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로 부른 정선 아리랑? '전송이 음악'을 하려는 것
재즈로 부른 정선 아리랑? '전송이 음악'을 하려는 것
  • 경소영
  • 승인 2017.01.1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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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재즈 보컬리스트 전송이 씨 (2)

(1부에 이어 계속)

[뉴스 M (뉴욕) = 경소영 기자] 뉴욕은 다양성을 상징하는 도시다. 맨해튼 거리를 30분만 돌아다녀보면 세상의 모든 인종을 만날 수 있다. 사람들의 대화를 자세히 들어보면 영어가 아닌 외국어도 상당히 많다. 뉴요커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누구든지 자신의 생각대로 자유롭게 말하고 표현할 수 있고, 상대방의 의견을 편견 없이 받아들이는 유연성은 뉴욕이 단연 최고라고 말이다. 

반면, 뉴욕은 차별도 다양하게 일어난다는 모순도 가득하다. 인종차별은 흔하다. 흑인만 당하는 건 아니다. 동양인은 은근히 무시하는 방식으로 차별받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 남녀차별도 자주 만날 수 있다. 이번 미국 대선에서 중요한 이슈 중 하나로 드러나 많이 알려졌다. 실력을 중요하게 여긴다는 미국 사회에서 여성의 실력은 늘 두 번째로 밀려난다. 뮤지션에게도 이는 다르지 않다. 

다음은 뉴욕에서 활동 중인 한 여성 뮤지션이 페이스북에 남긴 말이다. 

“뉴욕에서 ‘한국인 재즈 뮤지션’으로 살아가기란 참 힘든 일입니다. 많은 사람이 한국 뮤지션에게 ‘아시안 칙’이라고는 불러도 ‘한국 뮤지션’이라고는 불러주지 않더군요. 남자만 가득한 뮤지션 세계에, 게다가 동양 여성은 뮤지션으로 봐주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죠. 또한 한국 전통 음악과 서양 음악의 배합에 어려움이 있어 한국의 색깔을 보여준 사람이 거의 없었고요. 

2017년 한국은 썩어빠진 정치판을 엎고 촛불을 든 성숙한 국민이 깨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곳 뉴욕에 있는 한국 재즈 뮤지션들도 변화를 위해 반성하며 성숙한 작품이 나오길 고대합니다. 한국 뮤지션들의 재즈 음악에 대한 열정과 음악성이 보다 빛나고 발전하길 바랍니다.” 

1부에 이어 2부에서는 전송이 씨가 뉴욕에서 살아가는 한인 뮤지션으로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뉴스 M> 경소영

외국에서 13년째 유학생으로, 재즈 뮤지션으로 살아가고 있는 전송이 씨도 예외가 아니다. 남성이 훨씬 더 많은 뉴욕 음악계에서 여성 뮤지션으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다. 뮤지션보다 '여성'이 강조될 때가 많다. 

그러나 전송이 씨는 그만의 ‘음악’으로 이를 뛰어넘고 있다. 그의 음악에서 한국을 찾을 수 있도록, 전송이 씨 고유의 색을 찾아간다. 이를 통해 음악가로 인정받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남성 뮤지션들과 음악으로 소통하며, ‘여성’이 아닌 ‘뮤지션’으로 자리 잡았다. 

재즈 보컬리스트 전송이 씨 인터뷰 1부에서는 한국 정치와 긴밀하게 맞물려 있는 부모님의 특수한 상황, 그리고 그런 부모님에게 교육받으며 경험한 일들을 진솔하게 들어보았다. 유럽에서 유학 생활을 하며 본격적으로 음악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는 전송이 씨, 2부에서는 뉴욕에서 한인 재즈 뮤지션으로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보기로 한다.

뉴욕에서 뮤지션으로 살아가면서 먹고 사는 일이 녹록치 않을 것 같다. 

어느 나라나 순수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먹고 살기 힘들다. (웃음) 뉴욕은 특히 예술가들이 넘쳐나서 임금도 낮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공연하고 받는 임금이 똑같다고 한다. 게다가 점점 공연할 수 있는 기회는 적어지고, 예술가는 점점 늘어나니까 상황은 더 어렵다.

내가 추구하는 음악을 하고 공연을 하려면, 오히려 연주자들을 섭외하고 임금을 주어야 하니까 돈을 벌기는커녕 마이너스다. 생활비는 레슨 등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고 그 돈으로 연주회를 여는 것이다. 뮤지션들은 서로서로 공연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어렵게 살면서도 많은 예술가들이 뉴욕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 사실 뉴욕은 물가가 비싸 생활이 빡빡해도, 하고 싶은 음악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비교적 많은 편이다. 예술적 수요도 늘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공연을 할 수 있다. 

