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괜찮아, 아플 때 더 강해지거든
[세상사는 이야기] 괜찮아, 아플 때 더 강해지거든
  • 신순규
  • 승인 2016.07.09 2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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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문군이란 여섯 살 난 아이를 만나본 적도 없고, 그 아이의 이름도 모른다. 어머니의 성이 최씨란 것과 아이가 몸을 가누기 어려운 뇌병변 장애 1급이란 것, 그리고 3주쯤 전 이 가족이 평생 마음에 상처로 남을 경험을 했다는 것을 알 뿐이다.

나는 매일 한국에서 오는 뉴스쇼 하나를 듣는다. 그런데 지난달 18일 토요일 아침 안락의자에서 반 누운 자세로 프로그램을 듣다가 갑자기 의자를 바로 세우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아, 이건 아니야. 정말 아니야."

몸을 가누기 어려운 문군은 외출할 때면 특별히 제작된 유모차를 탄다고 한다. 아이가 여섯 살이면 그런 자신이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 것이다. 자신이 다른 아이들처럼 뛰어다니지 못하고, 술래잡기도 못하고, 자전거나 스케이트도 못타는 것 때문에 종종 속상해할 것이다. 이런 아들을 안고 어루만지고 뽀뽀하면서 키우는 부모 역시 안쓰럽고 안타까운 마음에 삶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문군의 엄마 아빠는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을 경험시켜주기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인 듯했다. 지난 6월 12일 막내인 문군과 함께 온 가족은 은평 역사 한옥 박물관으로 나들이를 갔다. 하지만 끝내 문군은 박물관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빠랑 같이 박물관 밖에 남게 된 문군은, 박물관 안에 있는 여러 가지 신기한 유물들을 보고 있을 다른 아이들이 부럽다는 생각을 했을까. 어떤 보도에 따르면 아이가 자고 있었다고도 한다. 나는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내내 잠을 자서 자신이 당한 모욕을 몰랐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터질 만큼 상한 부모의 마음은 어떻게 치유해야 하나. 박물관 측에서 준비한 유모차로 갈아타야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단다.

문군의 장애에 대한 설명과 그 때문에 꼭 이용해야 하는 특수제작 유모차에 관한 설명도 소용이 없었단다. 그저 규칙을 따라야 한다는 말과 관장에게 어필을 하면 더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단다.

더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는 직원의 말은 정확했다. 관장은 장애가 있는 아이가 유물을 보느냐는 말과 엄마가 아이 뒤에서 아이의 장애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냐는 말을 거침없이 기자에게 했다. 비보도 조건에서 말을 한 것이라고 왜곡보도를 주장하며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한 관장에 대해 나는 언급하지 않을 것이다.

올해 1월 이 페이지에 실렸던 나의 글을 기억하는 독자들이라면 아실 것이다. 문군의 일이 나의 마음을 왜 그렇게 아프게 하는지를. 어린 시절 놀이공원에서 조랑말을 타려는데, 내가 앞이 보이지 않는 아이라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아저씨가 나를 조랑말 등에서 끌어내렸다. 장애인들은 알게 모르게, 크게 작게 차별 대우를 받는다. 그러나 어린 나이에 겪는 이런 경험은 마음 한구석에 평생토록 남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문군이 꿈나라의 달콤함을 맛보며 자신에게 일어난 이 사건을 몰랐으면 하는 것이 내 마음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아이가 이 경험을 직접 했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도 든다. 여섯 살이란 나이가 마음에 걸리지만, 언젠가 장애인들은 차별이란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장애인에게 차별은 운명 같은 것이니 그냥 감수하란 말이 아니다. 

고의로 아니면 본의 아니게 차별 행위를 하는 것은 막을 수 없으니 받아들이라는 말 역시 아니다. 불공평을 줄이려고 노력은 하지만, 불공평이란 현실을 받아들여야만 그것을 이기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다.

"문군아, 몸이 불편해서 힘든 게 많지? 게다가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혹은 너에 대해서 하는 말이 너를 아프게 할 때도 있을 거야. 만나본 적도 없고, 이름도 모르는 아저씨가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어렸을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거든. 그래서 알아. 그런데 내가 또 하나 아는 것이 있어.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 다른 사람들의 행동이나 말이 가져다주는 아픔에는 오히려 우리를 더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힘이 숨어 있다는 사실이야. 너도 그것을 잊지 말고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마음이 더 강해지는 멋진 사나이가 되길 바라."

- 이 기사는 <매일경제>에도 기고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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