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사도행전(5)-재생 가능한 예배
온라인 사도행전(5)-재생 가능한 예배
  • 지성수 목사
  • 승인 2022.10.16 02: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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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예배의 장점은 자동으로 녹화가 되어 재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아돌람도 모임 당일로 페북 그룹방에 영상을 올려서 모임에 참여하지 못한 사람도 볼 수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 권유할 수도 있다. 이렇게 모여진 자료들은 유투브 ‘아둘람온라인공동체’ 계정에 올려져서 언제든지 다시 찾아 볼수 있게 되었다. 현재 지난 2년 동안의 자료들이 200개 이상 올려져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내용이다. 즉 다시 볼만하가나 남에게 권유할만한 내용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상투적인 목사들의 설교를 듣기 위해서 다시 유투브 계정을 뒤져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예수는 2,000년 전에 살았지만 인간들이 현실적으로 부딪치는 문제에서 쪽집게처럼 구체적인 해답을 주셨다. 그의 말은 전혀 애매모호 하거나 추상적이거나 공허하거나 관념적이지 않았다.
땅의 현실을 전혀 모르고 하늘의 언어를 가지고 유희를 하는 아주 좋은 예를 찾아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교도소이다. 세상에서 교도소의 드려지는 예배나 법회 보다 경건하고 진지한 곳은 없을 것이다. 
교도소에서는 예배를 볼 때 모든 찬송은 가사의 내용과 상관 없이 무조건 힘차게 행진곡풍으로 부르고 기독교에서 오면 “아멘!’ 소리가, 불교에서 오면 “나무아비타불!” 소리가 우렁차게 강당을 진동한다. 
그래서 보통 목사들이 교도소에 설교를 하게 되면 수인들이 자기 설교를 듣고 은혜를 잘 받는 줄 알고 분위기에 도취되어 열심히 “여러분이 회개하고 새 사람이 되어 새출발을 하면 하나님이 함께 해주실 것이고 어쩌꾸” 하고 열심히 설교를 한다. 그 설교를 듣는 재소자들은  한 마디로 “X까지 마라.”하는 마음으로 앉아 있는 것을 전혀 모르고서.
대부분의 재소자들은 ‘자기들은 힘이 없고 빽이 없어서 잡혀서 교도소에 안에 있고 진짜 도둑놈들은 모두 밖에 있다.“고 생각한다. 경찰, 검사, 변호사, 판사들의 놀이에 자기들이 장기판에 장기알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또 교도소를 나가면 얼마나 찬 바람이 부는지도 잘 알고 있고 나가서 한 탕 멋지게 할 생각만 하고 있고 다. 이런 재소자들의 심리가 비뚤어지고 왜곡된 부분도 있지만 현실이 어느 정도 그런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 번은 나도 영등포 교도소에 가서 설교를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나는 이런 저런 사정으로 교도소에 대해서는 조금 아는 탓에  “도둑놈 여러분!”하고 설교를 시작했다. 
단 위에 앉아 있던 교도소 간부들이나 아래 앉아 있는 재소자들이나 ”이게 무슨 소리인가?” 하고 모두들 깜작 놀라서 웅성웅성 대기 시작 했다.
 그날 내 설교의 요점은  “당신들이 있는 감방 안에서 힘 없는 사람을 괴롭히고 경제사범으로 들어 온 들어온 범털은 대우하고 개털은 무시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면서 바깥 세상을 원망하는 것은 웃기는 짓이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것이 아니다. 당신들이 지금 현재 있는 좁은 감방 안을 지옥을 만들 수도 
천국을 만들 수도 있는 거다. 하나님 나라는 누구의 간섭 없이 당신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감방에서 만들 수 있는 거다. 거기서 그런 것을 만들지 못한다면 교도소를 나가도 또 다시 들어오게 된다. 이게 바로 예수님 말씀이다.”라고 설교를 했다. 
 그날의 설교 후 기도가 끝나고 아멘 소리가 우렁차지 않았지만 분위기는 무척 심각했다.

나는 원시인들은 자신들이 접촉하는 모든 자연에서 siprituality를 느껴왔듯이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에서 siprituality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종교적 초월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내 삶은 내가 궁극적인 책임을 지고 살 뿐이라고 생각이 된다. 즉 삶의 초월이나 미래적 구원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현재의 삶이 중요한 것이다. 즉 기도나 명상 보다는 삶의 실재에 부딪칠수록 절대자에게 다가가게 된다. Reality를 외면한 Spirituality라는 것은 말장난, 혹은 관념의 유회일 뿐이라는 것이다.

허영에는 물질적 허영뿐만 아니라 영적 허영도 있다. 영적 허영은 직업적 종교인들이 갖기 쉬운 것이다. 재미 있는 것은 그들은 신도들에게는 영적 궁상을 가르치기를 좋아한다. 왜냐하면 신도들이 영적으로 궁상을 떨어야 자신의 영적 허영이 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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