음악적인 가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근 뮤지션들 사이에 뉴욕만이 답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음악에도 비즈니스가 비집고 들어오기 때문이다. 순수 음악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많이들 떠난다. 삶을 유지하기 위한 음악이 주는 허탈감이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레스토랑 귀퉁이에서 공연을 한다고 했을 때 대부분 즉흥적인 연주를 하게 된다. 재즈가 물론 즉흥적인 요소가 있긴 하지만 음악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준비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 그런데 살기 위해 레스토랑 공연 같은 것들만 계속 하다보면, 창의적인 음악을 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면 매너리즘에 빠지고, 뉴욕에 처음 왔을 때 가졌던 마음을 잃어버리기 십상이다.

나도 돈을 벌기 위해 음악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데 대부분 어린 아이들이 그 대상이다. 가르친다기보다는 아이들 앞에서 재롱을 떨거나 아이들과 싸움을 해야하는 상황이 많다보니 에너지가 많이 소진된다. 그래서 늘 고민에 빠져있다. 결론은 진짜 필요한 만큼의 돈만 벌고, 나머지 시간은 어떻게든 창의적 음악 작업을 하는 것인데, 사람이 언제 어떤 일이 닥칠지 모르니 목돈이 없을 때는 불안하고 힘들다. 뉴욕에 사는 모든 아티스트가 겪는 일이다.

유투브에서 송이 씨가 편곡하여 부른 '정선 아리랑'을 보았다. (아래 영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을 하고 외국 음악인 재즈를 하지만, 역시 한국인으로서 한국 전통 음악에도 관심이 많은가보다.

부모님이 예술, 문학 교육에 관심이 많으셨다. 그래서 나와 동생에게 예술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셨다. 초등학교 입학 전에도 화실에 가서 놀기도 하고 그림도 배우고, 피아노나 장구를 배우기도 했다. 내가 자란 태백에는 한국 전통 예술을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있었다. ‘소리’ 등 전통 음악에 늘 관심이 많았다. 부모님께 감사한다.

외국 음악에 한국 전통음악을 믹싱하는 것에는 실질적으로 어려움이 많다. 나는 외국 음악에 한국적 요소를 접목시키는 방법보다, 내가 느끼는 ‘소리’를 중심으로 한국 음악 자체를 외국인들도 가깝게 들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 그래서 정선 아리랑도 우리말로 부르고, 멜로디를 살리고 연주를 위한 편곡만 한 것이다. 

음악에 대한 고민을 할 때 나의 뿌리는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나는 재즈를 하고 있지만, 재즈는 한국인인 나의 문화는 아니다. 단지 내 음악을 표현하기 위해 ‘재즈’라는 언어를 사용하는 것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내면에 지닌 다양한 것들이 있다. 본인이 공부했던 언어로 그것들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재즈’라는 언어를 선택한 것이다. 내가 가장 재미있게 잘 할 수 있는 것이 재즈였다. 

작곡을 공부하다가 회의가 들어 고민을 많이 한 기간이 있었다. 그때 여러 음악을 접했다. 스물 다섯 살 때 처음 재즈를 들었다. 알면 알수록 재즈에 빠져들었다. ‘나는 이것을 꼭 해야겠다’라는 확신이 들어 클래식 작곡에서 재즈 보컬로 전향했다.

재즈를 선택하고 공부를 하면서, 재즈 분야에서 다시 작곡을 하게 됐다. 클래식 작곡을 공부했던 것이 매우 도움이 됐다. 그동안 학습했던 유럽 클래식과 현대 음악 등이 내 안에서 잘 섞여, ‘재즈’라는 언어를 통한 음악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 내 음악은 정통 재즈는 아니고, 여러 현대적 요소가 섞여있다. 

나는 현대 음악을 이미 공부했기 때문에 재즈 보컬을 할 때 두각을 나타냈던 것이 사실이다. 보통 노래에 집중하는 보컬리스트는 악기를 다루는 연주자보다 화성악 등 이론적인 부분이 약하다. 그런데 나는 이론을 충분히 공부했기 때문에 악기 연주자들과 동등하게 갈 수 있었다. 노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작곡한 음악을 가지고 연주자들과 마주했을 때, 비로소 그들이 나를 ‘음악인’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른바 뉴욕에서 실력있는 ‘재즈계 싱어송 라이터’로 인정받고 있어 같은 한국인으로서 자랑스럽다. 한인 음악인으로서 기여하고 싶은 것이 있는가.

한국을 알리기 위한 마음도 물론 있지만, 나 스스로 한국 음악을 좋아하고 발전시키고 싶은 소망이 있다. 정선 아리랑도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편곡도 하고 외국 뮤지션들과 연주도 한 것이다. 나는 한국적인 요소가 자연스럽게 나의 음악적 언어에 드러나기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깨어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에 대한 관심이 음악으로도 묻어나올 수 있을 거라 본다. 음악을 계속 하는 한, 한국적 음악에 대한 고민은 계속될 거라 생각한다.

