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과의 동침
적과의 동침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3.05.22 23:58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어렵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실천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근본이요 도리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 수 없다. 누구든 그리스도의 가르침 앞에서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도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고자 할 때 누구건 좌절할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도전한 사람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도전하지 않는다. 그들은 기껏해야 목사님의 말씀이나 몇 가지 교회와 관련된 일에 참여하는 것을 신앙의 전부로 안다. 그래서 오래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과 대화를 해보면 그런 사람들 대부분이 자신의 신앙이 상당히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한 은퇴 장로가 한 말을 기억한다. 그대로 다는 아니지만 그가 한 말은 대강, 자신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교회를 지켰고, 교회의 궂은 일들을 담담하고 공예배에 모두 참석하는 등, 평생 충성 봉사한 것을 자랑으로 알았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신을 인도해주신 주님께 무한 감사를 드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 생각을 해보자.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교회를 지켜 그는 장로가 되었다. 교회의 굳은 일을 담당하며 그 교회 교인들의 존경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신에게 경제적 여건을 허락하신 주님께 감사를 드렸다. 그런데 이런 은퇴 장로의 삶이 누구를 위한 삶이었는가를 잘 생각해보라. 또 이런 은퇴 장로의 삶에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살고자 하는 노력이 어디에 있는가도 헤아려보라. 물론 언급되지 않았지만 어려운 사람을 도운 일들도 있었을 것이고, 교인들의 본이 되고자 노력도 했을 것이다.

은퇴 장로의 말에서 문제를 발견할 수 없다면 이 은퇴 장로가 어디에서 좌절했는가를 살펴보라. 그는 좌절한 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만일 그가 어떠한 좌절이라고 경험했다면 스스로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하고 감사할 수는 없다. 만일 그가 좌절을 경험했다면 자신의 부족함과 더 헌신하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말을 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은퇴 장로가 교회에 충성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실천하거나 실천하기 위해 노력해보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혀 실천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 기준을 다른 사람과 비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에둘러갔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의 경우가 그렇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들이라는 그리스도인의 정의를 알지 못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묻는다. 당신은 원수를 사랑하려 해본 적이 있는가.

“그러나 너희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좋게 대하여 주고, 또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큰 상을 받을 것이요, 더없이 높으신 분의 아들이 될 것이다. 그분은 은혜를 모르는 사람들과 악한 사람들에게도 인자하시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도대체 이런 예수님의 말씀을 어디로 듣는 것인가.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인들은 찬송을 부른다.

“원수도 죄인도 친구로 변한다.”

그런데 이런 찬송을 신나게 부른다. 도대체 이 내용이 신나게 부를 수 있는 내용인가? 그러나 사람들은 교회에서 이 찬양을 박수를 치면서 신나게 부른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오늘날 교인들의 인지부조화는 심각하다. 그래서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원수를 사랑하는 곳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원수로 만드는 사람들이 되었다.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은 자신들의 교회를 살펴보라. 오늘날 교회는 무조건적인 환대가 아니라 무조건적인 혐오와 차별과 배제가 대세가 되었다.

“이영훈 목사(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 목사)가 전광훈이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당사 개소식에 참석해 발언을 놓고 파문이 일고 있다. 이 목사는 지난 16일 자유통일당 당사 중앙당 개소식에 서 “주사파가 들끓고 공산주의로 빨갛게 물들어가는 이때, 자유통일당이 이들을 타파하고 뿌리 뽑는 사명을 받은 것에 감사드린다”며 “십자가 복음을 들고 나아가 공산주의 주사파를 잡고 복음통일 이루는 위대한 역사를 이루자”고 밝혔다.“(뉴스M에서 인용)

이 기사를 잘 생각해보라. 이영훈 목사님과 전광훈 목사님이 주로 하시는 일의 정체를 알 수 있다. 이분들이 하시는 일은 우리 국민의 절반 이상을 원수로 만드시는 일이다. 이분들은 멀쩡한 사람들을 공산주의 주사파로 만든다. 이분들은 불교도나 무슬림뿐만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나 원수로 만든다. 사실 이분들만이 아니다. 김삼환 목사님이나 오정현 목사님과 같은 분들도 이분들과 다르지 않다. 그분들 역시 자신들을 반대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사탄의 새끼”들이라 부르신다. 그런 말을 설교 시간에 하시고, 그런 말씀을 하실 때 이분들의 표정을 보라. 누구라도 원수로 삼으려는 의지에 불타는 얼굴이 아닌가.

“지피지기 백전백승”

갑자기 손자병법의 이 말이 생각나는 이유는 싸워 이기기 위함이 아니라 이 말대로 적과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위에 언급한 대단한 목사님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대로 원수를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멀쩡한 사람들을 원수로 만드는 달인들이 되신 것은 그분들이 복음의 진짜 적이 누구인지를 모르시기 때문이다. 그 답 역시 찬송가에 늘 있었다.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성령과 피로써 거듭나니 … 세상과 나는 간 곳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복음의 적은 타인이 아니다. 이 찬송가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의 주님이 되시고 그리스도인들이 성령과 피로 거듭나면 원수가 다름 아닌 ‘세상과 나’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복음에는 적이 있다. 그것이 바로 세상과 나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면 세상과 나라는 원수도 사라진다. ‘세상과 나’가 친구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목하 ‘적과의 동침’ 중이다. 이것이 오늘날 얄팍한 그리스도교의 진면목이자 자화상이다.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데마처럼 이 세상을 사랑하여 그리스도를 버리고 세상의 한복판으로 갔다.

초기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역시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무엇인지를 배우라는 말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자신의 반사행동으로 드러날 수 있도록 행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사람은, 반석 위에다 자기 집을 지은, 슬기로운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쳤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그 집을 반석 위에 세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이 말을 듣고서도 그대로 행하지 않는 사람은, 모래 위에 자기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할 것이다. 비가 내리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치니, 무너졌다. 그리고 그 무너짐이 엄청났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Justin M Kim 2023-05-23 00:04:06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