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의 손을 잡고, 예수의 발걸음 따라 배제와 혐오를 넘어가다.
요한의 손을 잡고, 예수의 발걸음 따라 배제와 혐오를 넘어가다.
  • 김동문
  • 승인 2023.01.05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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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다시읽기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곳, 예수 시대 가이사 신전이 있던 사마리아 유적지 세바스테아 김동문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였던 곳, 예수 시대 사마리아 세바스테아 ⓒ김동문

적지 않은 경우, 교회 공동체와 기독교인에게 요한복음은, 전도 방법론 교재로 즐겨 사용되는 듯하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요한이 전해주는 복음일 뿐이다.

예수시대 혐오에 바탕을 둔 배제는 일상이었고, 종교적으로 의로운 행위였다. 여성혐오, 인종혐오, 지역혐오, 종과 자유민, 주인과 힘 있는 자와 힘없는 백성, 사회적 배제, 문화적 배제, 종교적 배제 등등 헤아릴 수가 없었다. 배제와 혐오를 일삼는 이들은 아마도 1%에 불과했을 것이다. 스스로는 하나'1'이라 일컫는 이들이었다. 이들에게 다른 무리는 '99'였다. 그 시절, 예수는 배제와 혐오를 넘어섰다. 그리고 그 '하나'의 혐오와 배제의 대상이 되어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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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들레헴 안에 자리한 분리장벽 안의 분리장벽 ⓒ김동문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예수 기행은 기행(奇行, 기이한 행동)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오늘날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상황은 예수 시대와 기시감(이미 본 것 같은 느낌)을 본다.

예수 시대 사마리아와 유대지방의 경계가 그랬다. 유대인은 사마리아 지방을 갈 수 있어도, 사마리아인은 유대 지역을 범접할 수 없었다. 유대인이 다만 사마리아 지역을 배제하고 혐오감으로 기피했을 뿐이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을 기피가 아니라 배제되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예수 시대, 그 시절에, 경계를 넘는 발걸음이 있었다.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는 고립되어 있다. 예수 시대로 친다면, 유대와 사마리아 지역과 고대 시대의 블레셋 땅의 한 부분이다. 유대계 이스라엘 사람이 이 지역을 방문할 수는 있어도, 팔레스타인인이 이스라엘 지역을 자유롭게 다닐 수는 없다. 팔레스타인 지역과 이스라엘 사이에는 분리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분리 장벽은 지금도 길어지고 많아지고 새로 와지고 있다. 이 장벽은 팔레스타인인이 쌓은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정부가 쌓아 올린 것이다. 이 분리장벽을 이스라엘인은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어도, 팔레스타인인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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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근교의 분리장벽 ⓒ김동문

요한복음을 읽으면서, 내가 깊게 주목하지 못한 존재들이 많음을 다시 깨닫는다. 특정한 범주에 속하는 이들과 개인들이었다.

예수 시대 로마 시민권 가진 유대인의 존재감은 무엇이었을까? 유대인에게, 이스라엘(갈릴리) 사람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가진 유대인들은 식민지배 받던 유대인 앞에 어떤 존재감을 드러냈을까? 일본 강점기의 일본 신민으로 조건 백성 앞에 서는 것 같은 것이었을까? 오늘날 이스라엘 국적을 가진 아랍계 이스라엘인이 있다. 이들은 팔레스타인인들과 유대계 이스라엘인에게 어떤 존재일까? 그들 스스로는 자신을 누구라고 하는가?

로마의 제국주의에 반대했던 이들이 있었다. 로마인들 가운데 로마에 대한 소극적 저항을 하던 로마인들도 있었다. 이름이 드러나거나 감춰진 로마 군대 백 부장들이 있었다. 니고데모, 아리마대 사람 요셉, 마가 요한 같은 인물들이 떠오른다. 오늘, 이스라엘의 반인권과 싸우는 이스라엘 인권 단체들이 있다. 이스라엘 정부의 팔레스타인 억압에 대한 감시에 주목하는 인권단체 브첼렘, 인권을 위한 랍비들, 평화를 위한 유대인, 군은 외부의 적으로부터 나라와 국민을 지키는 것이지, 팔레스타인을 적대적으로 대하고 총을 드는 것이 아니라 주장하는 양심적 병역거부 운동 '예쉬 그불'같은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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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심산에서 바라보는 고대 세겜 지역과 에발산, 사마리아 산지 ⓒ김동문

로마인, 유대인의 벽을 넘어 공동체를 살아낸 이들도 있었다. 자기의 종, 하인의 치료, 회복을 위해 식민지 백성이었던 예수 앞에 무릎을(?) 꿇었던 어떤 로마 군인 등이 있었다. 지금 더불어 인종과 종교, 국적의 벽을 넘어 함께 살아가기 평화 공동체를 살아내는 이들도 있다. 아랍인과 유대인의 생활 공동체 네베 샬롬(와하트 쌀람)!

지금도 평화를 위한 발걸음은 이어진다. 평화가 필요하기에, 평화를 원하기에, 평화를 위해 그 길을 가는 이들이 있다. 벽을 쌓는 이, 벽을 허무는 이 그 사이에 내가 있고, 우리가 자리한다. 남자나 여자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시민이나, 지혜로운 자나 어리석은 자나 같은 인격체로 존중받음을 위한 예수의 길을 다시 기억한다. 2017년으로 요한을 초대하여 그의 손을 잡고 간다. 배제와 혐오를 넘어가며 지금의 예수를 만난다. 한국에서, 미국에서 그리고 우리 사는 일상 속에서 그의 길, 우리의 길을 간다.

헤브론 막벨라 굴을 찾은 유대인 여성들 김동문
헤브론 막벨라 굴을 찾은 유대인 여성들 김동문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지역을 이른바 성지순례를 목적으로 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런데, 안타깝지만, 방문 일정에 유대 산지 헤브론 지역이나 신구약의 북왕국 이스라엘, 사마리아 지방을 방문하는 일정이 거의 없다. 안전하지 않다는 이유로 처음부터 일정에 넣지 않는 경우가 절대 다수이다. 그런데 헤브론은 유대인도 출입하는 장소이다. 그런데도 아예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고대 세겜지역이나 세바스테아 같은 곳도 마찬가지이다. 예루살렘과 갈릴리 지역을 중심으로 둘러보는 것이다. 안전을 이유로 외부인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으면 들어가지 않으면 되는데, 아예 처음부터 갈 생각을 안한다.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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