 공국은 쇠퇴의 길을 걸었고 키예프의 제후국에 불과했던 모스크바 공국은 러시아의 중심 권력으로 부상했으니 나라의 인연은 깊다.

흑해 진출을 위해서 우크라이나가 필요했던 러시아는 크림반도 지역을 계속 공략해 1783 우크라이나 지역을 완전히 손에 넣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침략 당했다는 정서 보다는 가톨릭과 이교도 타타르들의 지배에서 해방시켜 고마운 세력으로 러시아를 환영했다. 소비에트 연방의 출범과 함께 강제로 소련에 합병된 나라가 아니라는 의미다. ‘대장 부리바 작가 니콜라이 고골 역시 소련 이전의 1809 우크라이나 태생(그에게는 코사크의 피도 섞여 있다고 한다)이지만 시신은 모스크바에 묻혀 있고 러시아 작가로 분류된다.

따라서 1979 구소련이 완전히 다른 나라인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것과는 결이 다르다. 푸틴도 이런 점을 감안하고 서방세계가 엄포만 놓지 별다른 행동은 취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던 같다. 하지만 의외로 서방세계의 지원이 거세자 러시아 당국도 적지 않게 당황하고 있다.

유럽세계는 러시아에 대해 혐오 또는 공포의 정서를 가지고 있다. 스위스 언론인 기메탕은 이를 '루소포비아(러시아 혐오증-부제 : 러시아 혐오의 국제정치와 서구의 위선, 김창진, 강성희 옮김, 가을의 아침)'라고 부르고 있다. 서방언론은 우크라이나의 반러시아 세력이 저지른 일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친러시아 세력이 저지른 일은 침소 봉대한다는 것이다.

 

공포에는 역사도 몫할 것이다. 나플레옹과 히틀러가 러시아를 건드렸다가 스스로 패망의 길을 걸었고, 크림 전쟁에서는 오스만투르크와 여러 연합군이 러시아에 승리했으나 덕을 것은 프로이센 , 투르크도 망했고 오스트리아는 이탈리아 반도를 잃었고, 오스트리아를 지탱하던 합스부르크 가문도 패망했다. 크림전쟁은 길게 보면 1 대전의 원인(遠因) 되어 러시아는 비록 전쟁에는 졌지만 국제 무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러시아는 최초의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한 나라이니 유럽 입장에서는 두려운 존재일 밖에 없다. 그런 두려움과 혐오가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유럽 세계의 단결을 가져 왔다.

 

종교도 정말 갈등의 원인일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8세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손에 넣었을 우크라이나 국민은 타타르족과 가톨릭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었다며 러시아 군대를 환영했다. 지난 2 21 러시아의 본격적인 침공이 있기 종교문제를 다루는 인터넷 언론 매체 Religion Dispatches ‘Make no Mistake, if There’s a War Between Russia and Ukraine, it Will be a Religious War (실수하지 마시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에 전쟁이 있다면 그것은 종교 전쟁이 것이다)라는 기사를 썼다.

우크라이나의 일부 지역은 우크라이나의 주류 교파인 우크라이나 정교회가 아니라 우크라이 그리스 가톨릭 교회 소속 신도들이 주류를 이룬다. 종파는 예전(liturgy)은 정교회를 따르지만 가톨릭 교황의 수위권을 인정한다.

정교회에서 가톨릭의 교황청같은 역할을 하는 곳이 콘스탄티노플 세계 총대주교다. 정교회는 모든 대주교가 평등하며 나라의 정교회는 독립되어서 지역 대주교의 권한 아래 있다. 평등하지만 먼저 있는 주교가 콘스탄티노플 세계 총대주교다. 교황같은 위상은 아니라는 말이다.

지금은 콘스탄티노플이 터키에 속해 있기 때문에 아무래도 터키 당국의 눈치를 밖에 없다. 이슬람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종교적 도그마보다는 인권과학, 종교의 자유를 강조한다. 우크라이나 정교회도 독립되어 있다고는 하지만 콘스탄티노플의 이런 입장, 열린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독특한 형태의 가톨릭 교회도 존재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크라아니의 신앙 형태는 당연히 서방적일 밖에 없다.

반면 모스크바 총대주교는 러시아에서 제정 러시아 시절의 정치적 영향력의 대부분을 되찾았다. 푸틴도 러시아 정교회와 밀월관계다. 그들은 정교회의 전통성을 강조하면서 세계의 종교적 보수주의자들을 결집시키고 있다. 특히 재정적으로 빈곤한 아프리카 정교회를 후원하면서 러시아 정교회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Religion Dispatches의 전망과 달리 종교가 갈등의 작은 원인은 있겠지만 이것이 러시아 우크라이나의 직접적인 대립 원인은 없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현대 사회의 가장 크고 영향력 있는종교 신자유주의이기 때문이다. 결국 돈을 위한 싸움이며 서방의 경제 제재로 러시아가 휘청이고 있는 것도 때문이다. 달러 중심의 경제 제재가 본격화되면 오히려 중국과 러시아가 연대해 비트 코인 같은 암호 화폐를 활성화 시킬지도 모른다는 가설들이 일각에서 나오는 것도 돈의 문제다.

미국 러시아 간의 정치적 패권주의가 원인이든, 돈이 원인이든, 종교가 원인이든 죽어나가는 죄없는 민중들이다.

우크라이나의 평화를 빈다. 꼭두각시들은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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