미국 백인 친구들에게 ‘너는 어디에서 왔어?’라고 물으면 ‘나는 이태리계 미국인이야’, ‘나는 어디 어디계 미국인’이라고 출신을 정확히 말한다. 반면 유색인종은 그저 ‘나는 미국인이야. 미국에서 태어났고 자랐으니까’라고 답한다. 이민자의 특성이기도 하다. 자신의 정체성을 미국 안에서 찾으려 하는 것이다. 특히 흑인들은 과거 노예 신분으로 미국에 건너온 역사 때문에 출신에 대한 질문을 인종 차별적인 말로 여기고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예전에 프랑스에 사는 흑인과 미국에 사는 흑인이 채팅하는 장면을 찍은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너는 어디에서 왔어?’라는 질문에 두 흑인의 대답이 다르다. 프랑스에 사는 흑인은 ‘나는 나이지리아계 프랑스인이야’라고 대답하는 반면, 미국에 사는 흑인은 ‘나는 미국 오클라호마에서 왔어’라고 답한다. 태어난 곳이 아닌 출신(origin)이 어디냐고 재차 물으면 ‘그냥 난 미국인이야’라고 불쾌해하며 말하더라. 인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둘의 대화에는 차별의 역사 맥락이 깔려있다는 것을 주의해야 한다.

어쨌든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나의 뿌리가 어디인가’를 아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미국에서 자란 사람은 출신이 어디든 ‘미국인’이다. 그러나 타인의 인식과 관계없이 스스로 자신의 뿌리를 알아야 한다. 진짜 나쁜 의도로 질문하는 것이 아닌 이상, 출신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진지하게 생각해 볼일이다. 

전송이 씨는 한국에 대한 고민이 자연스럽게 음악에 묻어나길 바란다. '나의 뿌리가 어디인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뉴스 M> 경소영

외국인으로서 차별을 많이 받으며 살아가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자신이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지우려고 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차별은 명백히 존재한다. 그걸 직면하고 ‘다름’이 무엇인지 알아야 변화할 수 있다. 다양한 인종이 모여 있지만 미국은 다수가 백인인 사회다. 이곳에서 동양인은 백인과 절대 동등해질 수 없다. 이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주변에 이스라엘 출신 친구들이 많은데, 이스라엘에서 학교 교육을 받고 성장하여 미국에 온 경우가 있다. 그들 대부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에 대한 정책이 부당하다고 여긴다. 평화의 노래를 부르고 ‘우린 다 똑같은 사람이야’라고 외친다. 그들의 말은 물론 맞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나는 한 발짝 더 나아가고 싶다. 다 같은 사람인데 대체 왜 다 다르게 살아가야만 하는 건지, 우리는 어떤 부분에서 다른 것인지, 인종이나 출신에 따라 어디에서 부딪히기 시작한 건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문제를 고치고,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앞으로 어떤 뮤지션이 되고 싶은가. 계속 뉴욕에서 살 것인지도 궁금하다.

향후 5년에서 10년 정도는 뉴욕에 있을 계획이다. 먹고 살기 힘들지만, 뉴욕에 세계적인 뮤지션들이 모여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다. 적은 돈을 받으면서도 자유롭게 음악할 수 있고 그 누구와도 함께 동등하게 음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것이 뮤지션으로서 느끼는 뉴욕의 매력이다. 그러나 나 역시 다른 뮤지션들과 마찬가지로 미국만이 답은 아니라고 본다.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다.  

나는 보컬과 악기의 영역이 동등하다고 생각한다. 보컬과 밴드로 나누어지는 것이 싫다. 노래를 위한 반주자가 있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컬 역시 악기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스캣(scat)이라는 재즈의 창법이 있다. 특별한 가사를 두지 않고 멜로디와 리듬에 맞추어 떠오르는 대로 즉흥적인 소리를 내는 것이다. (아래 영상에서 전송이 씨가 부르는 노래 창법이 스캣이다.) 연주와 보컬이 자연스럽게 하나가 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이처럼 나는 곡을 쓸 때, 보컬이 튀지 않고 음악 안에 녹아들어갈 수 있도록 노력한다.

뉴욕에서 인종, 국적을 뛰어넘으려면 단순히 재즈를 잘 하는 것만으로는 어렵다. 계속 나만의 음악을 만들어 나타내야 한다. ‘전송이’라는 브랜드를 가진 음악인이 되고 싶다. 내가 생각하고 추구하는 것들이 ‘전송이 음악’이라는 유니크함을 만들어내면 좋겠다. 

음악을 하다보면 나 자신과 음악이 구분되지 않을 때가 많다. 모든 생활과 접하는 것들이 음악과 연결이 된다. 열심히 음악을 하는 것도 좋지만 염려가 되기도 한다. 음악에 집중한다는 이유로 내 삶에만 몰두하여 타인을 돌보지 않게 될까봐 걱정이다. 사실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면 놓치는 것들이 많았다. 후회도 많이 된다. 앞으로는 주위도 잘 살피고 사람들과 충분히 소통하면서 풍부한 음악을 하는 뮤지션으로 살아가도록 노력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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