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으로 가는 길
지옥으로 가는 길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3.04.04 08:4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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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조씨는 "부족하지 않은 저의 환경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특권으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을 진심으로 깨닫게 된 것 같다"면서 "그래서 제 또래 친구들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것도 자연스러운 과정인 것 같다. 앞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고 강조했다.

조민의 인터뷰 기사의 내용이다. 기억에 남는 말이다.

오늘 내가 쓰려는 글의 주제는 조민씨의 집안 이야기가 아니라 능력주의다. 능력주의는 가장 현저한 세상의 방식이다. 나는 그것을 어려서부터 절감했다. 내 자매와 형제는 일곱이다. 그중 셋이 아들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늘 나와 바로 윗 형을 데리고 다니면서 3부자라고 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3부자가 아니라 4부자이다. 아버지가 큰형을 부자관계에서 제외하고 말하시곤 했던 것은 큰형이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형이 결혼을 할 때도 큰형의 존재를 마지막까지 배우자의 집에 언급하지 않았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사실 이런 일은 우리 집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어느 집이건 우리 시대에는 많은 형제들 중 장애를 가진 아이가 하나쯤 있었다. 그런데 장애를 가진 그 자녀를 더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는 애물단지로 여겼다.

그것을 확인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국회의원을 지냈고 그 여세를 몰아 장애인협회 회장을 지내셨던 분의 자서전을 읽었다. 그분은 무학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분은 성인이 될 때까지 집밖으로 나간 적이 딱 한 번이라고 했다. 중증 소아마비 장애를 가진 그분은 외출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누군가 그분에게 미제 휠체어 하나를 주었다. 그것을 타고 외출을 시도했다. 하지만 무거워 밀기도 어려운 그 휠체어를 다시 타지 않을 정도로 힘든 외출이었고 다시 영원한 집안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분에게 바깥세상을 알려준 것은 책이었다.

그리스도인이었던 그분의 어머니는 그분에게 성서를 읽어주곤 했다. 그때 읽어주는 성서의 내용을 들으면서 성서의 글을 깨우치게 되었다. 놀라운 능력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글을 깨우친 그분은 닥치는 대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빌릴 책이 없어질 정도로 많은 책을 읽었다. 그런 그분의 사유는 나를 감동시킬 정도고 깊었다. 오래 전 촛불집회에서 우연히 그분을 만났다. 그분은 그토록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다른 이를 배려할 줄 아는 분이었다.

성인이 될 때까지 단 한 번 외출을 했다는 내용을 보고 나는 장애를 가지고 산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절감했다. 그리고 그것이 내 큰형과 오버랩되어 세상의 진면목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기회가 되었다.

다른 하나는 내가 목사가 된 후 청각장애인들을 섬기는 목사들의 모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 모임에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음악회를 열었다. 아이러니한 행사이긴 했다. 청각장애인과 음악회는 근본적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어쨌든 그 음악회에 참석하여 그곳에 초청된 청각장애인 중 수화를 아는 이가 매우 드물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농아중고등학교를 나온 큰형 탓에 나는 청각장애인들은 모두 수화를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각장애인들 역시 내가 방금 언급한 분의 경우처럼 무학인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 사람들은 따로 수화를 배울 기회가 없었고 다만 일종의 바디랭귀지와 신음소리와 같은 그들이 내는 소리로 가족들과 약간의 기본적인 소통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이 사실을 보고 내가 깨닫게 된 것은 세상이었다. 평양이 장애인이 없는 도시인 것은 그곳이 공산주의 사회이기 때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세상이 능력주의가 기조인 곳이기 때문이다. 장애인이 없는 도시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다. 그리고 나는 세상이 능력주의라는 것을 빌미로 지옥 짓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다.

능력주의가 연출하는 세상은 지옥이 된다. 우리는 여기서 지옥을 정의할 수 있게 된다. 지옥은 사람을 차별하는 곳이다. 지옥은 능력 있는 사람이 자기만 못한 사람들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곳이다.

성서에서도 내가 지금 말하고 있는 사실을 뒷받침해준다. 우리는 그것을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기사에서 볼 수 있다. 죽은 후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던 부자가 아브라함을 보고 자기를 불쌍히 여겨 물 한 방울을 요구하자 아브라함이 그에게 한 대답이다.

“얘야, 되돌아보아라. 네가 살아 있을 동안에 너는 온갖 호사를 다 누렸지만, 나사로는 온갖 괴로움을 다 겪었다. 그래서 그는 지금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통을 받는다. 그뿐만 아니라, 우리와 너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 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로 건너가고자 해도 갈 수 없고, 거기에서 우리에게로 건너올 수도 없다.”

부자가 지옥에 간 이유는 그가 살아 있을 동안에 온갖 호사를 다 누렸기 때문이다. 잘 생각해보라. 이것이 지옥에 갈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나는 이제 이것이 지옥에 갈 이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자가 온갖 호사를 다 누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능력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가 부자가 되었건 그 모든 것은 유명한 정유라가 말했던 것처럼“돈도 실력이다.” 부자가 온갖 호사를 다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한 일은 세상의 능력주의가 하는 바로 그 일 ‘지옥 짓기’였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세상에서 지었던 지옥으로 가게 된 것이다.

나사로의 기사만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사회를 말씀하시는 대목에서도 나는 능력주의를 목격한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고생을 하며 나중에 자신들이 얻을 수 있는 자신들의 몫을 생각했다. 즉 누가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가를 생각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노고의 댓가를 높은 자리로 생각했다. 제자들 역시 세상의 능력주의 사고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아는 대로, 이방 사람들을 다스린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들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끼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위대하게 되고자 하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너희 가운데서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인자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으며, 많은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치를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내주러 왔다."

이 말씀에서 “이방 사람들을 다스린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은, 백성들을 마구 내리누르고, 고관들은 백성들에게 세도를 부린다.”고 하신 부분이 바로 능력주의가 세계관이자 가치관인 세상의 진면목이다. 세상은 능력 있는 자가 능력이 없는 자를 마구 내리누르고 세도를 부린다. 경쟁에서 이긴 자가 진 자를 능멸하고 무시하는 곳이 그래서 세상이다.

하나님 나라는 그런 능력주의로 인한 차별이 없는 나라이다. 능력이 있는 자는 능력이 없는 자를 섬겨야 한다. 나중에 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렇게 하는 것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것은 그 사람의 천국행을 결정하는 유일한 판단의 근거가 된다. 거지 나사로의 기사와 같다는 것을 볼 수 있지 않은가.

나는 조민씨가 능력주의가 기조인 세상의 진면목을 발견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을 발견하는 일과 하나님 나라의 가치관을 가지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아무리 그것을 깨달아도 신앙이 없다면 지옥에서 벗어날 길은 없다. 조민씨는 의사면허가 취소되어도 자신의 말대로 잘 살 수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에게는 그럴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그녀의 말을 통해 지옥으로 가는 첩경인 세상의 능력주의다. 그리고 우리가 자신의 생각이나 의도와는 반대로 지옥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사실을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에서 잘 살 생각을 버리고 모든 계급의 차별을 허무는 섬기는 자들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갈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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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현 2023-04-07 01:06:43
이곳에서 모처럼 좋은 글을 만납니다. 청각장애를 가지신 큰형님 이야기나, 집밖으로 나가지 못했던 분의 이야기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듭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십니다. 가난한자에게도 부자에게도 고통받는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은혜는 언제나 차고도 넘칩니다. 삶을 다른 각도에서 보게 한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