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이슬에 젖은 기드온의 양털뭉치, 생수통 한 병 이상의 물이
[광야에서] 이슬에 젖은 기드온의 양털뭉치, 생수통 한 병 이상의 물이
  • 김동문
  • 승인 2022.12.05 1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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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 기드온의 양털 뭉치, 작지 않은 부피
요르단 남부의 한 목자가 깎은 양털을 뭉치고 있다. ⓒ김동문

구약성경 사사기 6:36-40절에 "양털 뭉치"가 나옵니다. 여기서 양털 뭉치는, 탈지면 같은 크기의 작은 양의 양털 뭉치가 아닙니다. 양 한 마리의 양털을 깎아서 나온, 한 뭉치의 양털 뭉치를 말한다. 이 한 양털 뭉치의 부피는 작지 않습니다. 작은 이불의 이불솜 하나(이불솜? 요즘 젊은 세대에게는 낯선 풍경이긴 합니다. 캠핑용 침낭 서, 너 개 정도의 부피라고 표현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정도의 부피입니다.

이 양털 뭉치는 양털 깎는 전문이가, 한 마리의 1년 이상 된 양의, 1년 정도 된 양털을 잘 깎을 때 나오는 양털을 다 뭉쳐놓은 것입니다. 목자들은 여름이 오기 전에, 양의 털을 깎아 주었습니다. 해마다 비슷한 시기에 양털을 깎는 것을 떠올리면, 양털은 일 년간 자란 털이었습니다.

요르단 남부의 한 목자가 깎은 양털을 뭉치고 있다. ⓒ김동문

이 양털 뭉치에만 이슬이 가득해지거나, 이 양털 뭉치만 말라있는 풍경을 떠올려보면 어떤 느낌이 다가오는지요? 이 양털 뭉치를 적시려면, 정수기용 큰 생수병 한 통을 다 부어야 할 정도였을 것입니다. 양털 검증을 통해, 뜻밖에, 기드온은 과감하고 거침없이 하나님 앞에, 그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의 증거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요구사항은, 다음 두 가지로 읽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아주 소심하고, 반신반의하는 기드온, 그의 태도를 은근하게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신적인 존재에게 이렇게 행동한다는 것은 목숨을 건 행위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무의식이나, 종교의식에 따른다면, 이런 태도를 바알에게 드러냈다면, 아예 불벼락을 맞아 죽을 것이라고 믿던 시절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에게는, 이런 정도로 하나님을 대해도 자기가 아무 화를 입지 않을 것이라는, 그의 마음, 그의 믿음을 숨김없이 그대로 드러낸 것 같습니다. 기드온은 바알숭배자들과는 전혀 다른 존재로, 그를 부르시는 하나님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 앞에 당당하게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요르단 남부의 한 목자가 깎은 양털을 뭉치고 있다. ⓒ김동문

사람들은 저마다의 터부가 있습니다. 미신과 수많은 불확실성에 바탕을 둔 토속 종교가 판을 치던 그 시절, 기드온은, 이런 수많은 터부 또는 두려움에 둘러싸여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미신과 터부를 넘어서는 것은, 웬만한 용기와 확신이 없으면 할 수 없었습니다. 기독교인들 가운데도, 여전히 이사할 때 손 없는 날을 고르려고 하거나, 가장 보편적으로는, 시험 보러 가는 날, 시험 보는 자녀나 가족에게, 자신에게, 미역국을 먹이지 않는 것 같은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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