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바인침례교회 권태산 목사,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얼바인침례교회 권태산 목사,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 양재영
  • 승인 2022.03.28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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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본당에서 취임식 개최…3년간의 과정 인터뷰로 밝혀

3년전 교계를 시끄럽게 했던 얼바인침례교회 사태가 권태산 목사의 담임목사 취임으로 마무리되었다. 

권태산 목사는 지난 1월 23일 교회 총회에서 89.5%의 찬성으로 얼바인침례교회 제 5대 담임목사로 인준을 받았다. 그리고, 27일(일) 교회 본당에서 취임식을 가졌다. 교회 분규로 2019년 취임식이 취소된 이후 3년만에 열리는 것이다. 

교회 분규의 결과는 참담했다. 

교인들의 대부분은 얼바인우리교회(데이빗 권 목사)로 떠났고, 상당수는 다른 교회로 가거나 가나안 교인이 되었다. 이후 얼바인침례교회에 남은 교인 다수는 또다른 분규에 휘말려 치리를 받거나 자발적으로 떠나야 했다.

한때 5백여명에 달했던 교인들은 여러차례 분규를 겪으며 뿔뿔이 흩어져 현재는 백여명도 채 안되는 교인들이 출석하고 있다. 베델교회, 얼바인온누리교회 등 교계에 잘 알려진 대형교회 못지 않은 영향력을 가졌던 과거의 교세는 사라졌다. 

얼바인침례교회 사태는 3년전 분규 당시에는 언론의 관심으로 많이 알려졌다. 하지만, 이후 어떤 과정을 겪었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본지는 권태산 목사에게 연락을 취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권태산 목사가 취임식에서 설교를 전하고 있다.(사진:뉴스M)
권태산 목사가 취임식에서 설교를 전하고 있다.(사진:뉴스M)

담임목사 취임을 축하한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왔는가?

3년전 담임목사로 청빙을 받고 왔다. 하지만, 교회에 분규가 있었고, 법원 행정명령으로 취임식을 하지 못했다. 저를 반대하던 분들과의 소송도 있었는데 승소한 후 행정권을 되찾았다. 이후 담임목사가 아닌 수석 부목사 형식을 사역을 해왔다. 팬데믹이 어느정도 정리된 지난 1월 교회 총회를 통해 담임목사로 인준을 받았다. 취임식은 안하려 했지만 교인들을 생각해 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3년 전 당시를 간단히 설명해 달라. 

저는 얼바인침례교회로부터 만장일치로 초빙을 받아서 왔다. 하지만, 제가 교회에 와보니 폭탄이 터졌다. 교회의 현직과 전직 리더십들 간의 갈등이 아주 심했다. 저를 초빙한 측은 담임목사가 있으면 싸움이 끝날 것으로 본 것 같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반대측은 당시 모 부목사를 중심으로 교육관에서 따로 예배를 드렸다. 우리측 변호사의 실수로 그들이 제기한 행정명령에서 패소해 취임식이 취소됐다. 이후 교회 밖에서 3개월 정도 예배를 드렸고, 이후 소송 승리로 행정권을 회복해 교회로 복귀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 부목사를 중심으로 한 200여명의 교인들이 교회를 떠났다. 

교회 복귀후에도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렇다. 소위 반대파와의 분쟁에서 승리 후 남아있는 교인들 간의 내부 갈등이 터졌다. 당시 저는 담임목사가 아닌 일종의 수석 부목사 형식으로 있었다. 일부의 교인들이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을 담임목사로 세우기를 원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목사를 세우겠다는 것이다. 이 교회에는 이런 전례가 적지 않았다. 목사에게 휘둘리지 말고 평신도 중심으로 교회를 운영하려는 생각들이었다. 

권태산 목사 부부가 취임식에서 축복기도를 받고 있다. (사진:뉴스M)
권태산 목사 부부가 취임식에서 축복기도를 받고 있다. (사진:뉴스M)
권태산 목사 취임식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M)
권태산 목사 취임식에서 축하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뉴스M)

결국 다수의 교인들이 떠나거나 출교를 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교회를 정상화 시키기위한 정상적인 치리였다. 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예배를 방해하며 소동을 벌였다. 모 교인은 저의 길을 가로막다 갑자기 쓰러지면서 경찰이 출동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다행히 교회 카메라에 사태 과정이 잘 기록되어 있어 무혐의로 끝났지만, 그들의 행동은 상당히 조직적이었다. 대화를 원했다면 주중에 만나면 됐다. 하지만, 그들은 저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고 싶어했다. 그래서 예배를 방해했다. 결국 일부는 스스로 교회를 떠났고, 10여명에 대해서는 교회가 치리를 했다. 지금은 모든 것이 정상화됐다. 

지금까지도 몇몇 소문들이 돌고 있다. 전 올림픽장로교회에서 합의금으로 4만불을 받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올림픽장로교회는 당시 제가 개척한 교회와 합병을 한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일이 순탄하지 않았다. 약속과 달리 저를 청년부 목사로 사역하게 했고, 담임목사는 은퇴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4년 정도 후에 인근 한인타운으로 나가게 됐고, 4만불의 합의금을 받았다. 그 4만불은 당시 저와 같이 나온 교인들에게 모두 나눠줬다.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체크 등의 사진이 모두 있다. 얼바인침례교회 교인들에게도 이 사실들을 모두 설명했다. 문제는 분쟁 당시 교회를 떠나야 했는데, 그때 그 합의금 페이퍼를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소문을 퍼뜨린 것 같다. 

교단에서 500만불 지원과 관련한 허위 보도도 있었나?

제가 30대 때 LA 남침례교단에서 저를 포함한 세 명의 다국적 사역자들에게 젊은 교회를 개척하자는 내용이 계획되어 추진되었다. 이 플랜을 위해 교단에서 500만불에 달하는 펀드를 모금하기 시작했다. 이 내용을 친분이 있던 중앙일보 모 기자가 기사화했는데, 부동산 가격의 폭등 등으로 계획이 모두 취소됐다. 결국 세 명의 사역자들은 각자의 교회를 개척했다. 언론을 이용해 허위보도를 한 것이 아니라, 일을 추진하다 취소된 것이다. 돈은 만져보지도 못했다. 

마지막으로 인근에 분리 개척한 얼바인우리교회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남침례교단에서 얼바인우리교회가 교단 가입을 원하는데 허락하겠느냐는 연락이 온 적이 있다. 당시 저는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답했다. 갈등이 심했고 다른 교회가 됐지만, 그 분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저도 처음에는 목사의 욕심으로 교회가 갈라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오해였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 인터뷰는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기에 가능한 것이다. 나에게도 이런 경험은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던 적이 있었지만, 무책임하게 그만둘 수 없었다. 나는 이곳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교지로 생각하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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