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사도행전(7)-태초에 웹(WEB)이 있었다
온라인 사도행전(7)-태초에 웹(WEB)이 있었다
  • 지성수 목사
  • 승인 2022.11.07 10: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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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창세기 1장 1절은 "태초에 웹(WEB)이 있었다.“일 것이다.

데가르트가 오늘 날 살았다면 “나는 접속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했을 것이다.

바야흐로 비대면 시대가 열려 아둘람 2년이 지나다보니 강호의 인재들이 모여 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너무 진지하게 길을 찾는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점점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꾸준히 하향 평준화를 시도하지만 잡히지 않는 물가처럼 토론의 질이 자꾸 높아져 갔다. 나는 신앙의 언어는 ‘지나가다 듣는 사람도 알아 들을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가 왜 비유를 많이 썼겠는가?

신앙생활을 많이 한 사람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에 대한 좋은 교훈이 있다.

 중세 가장 깊은 신비주의와 영성을 정립한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에게 한 신학자가 질문했다.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 되는 신비의 체험은 어떤 상태인가요?”

에크하르트는 “지금 질문한 내용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아는 상태입니다”라고 대답했다.

 

나는 일상생활에서 가급적 종교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티가 날수록 세상과 분리된 느낌이 나기 때문이다.

박리는 분리가 아닌 전적으로 물리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예를 들어 망막박리)이다. 말로 하는 것은 자칫하면 시간이 지나면 남는 것이 전혀 없는 박리 현상이 나타나기 쉬운 것이다.

ZOOM 모임은 행동은 없고 말로만 한다. 그러므로 말은 모든 것이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말을 '하지 않는 사람' 보다 '많이 하는 사람' 때문에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이다. 온라인 모임의 특성상 짜여진 시간 속에서 진행되는 순서 중에 어느 한 사람의 발언이 비중이 높으면 균형을 잃어 버리게 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예수가 직접 나타나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모니터 앞에서 그렇게 오래 신경을 집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둘람 공동체 모임을 하면서 많은 고민과 연구를 하게 되었다. 아둘람은 어느 누가 혼자 이야기 하는 것을 듣고 있는 모임이 아니고 가능한한 참여자 전원이 대화에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주어진 시간에 효과적으로 대화를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세련된 운영 기술을 가져야 한다. 

어느 한 사람의 일방적인 설교가 아니라 전체가 참여하는 토론 위주의 온라인 모임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말의 길이를 조절하는 것이다. 말이 없는 사람 보다 말이 많은 사람 때문에 문제가 되기 때문에 아둘람에서는 한 번 발언시간을 2분으로 규정했다. 왜냐하면  모니터만 쳐다 보는 상황에서 남의 귀를 오래 동안 접령하는 것은 고문이기 때문이다. 말하는 사람은 즐겁지만 듣는 사람이 거북하다면 그것은 언어폭력이다.

하고 싶은 말을 참고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할 기회를 주는 것은 예수의 보혈 보다도 부처님의 전신사리 보다도 귀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묵언수행을 하려고 스스로 노력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실패해서 분위기에 밀려서 후퇴를 한 사람도 있었다. 

 

주장하거나 가르치려는 사람은 아둘람의 쥐약이다. 당사자는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했더라도 다른 사람을 피곤하게 만드는 것은 아둘람의 선한 역사를 방해하는 역기능인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람이다. 아둘람을 통하지 않고는 만날 수 없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가장 귀한 일이다. 남의 말을 잘 들어 주면 귀한 사람을 만날 수 있는데 말이 하고 싶어서 사람을 잃어 버리는 꼴이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그래서 예수가 "너희는 많이 선생이 되지말라."고 했던 모양이다.

 

서양 격언에 "세상에는 할 말이 있어도 못하는 사람과 할 말이 없는데도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의 두 종류가 있다."라는 말이 있다. 대화에서 항상 중요한 점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니라 내가 해야 할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해야 할 말'로 착각한다. 그러나 이 둘은 전혀 다르다. '하고 싶은 말'은 시작부터가 자기 자신이다. 상대방이 좋아하든 좋아하지 않든 상관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고 내가 만족하면 그만이다.

그러다 보니 모임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은 ‘남의 말 자르기’이다. 모임에서 이야기가 삼천포로 빠지면 참석한 모든 이들의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므로 말하는 사람이 불쾌하지 않게 말을 자르는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모임의 성과는 대화가 얼마나 즐겁고 유익했고 마음에 남느냐 하는 것에 달렸다. 그러나 누군가의 돌출적이거나 과격한 발언 때문에 분위기가 깨지는 경우가 있다. 말하는 사람은 즐겁지만 듣는 사람이 거북하다면 그것은 언어폭력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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