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聖所와 겸손
성소聖所와 겸손
  • 최태선 목사
  • 승인 2023.06.14 10:2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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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철봉에 매달려보았다. 한 젊은이가 옆에서 턱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턱걸이가 아니라 허리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대로 턱을 지나 허리까지 올라가는 턱걸이를 하고 있었다. 그가 하고 있는 방식이 내가 젊었을 때 하던 방식이었다. 나는 쑥 잡아 올리면서 멈추지 않고 허리까지, 다시 말해 철봉 위로 올라가곤 했다. 그래서 나도 용기를 내어 철봉에 매달린 것이다. 그리고 힘을 주고 팔을 당겨보았다. 충격이었다. 꼼짝도 하지 않았다. 불과 십 센티도 당기지 못했다. 나는 창피하다는 생각과 함께 철봉에서 내려왔다. 군대에서 체력 시험을 볼 때에도 엄격한 기준을 통과해 스무 개 이상을 하던 나였다. 그런데 이제 나는 턱걸이를 하나도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 사실이 오래도록 뇌리에 남았다. 그만큼 내겐 충격적이었다. 불과 몇 년 전에도 하나는 거뜬했다. 그런데 이제 하나도 못하게 된 것이다.

내가 쇠한 것이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나이가 든 것이다. 어제도 시장에서 물건을 사면서 젊다는 말을 들었다. 기껏해야 육십으로 보거나 심지어 그 이하로도 본다. 손자를 데리고 다니면 아빠랑 닮았다는 이야기를 가끔씩 들었다. 그런데 이제 나는 턱걸이를 하나도 하지 못하는 늙은이가 되었다. 사실 인생에서 늙는 것보다 슬픈 일은 없다.

그러나 나는 내 나이 듦에 대해 감사한다. 그만큼 힘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힘이 없어질 때 제대로 길을 찾게 된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환난을 자랑했고, 바울 역시 약함을 자랑했다. 그렇게 내가 약해지는 것이기에 나는 나의 나이 듦을 감사하고 사랑한다.

젊을 때를 생각해보면 나는 너무도 나쁜 사람이었다. 특별히 악한 일을 했기 때문이 아니다. 나는 젊어서 고아원을 드나들었고, 누구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런 내가 대단하다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 악한 사람은 아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내가 젊기 때문에 내가 능력이 있고 힘이 있기 때문에 그것 자체로 나는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곤혹스러운 사람이었다. 나는 그것을 인식할 수 없다.

내가 학교에 근무하던 때 학교 테니스대회에서 우승을 했다. 나는 우승 턱으로 일식집에서 회식을 했다. 사람들은 모두 즐겁게 회를 먹었다. 그 일이 있은 후 얼마 후에 한 대학 선배님이 나를 불러, 내게 말했다. 최 선생은 능력이 있고, 돈이 있으니까 그런 우승 턱을 낼 수 있었지만 다음 번 우승한 사람에게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충고를 해주었다. 나는 그때 선배님이 내게 해준 그 충고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사실 나는 그런 생각이 답답했다. 자신의 능력에 따라 그런 건 얼마든지 해도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나는 선배님이 내게 해주신 충고를 고맙게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내 존재 자체로 다른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거나 짐이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길을 가다보면 엄청난 근육을 자랑하기 위해 근육이 그대로 드러나는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여름에 물놀이를 가면 자신의 몸매를 과시하기 위해 노출이 심한 수영복을 입은 여성들을 볼 수 있다. 이 사람들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하지만 결국 이런 사람들의 존재는 보는 사람을 위축시키거나 자신을 보잘것없는 사람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물론 요즘 젊은이들은 남에게 신경을 안 쓴다고 말을 하지만 신경을 안 쓴다고 그런 사람들의 존재가 무의식 속에서도 신경을 안 쓰는 것은 아니다. 결국 과시는 무의식적으로 열등감을 조성한다.

