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화산도” 혹은 4.3과 4.29의 만남
소설 “화산도” 혹은 4.3과 4.29의 만남
  • Michael Oh
  • 승인 2022.05.03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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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평론가 권성우 인터뷰
소설 “화산도”와의 운명적 만남
조선적 김석범 삶을 통해 보는 미주 한인 디아스포라

[뉴스M=마이클 오 기자] 문학 평론가 권성우 교수(숙명여대)가 L.A.를 찾았다. 재일 조선인 소설가 김석범과 소설 “화산도” 대한 이야기를 가지고 왔다.

소설가에게 가슴을 도려낸 듯한 상처로 남아있는 제주 4.3을 평생 품어 토해낸 작품이다. 일본 주류 사회뿐만 아니라 찢어진 조국, 남한과 북한 어디에도 속하기를 거부하며 고집스럽게 살아온 경계인의 설움과 고뇌 또한 담고 있다. 

문학 평론가 권성우 교수 (뉴스엠)
문학 평론가 권성우 교수 (뉴스엠)

평론가 권성우는 미주 한인 디아스포라가 소설 “화산도”의 가장 적실한 독자라고 한다. 조국을 향한 그리움과 걱정 그리고 고향을 떠난 이들 가슴 밑바닥에 가라앉은 한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학 강연회 “망명과 밀항(密航)의 상상력: 김석범의 ‘화산도’ 읽기”가 열린 날은 30년 전 미주 한인에게 상처로 새겨진 4월 29일이었다. L.A. 4.29가 제주 4.3을 만남 셈이다. 문학은 이렇듯 시간과 시간을 연결하고 사람과 사람을 엮어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 내는 공간이 아닐까? 권성우 평론가를 만났다. 그가 안내하는 문학의 공간, 그 긍정과 창조의 공간으로 들어가 보자. 

오랫만에 미국 방문이다. 소감이 어떤가? 

2015년이 마지막 방문이니 시간이 좀 지났다. 다시 와보니 풍경은 달라진 게 없는데, 대한민국 국격이 많이 올라갔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오징어 게임, BTS, 파친코 등 한류 열풍으로 한국에 관한 관심과 호감이 높아진것 같다. 그런데 한인 타운은 상대적으로 진공상태의 정적처럼 묘하게 멈춘듯한 느낌을 받았다. 

아마도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는 한국 사회에 익숙해진 감각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역동적으로 발전했다. 하지만 그 그늘 또한 매우 짙다. 양극화가 더욱 뚜렷해졌고 청년 삶에 희망은 점점 더 희박해지고 있다. OECD 국가 중 가장 높은 자살률을 보이지만 출산율은 저조하다. 발전이라는 그늘 아래 놓인 삶의 실상이 그만큼 어둡다는 것이다. 수많은 희생의 대가로 이루는 발전이다. 

문학 강연회 주제가 소설 “화산도"와 작가 김석범이었다. 이 주제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화산도”가 88년 실천문학사에서 일부 번역되어 처음 접하게 되었고, 2015년에 비로소 완역본이 나와 기쁜 마음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깊은 감동을 받았고, 작품의 문학적 성취와 의미가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작품의 중요성에 비해 문단의 조명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그래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했고,  2016년 “망명과 밀항의 상상력”이라는 제목으로 평론을 냈다. 

이 글을 계기로 김석범 작가와 통화도 하고 직접 찾아뵙고 대담을 나누게 됐다. 그 대담은 “화산도 문학 기행"이라는 제목으로 산문집 “비정성시를 만나던 푸르스름한 저녁”에 실려 있다. 대화하면서 작가의 인품과 문학 세계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 생겼고, 제대로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됐다. 

또한 김석범 선생이 “화산도” 연구에 대해 보여준 관심과 애정 또한 비평가로서 힘을 얻는 뿌듯한 경험이었다. 

