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양무리에게서 배우는 지도자다움
[광야에서] 양무리에게서 배우는 지도자다움
  • 김동문
  • 승인 2022.12.02 09: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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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무리의 지도자는 군림하는 지도자가 아니라 제 몫을 다하는 섬김이, 길라잡이
멈춰 있는 양무리 사이에 중간리더 양과 염소가 눈에 들어 온다. ⓒ김동문
멈춰 있는 양무리 사이에 중간리더 양과 염소가 눈에 들어 온다. ⓒ김동문

이스라엘이나 요르단, 팔레스타인 할 것 없이 성경의 무대가 되는 곳에는 흔히 양떼라고 부르는 무리가 있다. 이 양떼는 거의 대부분 양과 염소가 어우러진 무리이다. 이 양무리(양과 염소의 떼를 여기서 단순하게 '양무리'로 적는다) 가운데는 우두머리 양 또는 염소가 있다. 염소가 양무리의 우두머리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중간 리더에 해당하는 양과 염소들이 있다. 이 녀석들의 목에는 딸랑이 종, 방울이 달려있다.

양무리의 중간리더 양과 염소의 목에 방울이 달려 있다. ⓒ김동문
양무리의 중간리더 양과 염소의 목에 방울이 달려 있다. ⓒ김동문

양무리의 이동 장면을 보면 재미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대개의 경우 나귀가 앞서면 이 중간리더에 해당하는 녀석들이 뒤따라 움직인다. 그러면 다른 양과 염소들이 이동을 시작한다. 양무리의 수가 많을 때는 여러 마리의 나귀가 동행하기도 한다. 양무리의 이동에 목자가 맨 앞에 서는 경우는 뜻밖에도 드물다. 목자가 양무리 앞에 서느냐 안 서느냐는 양무리의 이동에는 아무런 변수가 안된다. 목자의 존재감은 나귀와 양의 우두머리, 중간리더들 그리고 양치기 개 등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목자의 존재감은 양무리의 안전 여부로 드러난다. ⓒ김동문

무리가 멈춰 서서 꼴을 뜯고 있을 때, 양무리의 우두머리의 존재감은 묘하게 자리잡고 있다. 무리 가운데 있다. 그리고 양무리의 우두머리는 이 무리의 앞에 서서 이동하거나 하지 않는다. 양무리 속에 섞여서 이동한다. 우두머리는 이끄는 우두머리가 아니다. 그렇다고 양무리의 중간 리더도 어떤 지도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은 양무리가 이동할 때 나귀를 따라가고, 다른 양무리보다 앞서가는 길라잡이 몫을 한다.

꼴을 뜯고 있는 양무리 속에 우두머리 양이 자리 잡고 있다. ⓒ김동문
양무리의 우두머리는 그 존재 자체가 존재감이다. ⓒ김동문

이것을 교회의 언어를 빌려 표현한다면. 다스리는 지도자가 아니라 섬기는 지도자 몫을 한다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양무리의 움직임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교회는 목회, 목양, 목자 이미지를 자주 사용한다. 그런데 교회의 어떤 가르침은 단지 양무리를 언급할 뿐, 양무리의 일상으로부터 지혜를 얻은 것은 아닌 듯하다. 앞장서려고만 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무엇인가가 이뤄져야 하고, 다른 이들보다 자신의 물리적 영향력이 더 큰 것을 지도력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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