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8년 만에 다시 맞이한 사회적 참사, 그리스도인 역할은?
[시론] 8년 만에 다시 맞이한 사회적 참사, 그리스도인 역할은?
  • 지유석
  • 승인 2022.12.20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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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사회’ 공감대 이번 정부에서 훼손, ‘가난한’ 지혜자에 귀 기울여야
지하철 녹사평역 들머리에 마련된 이태원참사 희생자 시민분향소. 분향소엔 유가족이 공개에 동의한 희생자 영정사진이 안치돼 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지하철 녹사평역 들머리에 마련된 이태원참사 희생자 시민분향소. 분향소엔 유가족이 공개에 동의한 희생자 영정사진이 안치돼 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10.29 이태원참사 ‘49일 시민 추모제’가 열린 이태원 일대는 시민들의 발길로 북적였다. 전날 길 위에 내린 눈이 강추위로 얼어붙는 바람에 발걸음을 움직이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시민들은 강추위와 거리 집회에서 당연히 따라오는 불편을 기꺼이 감수하며 49재가 열리는 이태원 거리, 그리고 녹사평역 들머리에 마련된 시민분향소를 찾았다. 

불상사도 없지 않았다. 극우 유투버 김상진이 대표로 있는 신자유연대는 시민분향소 앞에서 진을 치고, 정파적 구호가 적힌 현수막을 걸다 시민들과 실랑이를 벌였다. 

하지만 이 같은 실랑이에도 추모 물결은 참사 현장인 이태원 1번 출구 일대, 그리고 시민분향소를 휘감았다. 시민들은 희생자를 저마다의 방식으로 애도했고, 몇몇은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시민 추모제가 열리던 시각 윤석열 대통령 부부는 서울 안국역 인근 열린송현광장에서 열린 ‘윈-윈터 페스티벌’에 모습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은 환한 미소로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 행사를 가진 후 “정부의 정책 방향은 기본적으로 우리 소상공인과 약 2000만의 임금 근로자들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이다. 그게 가장 중요한 정부 정책”이라고 말했다. 

시민 추모제에 보인 희생자 유가족과 시민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바로 그 시각 윤 대통령 부부는 다분히 전시성 행사 일정을 소화하는 데 보낸 것이다. 

참으로 혼란스럽다. 16일 기준 참사 발생 이후 49일이 지난 시점까지 윤석열 정부는 이태원참사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보다 정부·여당, 아니 범위를 좁히면 윤 대통령과 가깝다는 ‘윤핵관’은 참사 희생자 유가족을 욕보이는 망언을 쏟아냈다. 

불행하게도 이런 광경은 8년 전 세월호 참사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다. 이 지점에서 지난 8년간 우리 사회는 전혀 달라진 게 없나, 하는 의문이 든다. 

그간 대한민국 위상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무엇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슬기롭게 이겨냈고, <오징어게임>·방탄소년단(BTS) 등으로 문화적 역량도 유감없이 과시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안전하지 않고, 참사가 벌어진 이후 지독한 부조리가 터져 나오는 중이다. 

‘어리석은 무리’ 윤석열 정부, 시민연대로 맞서야 

지하철 녹사평역 들머리에 마련된 이태원참사 희생자 시민분향소. 분향소엔 유가족이 공개에 동의한 희생자 영정사진이 안치돼 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지하철 녹사평역 들머리에 마련된 이태원참사 희생자 시민분향소. 분향소엔 유가족이 공개에 동의한 희생자 영정사진이 안치돼 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16일 이태원 참사가 49일째를 맞이한 가운데 이날 오후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와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는 사고 현장인 이태원역 1번 출구 대로변에서 ‘49일 시민 추모제’를 열고 희생자를 추모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16일 이태원 참사가 49일째를 맞이한 가운데 이날 오후 10.29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와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는 사고 현장인 이태원역 1번 출구 대로변에서 ‘49일 시민 추모제’를 열고 희생자를 추모했다. Ⓒ 사진 = 지유석 기자

이번 이태원 참사가 뼈아픈 건, 적어도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의식 만큼은 나아졌으리라는 사회적 공감대를 심각하게 훼손했다는 점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들은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외쳤다. 8년이 지난 지금,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은 똑같은 요구를 정부에 하고 있다. 

더욱 심각한 건 참사 이후 정부 책임론이 들끓고 있지만, 윤석열 정부는 요지부동이라는 점이다. 최근 행보에 비추어 보면 이 정부는 전혀 사과할 뜻이 없어 보인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해야 이 엄청난 참사를 수습하고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성서를 찾아보자. 구약성서 ‘전도서’ 기자는 가난하지만 지혜 있는 사람의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고 적는다.

“성읍 안에는 지혜 있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가난하였다. 그 사람의 지혜로 성읍은 위기를 면할 수도 있었을 터인데 그 가난한 사람을 인정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지혜가 힘보다 낫기는 하지만 이 사람은 가난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니 그의 지혜가 빛을 못 보는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어리석은 무리를 거느린 임금의 호령 소리보다는 조용한 현자의 말을 들어야 한다.” - 전도서 9:15~17 (공동번역성서)

성서가 말하는 가난은 말 그대로 궁핍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고난에 처한 상태를 뜻하기도 한다. 지금 이 시대 가장 가난한자는 이태원참사 유족,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일 것이다. 

이미 언론을 통해 윤석열 정부는 어리석은 무리들임이 드러났다. 이들에게선 도무지 기대할 게 없어 보인다. 

그러나 답은 가까이에 있다는 판단이다. 가난하지만 지혜로운 이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연대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 사회는 심각한 위기가 닥쳐올 때 마다 연대해서 한 걸음씩 전진해왔다. 비록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세월호 참사 진상을 충분히 규명하지 못했지만, 세월호 참사 유가족의 희생에 힘입어 안전사회라는 큰 공감대를 이룬 건 부인할 수 없다. 

이번 정부 들어 이 공감대에 심각한 금이 갔다. 이제 우리 사회가 다시금 연대의 힘을 발휘해 균형을 회복해야 한다. 

다행히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센터와 정의평화위원회가 10.29이태원참사시민대책회의에 참여하고 있다. 더 많은 그리스도인이 사회적 연대를 이루는 데 나서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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