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바울 대표의 주해 없는 해석, 틀에 갇힌 예수
최바울 대표의 주해 없는 해석, 틀에 갇힌 예수
  • 윤영석
  • 승인 2011.08.20 12:56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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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M 아카이브>는 나누고 싶은 과거 기사 ‘다시보기’ 코너입니다.

[취재후기] 최바울 대표와 목회자지도위원회에 묻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드러난 변화산을 뒤로 하고 '귀신 들린 아이’과 아이의 어머니가 기다리고 있던 산 밑으로 내려가야 했던 세 제자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예수의 변모를 목격한 제자들의 경험을 내가 2011 신학생 멘토링 컨퍼런스를 통해 받은 감동의 여운과 비교하기엔 무리수라는 것도 잘 안다. 허나, 아쉬움을 뒤로 한 채 삶의 현장으로 돌아와야 하는 심정은 비슷하긴 마찬가지다. 

▲ 인터콥선교캠프 홍보 배너. (출처: 인터콥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미주뉴스앤조이>가 주최한 2011 신학생 멘토링 컨퍼런스가 끝난 날, 최바울 대표의 신학과 선교 방향에 대해 많은 비판이 가해지는 가운데 뉴욕에서 인터콥선교캠프가 열렸다. 최 대표는 교계의 비판에 귀기울여 지난 3월 사과문을 발표한 바 있다. 사과문에서 최 대표는 백투예루살렘 선교 운동의 신학적 문제 지적에 교계에 감사와 사과를 드린다고 했다. 또 세계선교협의회(KWMA)의 지도를 받겠다는 등 낮은 자세를 취했다.

그렇다면 산호세와 뉴욕에서 개최한 선교캠프는 사과의 진실성을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는지 모른다. KWMA의 지도가 부족해 새로운 '목회자지도위원회'를 꾸리느라 분주했던 탓일까. 최 대표는 선교캠프 저녁 집회에서 신학적으로 문제된 그대로 부분을 반복했고, 그로 인해 그동안 문제가 되어온 인터콥의 선교 방식의 변화도 기대하기 힘들 게 됐다.

최바울 대표가 만든 틀에 갇힌 예수 그리스도

최바울 대표의 신학을 평가할 능력이 내겐 없다. 다만 내가 이번 선교캠프 때 들었던 최 대표의 이야기만을 바탕으로 간략하게 몇 가지 신학적 물음과 사회적 이슈에 관련된 질문을 던지려 한다.

우선, 최 대표는 원죄론에 대한 독특한 이해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에서 원죄론이 특별히 중요한 이유는 이 교리가 그리스도론과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영국의 시인이자 성공회 신부인 존 돈(John Donne)은 다음과 같이 원죄론과 그리스도론의 관계를 시로 표현했다.

"한 곳에 서 있는 낙원과 갈보리,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아담의 나무를 생각하리.
주님, 보세요. 내 안에서 만난 두 아담을 발견하소서.
첫째 아담의 땀이 내 얼굴을 에워싼 만큼
마지막 아담의 피가 내 영혼을 품으리."

같은 구약성서를 읽는 유대교에 원죄론이 없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인간이 원래 지은 죄(원죄)가 없다면 예수의 탄생과 고난, 부활과 승천(그리스도론)이 왜 필요하겠는가. 모든 기독교의 교리가 따로 분리되지 않고 역동적으로 함께 움직이듯, 원죄론과 그리스도론, 특히 예수의 부활은 불가분의 관계다.

최 대표는 창세기의 선악과 사건을 해석하면서 불순종으로 인한 나와 하나님과 이웃과의 절연된 관계보다 '사단'의 존재에 관심을 둔다. 이런 원죄론의 이해는 예수의 성육신,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과 재림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보다 사단에 집중시킨다. 성육신의 신비는 최 대표가 만든 원죄론의 틀, 즉 사단과 하나님이 싸우는 이원론적 틀에 갇히게 되는 셈이다.

비유를 들자면, '구원의 문'인 예수를 기점으로 우리의 이성과 상상을 넘어선 '구원이라는 집(하나님나라)'이 세워진다. 하지만 최 대표의 경우, '이미 그가 지은 집'에 예수라는 문이 끼워 맞춰진다. 과연 최 대표의 원죄론은 예수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의 신비로 초대하는가, 아니면 축소(혹은 왜곡)시키는가.

주해 없는 해석이 낳은 '종말론'

최바울 대표의 종말론 역시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면 하나님나라가 온다는 마태복음 28장 14절을 절대화시키는 반면, 천사와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는 36절은 상대화시킨다. 두 구절의 긴장 관계가 무너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완성됐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은 하나님나라의 긴장 또한 붕괴된다. 그래서 하나님나라는 인간의 힘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게 된다. 한 구절이 다른 구절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또한 최 대표가 집회에서 다룬 요한계시록 해석은 신약학자 루크 티모시 존슨(에모리대학)의 표현으로 '해석학(hermeneutics)이 주해(exegesis)를 집어삼킨' 경우다. 최 대표는 계시록 기자의 역사적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현재 일어나는 일을 문자주의식 해석으로 일관해 '예언'을 '예언'(豫言)으로만 여기는 것은 아닌가. 다니엘서나 계시록을 '버스 시간표'로 바라보게끔 가르치기보단 세상 곳곳에 있는 악과 절망 속에서 참된 기독교인으로서 살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 뉴욕에서 열린 인터콥선교캠프의 저녁 집회를 맡은 최바울 대표.
사랑보다는 사살(射殺)?

