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바라보고 어디로 가려는가.
무엇을 바라보고 어디로 가려는가.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3.03.02 0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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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 대표자 지위 확인소송 '기각'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일어났다. 나는 사실 이 사건을 언급하고 싶지 않다. 더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사건을 주제로 다시 글을 쓰는 것은 이 사건에서 그리스도인이 보아야 할 전형적인 패턴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생각을 해보자. 대부분의 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김삼환 일가와 명성교회에 남아있는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며 감격해서 외칠 것이다.

“하나님의 승리다!!!”

그들은 자신들의 불의를 하나님의 승리로 인식할 것이다. 그들은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의 볼 수 있는 능력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무학대사가 한 말이 생각난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가 보인다.”

이 대답은 그러나 단순한 대답이 아니다. 무학대사의 오랜 수행의 결과물일 뿐만 아니라 철학적으로 가장 심오한 실존주의의 화두이며 인지심리학의 지각이론(perception theory)의 원리와 동일하다. 지각이론에 따르면 평가결과는 '평가대상에 대한 태도(attitude)'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하나님의 승리다!!!”라는 그들의 주장에는 세습이라는 불의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가 드러난다. 그들의 눈에는 그것이 하나님의 승리로 보인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들의 눈에는 돈과 권력이 하나님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삼환 목사의 평소의 지론이자 모든 설교의 결론인 “예수 성공, 불신 지옥”이 김삼환 목사 자신은 물론 그의 아들을 포함하여 명성교회에 남아있는 사람들의 태도를 확립했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님과 돈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남아있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눈에는 돈과 권력이 하나님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탓을 하기 전에 이런 판결을 내리게 된 경위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2심 판결에서 1심의 판결을 뒤집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근거는 명성교회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예장통합·이순창 총회장) 104회 총회가 조건부로 세습을 허용해 주는 수습안을 결의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판결이 나올 수 있던 배경에는 완전히 뒤틀린 그리스도교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물론 내게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가톨릭뉴스 지금 여기(2012.07.20)

“공의회가 폐막되면서 황제가 공의회 교부들에게 화려한 연회를 베풀었다. 에우세비우스는 황제를 모시고 회식하는 영광에 감지덕지한 나머지 세상의 연회가 아니라 그리스도 왕국의 잔치려니, 생시가 아니고 꿈이려니 생각된다는 송사를 늘어놓았다. 주교들은 눈부시게 도열하고 있는 그들에게 무기들을 내밀면서 경례를 하는 친위대를 보면서 ‘자기들이 벌써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황제는 주교들에게 선물을 쥐어 주고, 가난한 이들과 사제들을 위해 밀을 배급할 수 있는 권리증을 하나씩 주었다.“(한상봉의 “[이스탄불]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제국교회의 탄생”에서 인용)

에우세비스는 콘스탄티누스 1세가 밀라노 칙령를 반포한 313년 직후 아가피우스의 뒤를 이어 카이사레아 주교가 되었다. 337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사망한 후, 그는 황제를 기리기 위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생애>를 집필했다. <교회사>를 집필한 그는 "교회사의 아버지"라는 별칭으로 일컬어진다.

나는 특히 그가 "교회사의 아버지"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후의 모든 교회사는 교회사의 아버지인 그의 교회사를 근거로 그 위에 기록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의 이름 뒤에 “대제”라는 칭호를 사용한 것만으로도 그의 신학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는 콘스탄티누스가 죽은 같은 해에 죽었다. 나는 이것을 보면서 참으로 맘몬의 손길이 절묘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다. 그가 콘스탄티누스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딴 소리를 못하도록 막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황제의 신학은 공고한 정통으로 그리스도교를 장악했다. 오늘날까지!!

“주교들은 눈부시게 도열하고 있는 그들에게 무기들을 내밀면서 경례를 하는 친위대를 보면서 ‘자기들이 벌써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했다.’”

나는 특히 이부분을 주목해서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황제의 만찬이 끝난 후 주교들은(콘스탄티누스는 권력의 화신답게 주교들을 장악했다) 마치 김일성 일가와 같이 로마의 군대를 사열했다. 잘 생각해보라.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군대를 벗어나야했던 초기 그리스도교와 얼마나 달라졌는가. 비폭력 평화의 종교인 그리스도교의 주교들이 군대를 사열할 수 있는가.

더구나 그 순간 그들은 자기들이 벌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황홀감을 느꼈다. 이 사실이 중요하다. 그들은 지금 지옥에서 하나님 나라를 느끼고 있지 않은가. 이것이 바로 인지심리학의 지각이론(perception theory)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는 것이며 그러한 그들에 의해 변질되고 뒤틀린 그리스도교의 태도가 드러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황제는 그들에게 선물로 “가난한 이들과 사제들을 위해 밀을 배급할 수 있는 권리증을 하나씩 주었다.” 그들의 황홀경은 극에 달했을 것이라는 것을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 그들이 자신들의 태도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없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스도교의 신학과 역사는 맘몬의 수하로 들어가게 되었다.

김삼환 부자는 그것을 오늘날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여주는 귀중한 반면교사이다.

세상은 결코 정의에 편에 서지 않는다. 성서가 밝히고 있듯이 세상은 맘몬의 손아귀에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명성교회 김하나 목사 대표자 지위 확인소송 '기각'을 보고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명성교회와 김삼환 부자의 태도의 문제를 드러낸 것이 아니라 콘스탄티누스 이후의 변질된 그리스도교의 진면목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이 모습을 보고 명성교회를 개혁해야 교회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근시안적인 판단 역시 잘못된 것임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명성교회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이 개혁이 되면 오히려 안 된다. 잘못된 것은 그리스도교 자체이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더 이상 비폭력평화의 종교가 아니고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사는 예수의 제자들이 머물 수 없는 곳이 되었다. 하나님 나라의 평화와 평등을 무책임과 무질서로 이해하는 맘몬의 전진기지가 되었고, 유무상통하는 교회를 혹세무민으로 이해하는 곳이 되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라' 하고 말한 것을 너희는 들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악한 사람에게 맞서지 말아라.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너를 걸어 고소하여 네 속옷을 가지려는 사람에게는, 겉옷까지도 내주어라.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네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게 꾸려고 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말아라."

나는 오늘도 예수님의 이 말씀 앞에서 옷깃을 여미고 마음을 추스르고 경쟁과 폭력에 물든 내 사고를 내려놓는다. 돈과 권력 앞에 무력한 나임을 인정하고 그런 나를 지켜주시기를 기도한다. 진정한 하나님의 승리가 무엇인지를 상상하면서, 십자가(가장 낮은 곳인)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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