생각해보면 나는 잘 한다고 한 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그런 열등감을 심어주었는지 모른다. 그게 무슨 잘못이냐고 말하고 싶은 분들이 여전히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런 것이 잘못임을 일깨워준다. 그래서 능력이 있고, 힘이 있는 자는 능력이 없고, 힘이 없는 분들을 섬겨야 한다. 그렇게 하나님 나라는 능력과 힘의 균형을 맞추어 평등한 세상을 이루어낸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이런 하나님 나라의 평등에 관해 문외한이다.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차이와 간격을 만들어내는 것으로 자신의 신앙을 성숙시키려고 한다. 사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종교들은 어떤 특별한 장소, 정성을 다한 올바른 의식, 혹은 올바른 지식이나 말들을 발견하거나 깨달음으로써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기를 기대했다. 올바른 행동이나 도덕성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거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게 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어떤 영험한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기대되는 신성한 장소들이나 올바른 것으로서 주문과 같은 것들이 거의 모든 문명 속에 존재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그리스도교 역시 다르지 않다. 지금도 얼마나 많은 성지들이 방문객들을 맞고 있는가? 그러나 나는 이제 그런 장소에 대한 신성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그리스도교 안에 자리하게 된 이방종교의 잔재로 여긴다. 실제로 남미의 가톨릭을 자세히 보라. 그런 미신적인 요소들이 얼마나 많은가?

사람들은 하나님을 그런 방식으로 찾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인간들의 생각과는 달리 존재하신다. 사람들은 언제나 마치 자격증을 획득하는 것처럼 그런 길들을 찾으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 힘을 추구하고, 영향력을 추구하고, 능력을 최대로 발휘하려고 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그런 노력들에 대해 무관심하시다.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장소는 인간의 겸손함이다. 그래서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환난을 자랑하거나 바울이 약함을 자랑한 것은 올바르다. 그들은 핵심을 파악했다.

예수님은 팔복의 첫 시작을 “가난한 마음”으로 시작하셨다. 가난한 마음은 단순히 물질적인 가난 뿐만 아니라 영적인 가난을 아우른다. 가난한 마음은 결국 어린아이와 같아지는 것이다. 어린아이가 어린아이인 것은 힘이 없고 스스로 자신을 책임질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영적 성숙과 얼마나 다른가?

하지만 어린아이와 같아질 때 인간은 비로소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존재로 설 수 있고, 그렇게 벌거벗은 존재로 부끄러움이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드러내신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그런 의미에서 시간 자체를 신성하게 만드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이 거룩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제 나는 아주 특별한 경험을 했다. 공원에 앉아서 쉬고 있는 노숙자 선생님을 발견했다. 그분에게 다가가 길에서 사시느냐고 물었다. 겨울 파카를 입고 있기에 확인할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도움을 주기 위해 물었다. 내 말을 듣고 노숙자 선생님이 일어나 황급하게 가려고 했다. 그래서 가시지 말라는 말을 한 후에 식사 대접을 한 번 해드리려고 한다는 말을 했다. 돈을 꺼내서 드리자 그 돈을 안주머니에 소중하게 넣었다. 그분들은 내가 돈을 드리면 그 돈을 꼭 안주머니에 넣는다.

나는 그분들을 예수님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예수님처럼’이었지 ‘예수님’은 아니었다. 그런데 어제 처음 바로 그분들이 예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그분들이 계신 곳이 거룩한 곳이며, 그분들이 거룩한 시간을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그분들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그리고 내 일상이 모두 기적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가능해진 것은 내 늙음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힘이 없어지고, 내가 가진 능력이 인정을 받지 못하게 됨으로써 나는 비로소 겸손의 문턱을 넘어서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의 내 노력들이 모두 무의미한 것은 아니었지만 바른 것과 힘과 능력을 통해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던 과거의 내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모세는 늙어야 했던 것이다.

거룩한 장소는 없다!! 올바른 의식(제의)도 없다!! 올바른 지식(말씀과 길)도 없다. 하나님은 오직 겸손한 마음에 임하시고 일하신다. 인간의 모든 힘과 능력이 사라진 그곳이 거룩함의 시작이고, 시간과 존재 자체를 거룩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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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stin Kim 2023-06-16 01:52:10
A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