그렇다면 최바울 대표가 이번에 뉴욕에서 열린 선교캠프에서 언급한 사회적 이슈는 무엇일까. 최 대표는 적그리스도가 도래했다면서 이슬람과 동성 결혼 합법화를 언급했다. 이슬람이 사람을 '죽이는' 종교라는 왜곡된 이해와 5년 내 미국에서 발생한 테러가 모슬렘에 의해 저질러졌다는 발언은 이슬람과 모슬렘에 대한 오해(이슬람 혐오)를 양산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미국-이슬람관계협의회(CAIR: Council on American-Islamic Relations)라는 단체가 알리는 미국 내에서 발생하는 안티 이슬람 정서와 그로 인한 사회적 차별과 불이익만 해도 일주일에 수십가지다.

히잡(모슬렘 여성들이 머리에 쓰는 스카프)을 착용한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되고 테러리스트로 손가락질 받는 모습이 버지니아공대의 조승희 사건 당시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공포와 의혹의 눈빛을 받은 경험과 겹치는 것은 왜일까. 설사 모슬렘과 동성애자가 적그리스도의 사인이고 '원수'라 한들, 예수께서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나. 최 대표에게서 모슬렘에 대한 언어적 사살(射殺)만 난무할 뿐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사명(使命)을 찾기 힘들었다.

목회자지도위원회, 그들의 책임은 없나?

이번 뉴욕 방문을 통해 결성한 '목회자지도위원회'는 최바울 대표를 지도할 마음이 있었을까. 최 대표의 둘째 날 저녁 집회 메시지와 마지막 저녁 집회 메시지가 일관성을 유지한 사실에 주목하자. 문제가 되는 부분이 반복되었다면 지도위원으로서 최 대표를 바르게 '지도'해야 하지 않았을까. 목회자지도위원회는 두번의 저녁 집회 중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던 것인가, 아니면 그들도 문제가 없다고 여겼던 것인가. 이쯤되면 교계에서 문제된 최 대표의 메시지가 되풀이되는 현상에 대해 그 책임의 일부분을 목회자지도위원회에 물어야 하지 않는가.

변화산에서 내려온 예수와 세 제자들은 한 여인을 대면한다. 이 여인은 예수에게 '간질로 심히 고생하여 자주 불에도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는' 자신의 아들을 고쳐달라고 간구한다. 그리고 '주의 제자들에게 데리고 왔으나 능히 고치지 못했다'고 예수께 말한다. 예수께서는 이 아들을 치유하지 못한 '믿음이 없는' 제자들을 꾸짖으신다. 아들의 어머니의 심정이 오죽 답답했으면 예수께 제자들에게 하소연했을까. 뉴욕에서 열린 인터콥 선교캠프 이후에 끊이지 않는 논란 속에서 이 어머니의 절박한 외침과 예수의 꾸지람이 들리는 건 내 안의 환청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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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orty 2011-11-13 12:17:24
Never seen a btteer post! ICOCBW

이사 2011-08-24 17:21:18
산 아래에서 세 제자와 대면했던 사람은 아들의 어머니가 아니라, 아버지 입니다. 비판의 논리도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고, 무엇보다 기자님은 성경을 잘 모르시는 것 같습니다.

조마가 2011-08-24 01:52:04
도무지 이글 쓴 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군..., 글쓰기를 배워서, 최한우를 바르게 판결하길 바라네. 인터콥은 분명 잘못된 운동이기에

내용이 너무 어렵네요 2011-08-23 23:00:56
분명히 한글로 적혀있는데, 무슨내용인지 이해가 잘 안됩니다. 좀 풀어서 설명해 주세요.
"최 대표는 창세기의 선악과 사건을 해석하면서 불순종으로 인한 나와 하나님과 이웃과의 절연된 관계보다 '사단'의 존재에 관심을 둔다. 이런 원죄론의 이해는 예수의 성육신, 십자가 죽음과 부활, 승천과 재림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보다 사단에 집중시킨다. 성육신의 신비는 최 대표가 만든 원죄론의 틀, 즉 사단과 하나님이 싸우는 이원론적 틀에 갇히게 되는 셈이다."
라고 쓰신 부분... 좀 쉽게 풀어서 쓰시면 안될까요? 여러번 읽어봐도...

그리스도인 2011-08-22 15:25:05
합당한 근거로 비판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뉴스앤조이 보니까 계속 한방향으로 몰고 가시는 경향이 있으십니다 정확한 근거에 입각하여 건강한 비판해주시길 부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