현재 논문과 비평이 일부 있지만, 2015년 완역판 출간 이후 본격적인 평론은 미미한 상황이다. 아무래도 애초에 일본어로 발간되기도 했고, 일본어 문학으로 분류되는 작품에 대해 한국 문학에서 평가하기에 조금 애매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넓게 보면 디아스포라 문학을 포함한 한민족 문학으로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기존 한국 문학에 신선한 충격을 줄 만한 뜻깊은 작품이다. 일본 문단에서도 영어로 번역됐다면 노벨상까지도 바라볼 수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반드시 충분한 연구와 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작품을 보면서 한국 현대사에 가장 비통한 상처인 4.3의 전모와 투쟁과 저항 그리고 죽음과 학살 등 총체적인 과정을 이토록 깊게 또 감동적으로 묘사한 작품이 있었던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론 현기영 소설가의 “순이 삼촌”도 있었다. 하지만 대하소설로서 방대하고도 깊은 울림을 전해주는 작품은 “화산도”가 독보적이지 않을까 싶다. 

문학 강연회, 엘에이 지역 문학, 독서, 인문학 연구 모임 등 참여 (뉴스엠)
문학 강연회, 엘에이 지역 문학, 독서, 인문학 연구 모임 등 참여 (뉴스엠)

김석범은 어떤 인물인가?

1925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했다. 어머니가 태중에 선생을 품은 채 제주도에서 오사카로 건너갔다고 한다. 어린 시절 ‘일본 안의 제주’로 불리는 이카이노(猪飼野)에서 자랐다. 생존을 위해 조국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지만, 애절한 기억과 그리움으로 조선의 풍습과 언어를 고집스럽게 지켜온 마을의 공기를 그대로 호흡하며 자랐다. 비록 출생지는 일본이지만 평생 조선인으로 살아온 이유다.  

조국을 향한 애정이 남다른 분이다. 심지어 해방 전에는 임시 정부로 망명하기 위해 제주도로 건너가 징병검사까지 받았다고 한다. 어린 시절 주변으로부터 소년 민족주의자로 불렸다. 조선어 교사도 하고 한글 소설을 집필할 만큼 한국어에도 능통하다. 

이런 분에게 4.3은 견디기 힘든 충격이었을 것이다. 영혼의 고향과 같은 곳이 찢기고 피로 얼룩지는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과 고뇌에 빠졌다. 1957년 “까마귀의 죽음"을 시작으로 4.3이 그의 문학에 중심 주제로 등장했으며, “화산도”를 통해 그 정점을 보여주었다. 

김석범 선생을 이야기 할 때 ‘조선적’을 빼놓을 수 없다. 그 개념과 의의는?

일본에 귀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남한 북한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의 신분을 일컫는 말이다. 자신을 해방 전 조선인으로 여기고 살아간다. 평생을 난민처럼 어려움을 감수하며 살아간다. 

“화산도”에도 선생의 이런 애환과 고뇌를 담은 인물이 잘 나타난다. 남승지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일제시대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가 살다가 해방 후 서울을 거쳐 제주도로 와 4.3의 소용돌이 속에 빠진 인물이다. 

"작품 속에서 남승지 나이는 저하고 같아요. 나는 일본으로 돌아와 4.3에 직접 참여하지 못한 비겁한 입장이 되었지만, 남승지를 나 대신 그 현장에 남아 있는 인물로 설정한 겁니다… 4.3에 참여하지 못한 채 일본에서 살아왔다는 미안한 마음, 장용석을 버리고 나만 살아남았다는 회한, 결국 동지들을 배반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부끄러움은 저 자신을 오랫동안 지배한 생각입니다.” (김석범과 권성우 대담 중에서, “비정성시를 만나던 푸르스름한 저녁”, 161-162)

‘조선적’ 혹은 경계인으로서 김석범과 “화산도”는 미주 한인 디아스포라에도 의미 있을 것 같다. 

분명 일본과 미국 디아스포라 한인의 경험은 양상과 강도에 있어 차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차별과 배제 등 보편적인 상황에 대한 경험과 정서는 아마도 충분히 공감하고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지점에서 김석범의 삶과 “화산도”를 통해 표현되는 경계인으로서의 문제의식과 애환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최근 재미 한인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도 이런 혼을 담은 작품이 나오고 있어 반가운 마음이다. 황숙진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 미셜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 등 소중한 작품들이 마땅한 주목을 받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모두 디아스포라 공동체가 겪는 가혹한 경험과 역사를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화산도”와 같은 호흡을 나누고 있다고 생각한다. 

