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판 아동복 사건을 아시나요
피터판 아동복 사건을 아시나요
  • 김기대
  • 승인 2024.01.18 1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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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톺아보기) 마약 사범은 많은데 마약 공급책은 왜 안 잡히나

유명한 프로파일러 배상훈은 인기 팟캐스트 ‘매불쇼’에 나와 마약 사건 신문보도를 접할 마약 공급책이 잡혔다는 것을 본 적 있냐고 물었다. 이선균 마약 의혹으로 언론이 도배될 때인데 누구도 생각까지는 못했던 같다. 영화에서는 공급책이 잡혀도 실제 언론에서는 그런 보도는 매우 드물다. 배상훈은 마약 공급책 뒤에는 이른바 ‘전관’, 고위 판검사를 지낸 변호사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충격적인 발언을 했다. 정보가 미리 새나간다거나 잡혀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는 것이다. 영화 ‘마약왕’의 실제 모델이라고 알려진 이황순 사건은 1980년대 초반이다. 이후론 이렇다 경찰의 성과가 없다가 1998 피터판 아동복 사건이 터졌다.

1989 9 검경은 서초구의 고급 주택가를 급습하는데 여기서 마약공장이 운영되고 있었다. 이들은 과거 이황순의 생산량보다 훨씬 많은 양이었는데 주범은 당시 유명 아동복 브랜드인 피터판의 김정숙 회장이었다. 그는 ‘아시아 최고’의 필로폰 제조 기술자로 불리던 윤재성의 아내였다.

피터 김회장은 75 남편 윤씨가 만든 히로뽕 5g 보관한 혐의로 구속 기소됐으나 윤씨가 달아난 덕분에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기도 했다.남편 윤씨는 75 히로뽕 제조혐의로 검거된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달아났으며 이때부터 이름을 바꾸어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해왔다.

여기서부터 미심쩍다. 남편이 없다고 무죄를 받았다거나 병원에서 치료 달아났다는 말에는 다른 협조자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윤씨 부부는 10 동안 2, 200kg 이상 1회용 주사기 730만개 분량을 생산했다( 1500억원 상당-1980년대 기준으로도 엄청난 금액이지만 지금 화폐가치로 보면 천문학적 숫자다). 사건이 터지자 피터판 아동복이 입점해 있던 백화점들이 줄줄이 계약을 취소하고 피터판 물건을 다루지 않게 된다. 윤재성은 수사가 시작될 즈음 간암으로 사망했다.

당시 MBC뉴스 화면 갈무리/ 당시 사건 파장에 비해 관련 이미지가 매우 드문 것도 의아한 부분이다
당시 MBC뉴스 화면 갈무리/ 당시 사건 파장에 비해 관련 이미지가 매우 드문 것도 의아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들은 마약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농장, 숙박업소를 사들이고 청담동에 5층짜리 사옥을 지었다. 피터판 아동복의 직원 규모는 120 선이었다. 피터판은 1989 기준으로 연간 외형거래액이 50억원 규모로 전국 26 매점과 홍콩지사를 갖고있는 아동복 전문생산업체였다. 70 미림 통상으로 출발한 것을 김회장의 남편 윤씨가 80년 1 인수했다.

김정숙은 1심에서 15년형을 구형받았으나 결국 징역 7년에 추징금 2 500만원을 선고받았다. 1심이 그렇지 이후 신문기사는 검색되지 않고 있다. 대법원까지 갔을 경우 형량과 추징금이 현저히 줄었을 가능성이 있다. 당시 사회를 떠들석하게 했던 피터판 사건의 최종 판결이 언론에서 검색되지 않는다는 것도 기이한 일이다. 게다가 사건에 연루된 다른 범인 명도 서울대 병원에서 치료 도주했다.

1500억이라는 막대한 돈을 마약으로 벌어들이고 그들이 감당한 추징금은 고작 수십억, 사건에 비해 검색이 어려운 관련기사, 마약사범에 대한 한국 수사기관과 ‘전관’들, 그리고 언론의 카르텔을 의심할 밖에 없는 이유다. 남미의 작은 나라 '수리남'에서 벌어진 마약 거래를 다룬 넷플리기스 드라마 '수리남'의 대사 처럼 1980년대 한국 수출의 3대 효자 품목이 자동차, 선박, 마약이었다고 하니 일부러 눈감아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증거도 나오지 않은 이선균만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이선균에게 연예인들의 마약 파티 현장을 불라고 했다는 것이 밝혀졌다. 과잉수사를 시간에 마약 제조업자들을 소탕하는게 효율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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