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목자 잃은 양 아흔아홉 마리는 없다?
[광야에서] 목자 잃은 양 아흔아홉 마리는 없다?
  • 김동문
  • 승인 2022.12.05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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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마리 양 떼, 목자 혼자 돌보지 않는다.
ⓒ김동문
목자가 양떼를 풀어놓는 공간은 들이면서 산이다. ⓒ김동문

성경 독자에게 익숙한 예화가 있다. 이른바 '길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예화로 일컫는 그 이야기이다. 성경은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중의 하나가 길을 잃었으면, 그 아흔아홉 마리를 산에 두고, 가서, 길 잃은 양을 찾지 않겠느냐?"(마태 18:12)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일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도록, 찾아 다니지 아니하느냐?” (누가 15:4)

위의 예화에 등장하는 목축 현장을 떠올려 본다. 목축 현장의 일상과 경험 그리고 지혜는 이 예화를 대하는, 다루는, 가르치는 이들이 갖는 난해함과는 달리 그저 단순하고 명쾌하다. 왜 단순명쾌하게 봐야 하는 것일까?

이 예화 속에서 '들' 또는 '산'으로 표현된 공간은 같은 곳이다. 산 위에 있는 들판, 들판이 있는 산, 그것이 이 예화 속의 무대이다. 목축 현장에서 목자가 양떼에게 꼴을 뜯게 할 환경은 기본적으로 목자가 양떼를 돌볼 수 있는, 목자의 시야가 탁 트인 공간이다. 최소한 목자가 양 떼 전체를 지켜볼 수 있는 공간이다.

이동 중에 물을 마시는 양떼 ⓒ김동문

들(산)에서 꼴을 뜯고 있는 양 떼는 스스로 움직여 길을 가지 않는다. 목자가 앞서 인도하거나 나귀 등을 앞세우거나 하여 양 떼를 움직이게 하지 않으면, 그 풀어놓은 곳에서 꼴을 뜯고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아흔아홉 마리의 양은 길을 잃을 가능성이 없다.

또한 양 백 마리를 치는 목자는 혼자가 아니다. 이 정도 규모의 양떼라면, 목자 2-3명이 같이 움직인다. 그래서 ‘목자없는 양 아흔아홉 마리?’ 같은 상황은 실재하거나 존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또한 '산에 두고', '들에 두고'라는 표현을 두고 이것을 '버려두다'는 뜻으로 풀이할 근거도 없다.

또한 목자는 몸에 익숙한 그대로 거의 본능적으로 움직인다. 목자는 한 마리 한 마리를 살펴본다. 동시에 양 떼 전체를 돌본다. 그러다가 숫자가 부족하면, 한 마리가 안 보이면 이유 불문하고 찾아 나설 뿐이다.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던 그 양 한 마리를 찾아올 뿐이다. 도적맞거나 맹수의 공격을 받은 상황이 아니기에, 양이 계획을 갖고 탈출하거나 숨은 것도 아니기에, 시야가 탁 트인 들(산)에서 한 마리 양을 찾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다. ‘목자 없는 양 아흔아홉 마리?’ 그런 상황은 목축 현장과는 다소 거리가 먼 상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다.

ⓒ김동문
양떼가 꼴을 뜯는 곳은 목자가 양을 돌볼 시야가 확보된 공간이다. ⓒ김동문

예수는, 바리새인 서기관 백성들도 다 아는 말을 하는, 그저 당연하고 단순하고 명확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이 예화에서 머리를 써서 연구해야만 알아챌 수 있는 어떤 심오하거나 숨어 있는 깊은 뜻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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