“화산도”의 문학적 성취와 역사적 의의를 평가한다면? 

“화산도”는 두 가지 면에서 높은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었다. 인물 형상화가 대단히 탁월하다. 인물의 개성이 독특하고도 적실한 묘사를 통해 살아 움직이고 있다. 

또한 방대한 대하소설이지만 지식인 소설이면서 심리 소설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점이 놀랍다. 단순히 역사적 사건과 과정을 기록하고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사태에 대한 내면 깊은 사유와 성찰을 보여준다. 때로 이런 면모가 독자에게 어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혁명과 역사를 바라보는 인간의 마음과 실존적 상황을 끈질기게 추적하여 드러내는 성실함은 오직 위대한 작품을 통해서만 경험할수 있다. 

역사적 사건을 다루고 이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는 점은, 문학의 현실 참여와 정치적 도구화의 위험이 있지 않은가? 

4.3을 문학으로 이야기한다는 것에 그런 오해나 위험이 있을 수 있다. 반대로 이런 위험을 벗어나기 위해 심미주의 혹은 탐미주의에 빠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김석범 선생의 “화산도”는 이런 양 갈래 위험을 뛰어넘는 위대함이 있다. 단순히 역사 소설로 분류할 수 없는 역사와 인간에 대한 치열한 고민과 성찰이 예술적 경지로 승화되어 있다. 

김석범 선생의 교토대 졸업논문 "미와 이데올로기"를 보면 일찍부터 예술로서 문학의 지평과 위치에 대한 고민을 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논문에서 문학이 예술로서 가지는 독자성을 주장하고 있다. 이것은 문학이 역사에 흡수되거나 정치적 구호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넓은 지평을 열고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과 성찰 때문에 김석범 선생의 문학과 삶은 더욱 높은 평가가 필요하다. 

권성우 산문집 "비정성시를 만나던 푸르스름한 저녁"김석범 선생과 작품에 관한 단상과 대담을 포함하고 있다. (뉴스엠)
권성우 산문집 "비정성시를 만나던 푸르스름한 저녁"김석범 선생과 작품에 관한 단상과 대담을 포함하고 있다. (뉴스엠)

비평가로서 최근 관심이 있는 혹은 집필하고 있는 주제를 소개 부탁한다. 

서경식, 김석범, 김학영 등 자이니치 문학이라고도 불리는 재일 한인 작가의 작품에 관한 연구를 15년 전부터 지속해오고 있다. 서경식 선생에 대한 단행본을 내년쯤 발표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이분들의 글에는 절박함과 치열함이 있다. 한국 문학이 다양하고 풍부하지만, 기존 문학에서 느낄 수 없는 결이 다른 자극을 받는다. 아쉬운 것은 한국 문단이 이분들의 문학에 대해 그다지 언급이 없다는 것이다. 나라도 이분들의 문학 세계에 대해 본격적으로 연구를 해보고자 마음이 있다.

한국 작가 중에는 최인훈에 대한 관심이 많다. 이 시대 문학이 세련되고 다양하게 발전되었지만, 지성은 퇴보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과 고민을 한다. 노벨상이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지만, 한국 문학 가운데 최초로 노벨 문학상 수상 가능성이 언급될 정도로 탁월한 면이 있다. 한국 현대사와 문화의 독자성과 한계에 대한 깊은 사유와 고민을 가지고 한국 지성사와 정면으로 대결한 작가다. 이 분에 대해 꾸준한 관심과 연구를 지속해왔고 본격적으로 저술하려 한다. 

비평가 김현 선생 또한 매력적인 연구주제다. 문학다움과 자율성에 대해 누구보다 섬세하게 접근한 작가이자 에세이스트다. 이분의 문학 세계에 대해 지금까지 몇 편의 글을 쓰긴 했지만 좀 더 본격적인 연구 하고 싶다. 

참고자료: 

http://www.jejusori.net/news/articleView.html?idxno=306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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